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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상작가 해원 Mar 19. 2024

1-1. 도전은 배신하지 않는다

1장. 환희, 꿈에 그리던 미국


Photo : The Times of India


나는 2017년 1월 1일 자로 국내 대기업의 미국 법인장으로 발탁되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회사 내에서도 미국 주재원은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직원이 아닌 법인장의 자리라면 말할 것도 없다. 모두 내로라하는 학벌과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도전장을 내민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학벌과 스펙이 없었다. 지잡대 출신인 나는 입사 때부터 끌어주는 선배 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버텨왔다. 내가 내세울 거라곤 꼴난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과 키가 크고 술을 잘 마신다는 것 정도가 다다.


내가 마치 열대우림의 빽빽한 나무들만큼이나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미국 법인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그로부터 3년 전인 2014년의 어느 날로 돌아가야 한다.


항상 해외근무가 꿈이었던 나는 당시 사내에서 주재원을 공모한다는 문서를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이 지긋지긋한 한국을 좀 떠나 보자. 혹시 알아 재수 좋으면 나에게 기회가 올지도 모르잖아.'


나는 부리나케 지원신청서와 근무 계획서 따위를 부족한 영어실력을 총 동원해 작성했다. 그리고 담당 부장의 추천서를 받기 위해 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김 부장은 평소 나랑 친한 사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술친구다. 술자리에서는 취한 김에 술기운을 빌려 형님, 아우 하면서 친근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부장님, 저 미국 좀 보내주십시오. 제가 해외사업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 법인의 경영사정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가서 3년 동안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만들어 놓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좋아, 현차장 능력이야 내가 잘 알지. 근데 너 이건 꼭 알아둬야 된다. 너 지금 가족들 데리고 미국 나가면 백 프로 이산가족 돼. 나중에 같이 들어올 수 있을 거 같지? 천만의 말씀이야. 내가 해외 주재원으로 가서 가정파탄난 사람 여럿 봤다니까. 너 저기 영업부에 장 부장 알지? 거기도 가족들만 두고 혼자 들어와서 회사 다니다가 저번 달에 결국 이혼했어. 남자는 괜찮아. 근데 여자들이 외로워서 못 견딘다 그거."


'아니 이 인간이 악담을 해도 정도가 있지? 보내기 싫으면 보내기 싫다고 그냥 말을 하던가.'


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을 순 없었다. 그리고 김 부장의 악담이 작용했는지 나는 주재원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김 부장의 말이 언젠가 내 삶에 다가올 현실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게 2014년의 일은 나의 기억에서 잊혀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지원자는 나를 포함해 4명이었고 그중에 나는 3순위였단다. 그래도 1명은 내 뒤에 있구나 하고 위로를 받은 것도 잠시, 그 한 명은 이미 주재원으로 해외 근무 경험이 있어 대상에서 제외된 인물이란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야 너네 선발 기준이 뭔데? 토익성적만 좋으면 다냐? 영어는 글로 하는 게 아냐. 입으로 나와야지. 회화는 내가 네이티브 아메리칸이야 자식들아!!' '에이, 내가 그렇지 뭐 내 꼴에 미국 법인장은 무슨? 쯧쯧.' 아무튼, 이런 일은 빨리 잊는 게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다.


그렇게 해외 근무의 꿈은 막을 내리는 듯싶었다. 그런데 2016년 가을이 되자 사내에 미국 법인장 공모설이 다시 나돌기 시작했다.


'아니 법인장은 보통 3년이 기본인데 2년 만에? 에이 그럴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설령 공모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번엔 내가 미국으로 갈 마음이 없었다. 새로운 부서에서 맡은 일이 너무 재미있어 한참 빠져있을 시기였다. 게다가 그해에 나의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형제가 형과 나 단 둘 뿐이라 홀로 되신 아버지를 두고 미국을 간다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큰 딸이 내년이면 고3이 된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나에게 미국행은 한마디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나는 새로운 업무에 빠져 매일을 신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를 듣자 하니 실지로 2년 만에 미국 법인장을 교체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경영실적 악화와 현 법인장의 개인적인 문제 등이 주된 이유였다. 그리고 내가 신경 쓰지 않는 사이 사내 공모절차가 진행이 되었고 이번에도 쟁쟁한 후보 4명이 지원서를 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후보는 S대, K대 등등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일 하며 열심히 지내고 있었다. 당시 나는 판매 영업을 담당하고 있어 외근과 손님 접대가 많았다. 어느날 고객과의 골프약속으로 정신 없이 잔디밭을 헤매고 있을 즈음 인사 담당 차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차장과는 오랜 근무 인연으로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야, 현해원! 너 지금 어디서 뭐 하냐? 지금 사무실에 난리가 났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 또 어디서 낮술 빨고 있는 거 아녀?"


"아니 형님, 지금 손님 접대하느라 죽을 지경인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섭섭하게. 왜요? 집 나간 형수님이라도 들어오셨어요?"


"야, 잔말 말고, 너 이번에 미국 법인장 공모했던 거 알지?"


"예, 근데요? 무슨 문제 있어요?"


"장난 아니니까 똑똑히 들어. 지금 급하니까 빨리 결정해 줘야 돼. 너 2년 전에 미국 간다고 신청서 낸 적 있지?"


"네, 그런데요?"


"네가 가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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