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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상작가 해원 Jun 21. 2024

4-5. 컨테이너를 비행기에 실으라고요?

제4장. 비극,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


법인장이요?”     


법인장이라는 호칭에 나도 몰래 강하게 반문이 나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호칭에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며 대표이사도 한동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어색한 정적을 깨기 위해 동석한 본부장이 눈치 빠르게 입을 열었다.     


“미국 법인 6월 결산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표이사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현 법인장이 마무리까지 잘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국내 영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입처도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호주까지 다변화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현 법인장이 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업무를 모두 주관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올해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해서 내년에는 자회사에 별도의 사업부를 신설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시장 점유율이 8% 수준이지만, 3년 이내에 40%까지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부장의 설명을 들은 대표이사는 매몰차게 전화를 끊던 그때와는 달리 ‘시종일관 始終一貫’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나를 법인장이라고 부른 건 승진과 함께 부장이라는 호칭을 달고 돌아왔어야 할 나를 차마 차장이라 부르지 못한 배려의 결과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호칭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의 모든 자존에 대고 서슬이 퍼렇도록 난도질하던 그들이 이제 와 그 알량한 호칭이라는 붕대로 아직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나의 상처를 친친 동여매는 것 같았다. 입안에 맴도는 많은 질문을 애써 누르며 나는 대표이사에게 성토하듯 꾹꾹 눌러 감사의 말을 전했다.     


대표이사님 배려 덕분에 온 가족이 무사히 귀국했습니다이 은혜죽는 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해외에서 좋은 경험 했으니 이제 국내에서 큰일 해야지. 차 한잔 마셔라. 그리고 본부장은 아까 말한 사업계획 잘 만들어서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업 추진할 수 있도록 해. 이 분야 최고 전문가가 왔으니 머리를 잘 맞대 보라고. 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대표이사와 본부장이 나눈 대화의 그 어떤 부분도 나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上善若水 상선약수>, 대표이사의 어깨너머 액자에 쓰여 있던 글귀가 시야에 들어온 후로 나의 사고는 오직 그 네 글자에만 머물렀다.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 평소 도덕경에 심취해 있던 나는 대표이사실에서 마주한 그 글귀가 모두 위선처럼 느껴졌다.      


“물은 세상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다투지 않는다. 막히면 돌아가고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게 담기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난 모양이 되며 모든 변화에 순응한다.” 상선약수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머리맡에 진리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면 진리가 아니지. 유명신문사 대표의 낙관이 찍힌 고귀한 작품이면 뭐 해? 행실이 그에 따르지 못하면 이건 쓰레기나 다름없어. 액자에 든 글자는 상선약수라 쓰여있지만 나는 <탐욕약수 貪慾若水>라고 읽고 싶다. 그대들의 번들번들한 이마에 탐욕이 물처럼 흐르는구나! 당신은 상선약수가 무슨 뜻인지나 아는가?’     


“더 하고 싶은 말 있나?”     


대표이사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세차게 죽비를 맞은 듯 화들짝 깨어나며 대답했다.     


탐욕아니 상선약수물이 어찌 낮고 더러움을 탓하겠습니까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대표이사가 일어나 주먹을 불쑥 내밀며 코로나식 악수를 청했다.   

   






대표이사와의 어색한 인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비서가 면담을 요청했다. 새롭게 대표이사 비서가 된 서 차장은 그룹 본사에 근무할 때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막내 과장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 어느새 차장으로 승진한 뒤 그룹 내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대표이사 비서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전에 막내였던 그 후배가 아니었다. 근무했던 옛정을 강조하듯 형님이라 부르며 마치 큰 인심 쓰듯 말을 건넸다.     


“형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대표이사님께서 형님에 대한 오해를 많이 푸셨습니다. 손민수 법인장이 미국에서 계속 보고 드린 덕택입니다. 아무튼 올해는 조용히 계시면서 신사업 추진하는 거에 집중하시면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이왕이면 대표이사님께 자주 보고 드리세요. 그리고 가시기 전에 아래층 인사팀에 들러보세요. 인사팀장이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비서인 서 차장은 나를 위한답시고 나름 신경을 쓰는 듯했지만, 듣는 나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자리가 사람 만든다더니 그는 이미 대표이사의 대변자가 되어 있었다. 새까만 후배에게서 특별교육을 받는 느낌이랄까? 나를 밀어내고 법인장이 된 전 비서 손민수의 얼굴이 교차하여 떠오르자 왠지 모를 더러운 기분이 나를 감싸는 듯했다.      


그렇게 찜찜함을 안고 아래층 인사팀장을 찾았다. 인사팀장과는 입사 동기로 동기 중에서도 꽤 친한 편에 속했다. 미국에서 억울한 상황을 맞았을 때 내심 그의 적극적인 도움을 바랐지만, 그는 의외로 냉정하게 외면했다. 삶에서 진정한 친구를 찾기 위해서는 진정한 어려움에 부닥쳐보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완전히 잃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더러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안내한 인사팀장의 말은 비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야 해원아, 지난 인사는 정말 아쉽게 됐다. 근데 어차피 지난 일 곱씹어 봐야 마음만 아프지, 뭐 어쩌겠냐? 올해는 내가 여기 있으니까 넌 조용히 지내기만 해. 성질난다고 괜히 사고 치지 말고. 그래도 미국에서 좋은 경험 했으니까 그걸로 위안 삼아야지.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너무 ‘의기소침 意氣銷沈’ 하지 말고, 알았지? 힘내라!”     


