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심리적, 육체적인 질병을 알게 되는 경우는, 이미 정도가 심해져서 고통이 수반되어야 깨닫게 된다. 물론,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서, 이상 소견이 나오게 되면, 추적 검사라는 것을 함으로써 병의 진행과정을 계속 체크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오랜 기간 함께였지만 깨닫지 못했던 불안이 공황발작으로 폭발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불안의 수위와 내가 불안에 취약한 성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불안이 주는 고통을 잘 알기에, 평소 늘 불안의 정도를 파악하려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불안으로 고생하는 경우는, 대부분 불안의 정확한 대상이 파악되지 않을 뿐 아니라, 불안이란 감정의 정도가 그 어떤 시스템을 통해서도 측정될 수 없기에, 내가 아무리 주의해서 관찰하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직접적인 측정이 불가능하다면, 불안을 간접적으로라도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은 없는 것일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현재 내가 보고 있는 시야의 범위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그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시야는 나의 물리적 시야일 수도 있지만, 이것과 연결된 정서의 시야에 더 비중을 두어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불안이 최고조에 있을 때는 내가 느끼는 불안과 관련된 나의 신체증상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들리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든 나의 신경과 에너지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기에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그 어떤 재미있는 일이나 행복한 상황이 되어도 내 눈에는, 내 감정 속에는 그 어떤 것이 들어올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다가, 불안의 수위가 단 몇 cm라도 내려가게 되면, 좀 전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불안 외에 다른 감정이 드디어 생기기 시작한다. 아니, 다른 것들이 들리고, 보이기 시작한다.
반대로 나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있을 때에는 평소에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소리도,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꽃도, 하늘에 떠가는 구름도 모두가 아름답고, 신기하게 느껴져, 나의 가슴에는 감사함과 행복함이 가득 차게 된다.
즉, 우리의 불안의 수위가 낮아지면, 나의 물리적, 정서적 시야는 반대로 넓어지게 된다. 현재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이냐를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 현재 우리의 불안 수위도 가늠할 수 있다.
말을 좀 바꾸면, 주위의 작은 것,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들에 내가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나의 불안의 수위도 낮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불안에 취약하다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통해 신체적인 건강을 체크하는 것처럼,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물리적, 감정적 시야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