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TS Apr 17. 2024

11th. 비계덩어리 -기 드 모파상

옳은 말들을 한다고 해서 옳은 삶인 것은 아니다.


[나를 키운 팔할의 책]   


# 11.  비계덩어리 기 드 모파상          


 대학에 입학한 이후, 혹독하게 사춘기를 겪던 내게 [비계덩어리]는 씁쓸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절반은 세상사에 대한 염세로, 절반은 도덕적 착각에 대한 자기 반성으로 내 삶에 상처와 영광을 함께 새겼다. 우리는 타인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도덕적 우월감에 우리는 쉽게 도취된다. 그냥 소소한 일화이다.     

   

 하나. 대학에 갔더니, 학생 운동을 한참 하고 있었다. 국어교육과는 나름 그 최전선에 있던 학과 중 하나였다. 노동자의 해방이라든가, 불평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생각이 없는 겁쟁이 취급을 받는 그런 문화가 있었다.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나를 불러서, 한 선배가 엄청나게 길게 꾸짖은 날이 있었다. 부르조아의 삶에 물들지 말라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을 잃지 말라고. 공교롭게도 그 선배가 예로 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집과 우리친척들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했다. 그런데, 우리집은 그 사람의 연민이 필요할 만큼 불행하지도, 또 그 사람들이 우리의 행복을 대신 주장해줘야 할 만큼 약하지도 않았다. 궁금했다. 그들이 말하는 노동자의 해방, 불평등, 인간다운 삶이 도대체 뭔지. 그러다가 그 선배네 집에 놀러갔는데, 내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부자였다. 헷갈렸다.       


 둘. 군대의 악습이 싫었다. 특히 일병이 되면, 이상한 업무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중대 물품계였다. 중대 내에서 물품이 없어지지 않도록 챙기는 역할인데, 자기 중대의 물품을 지키고, 만약 분실이 되었을 때는 어떻게든 복구하는 그런 역할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물품이 없어지면, 다른 중대에서 몰래 훔쳐오는 거였다. 그때, 선임들에게 어마어마한 갈굼을 당하고 있었지만, 다른 중대의 물품을 훔치는 것은 내 양심상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참의 지시에도 훔치는 일을 안하고 버텼는데, 고참의 갈굼은 어마어마했지만, 어차피 다른 일로도 이미 갈굼을 당하고 있는 처지였기에 그냥그냥 버틸만 했다. 또한 이런 일로 당하는 갈굼은 약간의 도덕적인 우월감을 주었기 때문에, 묘하게 기분이 좋기도 했다.

     

 여기까지 말하면 해피엔딩인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에 나는 다른 중대에서 몰래 물품을 훔치는 도둑질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다. 어느 날 후임이 다른 중대에서 물품을 훔치다가 내게 걸렸다. 그 후임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니, 다른 고참이 중대 물품을 다 채워놓으라고 엄포를 놓았다는 것이다.


 “저도 도둑질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유성호 일병님이 하지 않으면, 그 일은 저희 후임들이 해야 합니다.”      


 내가 혼자 도덕적이 된다고 해도, 구조를 바꿀 수 없으면, 그것은 하나의 불의를 다른 누군가에게 토스해주는 역할밖에 안된다는 느낌에 혼란스러웠었다. 사실 그 혼란의 방향이나 이유 등을 알았던 것은 그 일이 한참 지난 후의 일이고, 그 때는 그냥 후임에게 미안했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물품을 채워놓겠다고 했다. 불침번을 피해서 타중대의 물품을 훔치던 그날밤의 느낌을 참 잊을 수가 없다.      


 [비계덩어리]라는 소설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내가 느꼈던 표현하기 애매한 감정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심플하지만,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겨울 새벽,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해 점령당한 지역의 프랑스 사람들이 탑승한 마차가 자유를 찾기 위해 프랑스 국경으로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 안에는 그 지역의 유력인사들과 두 명의 수녀, 금수저 출신으로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공화주의자 한 명, `비계 덩어리'라는 별명을 지닌, 매춘부가 탑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어색한 동행은 마지막 검문소의 독일 장교가 통과를 허락하지 않는 데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흘러간다. 검문소의 독일 장교는 매춘부와의 잠자리를 희망했으나, 마차 안에 있는 품격있는 사회지도층들은 이 파렴치한 요구에 분노하고, 이에 대해 명예롭게 거부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신들이 붙잡혀 있는 곳에서 곧 대대적인 전투가 있으리란 소문이 들리자, 상황은 급변한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매춘부에게 독일 장교와 잠자리를 하도록 이런 저런 궤변으로 설득하다가 압력을 가하기까지 이른다. 결국, 수녀들까지 신은 순수한 목적에서 행한 죄악을 용서할 것이라고 거들고 나서자, 매춘부는 독일 장교를 찾아가게 되고, 다음날 아침 마차는 자유의 땅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차가 안전한 곳에 이르고 나자, 마차 안의 사람들은 이 매춘부를 불결한 존재로 여기며, 차갑게 외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계덩어리’라는 이름의 매춘부가 홀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그 착잡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화가 났었는데, 이 분노가 소설을 벗어나 세상 사람들 모두를 향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왜 이따위인가. 사람들은 왜 이따위인가. 그러다가 다른 이를 향하던 분노가 어느 순간 나를 향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따위인가. 마차 안의 상황에다 나를 대입해본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를 닮았는가. 천박한 돈 많은 상인인가. 자유를 힘써 역설하는 공화주의자인가. 예의를 중요시하는 귀족인가. 신을 사랑하는 수녀인가. 내가 혐오했던 그 모두에서 내 모습의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제 새삼 [비계덩어리]를 다시 떠올리고, 그 현란한 말의 향연에, 그 논리적이고, 당위적인 말들의 향연에 구토감을 느낀다. 당위적인 말들, 그럴 듯 하게 들리는 말들, 도덕적인 말들, 논리적인 말들 - 말의 홍수! 도덕적 우월감이 그 기저에 깔려있는 주장들. 나는 삶이 담보되지 않은 그러한 말들을 들을 때마다 구토가 난다. 정치인, 종교인, 교육자의 부류들, 그리고 내부고발자...

      

 결말을 지워놓고 보면, 마차 안의 사람들이 ‘비계덩어리’라는 매춘부를 향하여 했던 이야기들은 구절구절 옳다. 그대로 복사에서 온라인상에서 넘쳐나는 여러 글들에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더라도 크게 무리가 되지 않을 만큼,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결국 사람들을 살린 건, 천박하다고 비판받고, 외면당하는 존재의 비도덕적인 행위였다.        


 47년을 살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내게 미지의 영역이다. 세상은 여전히 어렵다. 세상에 대한 마음은 호보다는 불호일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상에서 속해 있고 싶은 마음이 크다. 세상을 구성하는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40년을 찾아왔다. 내 삶이 또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러 삶 중에서 택해야 한다면, 온갖 우월감에 사로잡혀, 말의 향연 속에 있는 마차 안의 사회지도층보다 홀로 눈물 훔치더라도 사람을 살렸던 ‘비계덩어리’로 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