동기인 인사팀장의 말을 듣고 나자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더러운 기분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바로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는 거였다. 대표이사를 위시해 비서와 인사를 담당하는 그들은 모두 하나처럼 움직인다는 거였다. 반면에 나는 어떤가? 그 어떤 정보로부터도 배제되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나는 이미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말이 좋아 이방인이지 시쳇말로는 ‘왕따’라는 표현이 옳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 나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자회사로 복귀한 나에게 해외사업부 신설과 국내 영업이 주어졌다. 그동안 그룹 내에서 그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그걸 항간에서는 ‘맨땅에 헤딩’이라고 부른다. 김주환 사장의 뒤를 이은 자회사 사장은 출근과 동시에 실적을 요구하고 나섰다. 문제는 나와 같이 움직일 직원 한 명 없이 혼자서 모든 일을 추진하라는 거였다. 공채로 입사해 20년을 넘게 근무한 나에게, 그것도 최근 3년 6개월을 해외에 머물며 사상 최대의 실적을 보여준 나에게 돌아온 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시간을 비운 사이 동기나 후배들은 대부분 승진해 나의 상사가 되어 있었고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비빌 언덕이 없었다. 모욕감을 견디다 못해 신임사장을 찾아가 따졌다.     


“이런 상태로는 원하시는 사업 성과 달성이 어렵습니다. 이 큰 회사에서 조직도 예산도 없이, 게다가 신사업에 대한 어떤 규정이나 업무 절차도 없이 어떻게 일을 추진하라는 말입니까? 해외에서 연필 하나를 수입해도 절차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건 순서가 있는 법이고요. 이 상황에서 실적 운운하는 건 첫날밤도 치르지 않은 며느리에게 애부터 낳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딸 거 아닙니까?”     


아니 현 차장너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사장이 하라면 하면 되지 웬 핑계가 이렇게 많아미국에서 4년 가까이 있었으면서 그 정도 못 해?”     


“아니 사장님, 이건 부정적인 게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저번에 선박이 부족하다고 보고 드렸을 때 저에게 컨테이너를 비행기에 실어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큰 컨테이너를 배가 아닌 비행기에 싣는 건 불가능합니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수지가 맞을 리 없습니다. 사장님의 긍정은 무조건 된다고 하는 겁니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하는 게 긍정 아닙니까? 제가 부정적이라면 미국에서의 실적은 무얼로 설명하실 겁니까? 아흔아홉 가지 잘하고 하나 잘 못 하면 그게 부정입니까?”     


그렇게 나는 매우 부정적인 직원이 되었다. 그들이 나에게 적용한 괘씸죄는 아직 사하여지지 않았고 조용히 있으라던 비서와 인사팀장의 요구는 나의 인내력 테스트를 위한 것이었다. 심각한 스트레스로 온몸에는 두드러기가 수시로 피어올랐고 그렇게 인생 최악의 여름이 코로나와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고 니체가 말했던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강해질수록 나는 더 강해지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이보다 더한 고통도 나는 이겨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불행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 드디어 가족과의 이별이 찾아왔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그 누구도 이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이별이 의도치 않은 것일 때, 더군다나 그 이별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될 때면 슬픔은 더욱더 크게 다가온다.     


배웅을 위해 장모님과 함께 도착한 인천공항 출국장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평소 같으면 사람들로 넘쳐날 공항은 여름비 때문인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떠나는 가족들도 보내는 우리도 무어라 말이 없었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무거워지는 분위기, 애써 참아내는 모두의 눈가엔 빨갛게 실핏줄이 돋아났다. 아직은 어리게만 보이는 세 아이, 그리고 이역만리 낯선 땅, 의지할 곳 없는 그 막막함에 놓일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왔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고 돌아서는 발길, 눈앞이 흐려졌다. 후회가 밀려왔다. 혼자 왔어야 했다. 혼자라면 어디 화장실에라도 가서 미어지는 이 가슴 한 덩어리를 덜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눈물이 속으로만, 속으로만 흐르자 나의 온몸은 이내 눈물이 되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둠이 내린 빌라 옥상,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여름 하늘도 울고 나도 울었다. 슬픔이 분노를 자극했고 그 분노가 다시 슬픔을 자극했다. 나는 이를 악물며 기도했다. 니체의 말이 맞기를, 나를 죽이지 못하는 이 슬픔과 분노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를 흐느끼며 흐느끼며 빌었다.      




이튿날 아침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잘 도착했다는 전화겠거니 하고 받은 전화기 너머엔 큰딸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엄마가 이상해지금 응급실로 가고 있는데 숨을 못 쉬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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