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기 '문해력 키우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by 박사력

개요

'문해력은 하루아침에 키워지지 않는다"라는 명제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문해력이 키워지는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로 전문가들은 아이가 태어나서 만 여덟 살(초등 2학년)까지가 문해력이 키워지는 골든 타임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 시기 학습 교재 "문해력 유치원"의 최나야 교수와 "다시, 공부머리 독서법"의 최승필 작가, "시냅스 독서법"의 박민근 작가의 책 등을 참조해 영유아기 문해력 키우기에 대한 키워드를 간추려 본다.


'듣고 말하는 경험'을 충분히 해야 한다

아이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말소리를 듣고 처리하는 데서 시작하므로, 영유아기 문해력 발달에 먼저 필요한 건 듣고 말하는 경험인 일상 대화이다. 영유아에게 부모(편의상 양육자를 부모로 통칭)가 익숙한 목소리로 짤막하고 반복적인 말을 해주면 아이는 잘 기억한다. 그러므로 말 잘 못하는 아기한테도 자주 말을 걸어주어야 한다. 아기는 부모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부모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 줄 때 아기의 뇌에서는 행복한 비상사태가 일어난다. 청각신경이 포착한 음성 정보를 해독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 아기의 뇌는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에 더 많은 뉴런을 배치하고 교신을 더욱 강화한다. 따라서 반쪽짜리 말을 하는 아이라도 완전한 문장으로 대화해야 한다. '맘마(밥)' '때찌(때리는 시늉)' '지지(더러운 것)' '쉬(오줌, 소변)' '응가(똥, 대변)'같은 유아어를 가르치고,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부모도 같은 방식으로 말하면 아이의 뇌는 쉬운 숙제를 받은 학생처럼 느긋해진다. 이런 상황이 지속 되면 아이의 뇌는 더 많은 신경세포를 배치하고 더 많은 시냅스를 만들어 더 효율적으로 교신하려는 노력을 덜하게 되어 결국에는 아이의 언어 능력 발달을 더디게 한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와 상호작용하면서 구어(口語)로써 바른 언어를 끊임없이 들려주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말을 바르고 예쁘게 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부모가 완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동화책을 친숙한 목소리로 읽어줄 때, 아이의 뇌는 그 음성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처럼 아이에게 '바른 말을 듣고 말하는 경험'을 충분히 쌓게 하는 것이 아이 문해력 키우기의 첫 단추인 것이다.


오감(五感)과 일상을 언어와 결합한다.

유아기가 되면 아이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먹고, 만지는 오감(五感)과 일상을 언어와 결합해 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에게 시리얼과 같은 간식을 줄 때 "오늘은 어떤 맛의 시리얼을 줄까. 너는 고소한 맛이 좋아, 구수한 맛이 좋아"라고 물어본다. 이때 아이에게 고소한 맛(호두 등에서 나는 맛)과 구수한 맛(현미 등에서 나는 맛)의 차이를 설명해 주면, 그 단어와 뜻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다만 아무 맥락 없이 생뚱맞게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쓰면 혼란스러우므로 상황적 맥락이나 대화의 흐름 같은 단서가 있는 단어를 사용하면 아이가 충분히 뜻을 파악할 수 있다. 부모가 덧붙여 쉽게 뜻을 풀어 말해줄 수도 있다. 모든 아이는 언어 습득 능력을 가지므로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특정 상황에서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접수하고, 처리해서 활용할 줄도 알지만 이렇게 경험과 맥락 속에서 알게 된 단어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일찍 한글을 깨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글자라는 상징 기호가 영유아가 습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각국에서 만 6세(초등학교 입학) 때 문자를 가르치라고 교육과정으로 정해놓은 건 그래서이다. 듣고 이해하는 기초 문해력이 있다면 입학해서 한글을 배워도 충분히 익히고 따라갈 수 있다. 너무 어렸을 때 한글을 공부하면 득 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즉 '엄마는 내가 이 글자를 읽기 원하는데, 어렵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학습 자체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이다. 아이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오면 너무 쉽게 배울 수 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면서 고난의 길을 갈 필요는 없다. 최근 초등 4년생에게 이부자리, 조식, 중식, 야유의 뜻을 물었더니 엉뚱한 답이 상당했다고 한다. 이처럼 한글을 못 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해를 못 하는 게 문제이다. 아이가 문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도 절대 늦지 않다. 아이가 한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것이 좋다. 심지어 뇌발달 전문의 김붕년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영유아기의 과도한 학습은 뇌 발달에 좋지 않다"라고 단언한다. 즉 4~7세는 전두엽 특정 부위와 감정을 조절하는 대뇌 연결망이 만들어지는 시기인데, 이때 아이가 원하지 않는 공부를 과하게 시키면 정서 장애에 해당하는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체득할 수 있도록 글자를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대상에 대한 설명을 외계어와 같은 문자로 끼적이는 시도를 하는데, 이걸 문자 마킹이라고 한다. 문자 마킹이 나타나면 글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또한 친구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하는 것도 신호일 수 있다. 그런데 한글을 가르칠 때 자음과 모음을 쪼개서 가르치거나, 교재를 사용해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건 문해력 발달에 맞지 않다. 부모가 아이에게 시키면 할 수야 있지만, 절대 좋은 방식은 아니다. 아이들은 어떤 문자를 익힐 때 먼저 덩어리로 인식한다. 한글이든 영어든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나서 통계적 학습을 하는데, '저렇게 생긴 모양은 항상 저런 소리가 나는구나.'라고 깨닫는다. 그래서 어떤 말소리에 해당하는 단어를 자꾸 눈에 보이도록 해주는 게 좋다. 이때 단어 카드를 보여주라는 것이 아니다. 맥락에 맞는 인쇄물이 좋다. 즉 아이와 같이 읽는 그림책이나 아이에게 쓴 쪽지 같은 것이 좋다. 중요한 건 아이가 스스로 그 원리를 파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면 그 기회를 빼앗는 것이고, 그러면 스스로 배우는 학습자가 되기 어렵다. 단어 카드나 낱말 사전을 보여주는 것도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습득할 수 있는 단어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낱말 카드의 '서랍'이라는 글자는 어떤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게 아니다. 또 실제 서랍에 '서랍'이라는 글자를 붙여 놓는 것도 인위적이고 어색하다. 집안 사물마다 그 이름을 붙여 놓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 상황 속에서 배우는 게 학습의 본질적인 방식인데, 그런 방법과 동떨어져 있다. 은연중에 글자를 빨리 익히라는 압력으로 작용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런데 서랍마다 양말, 속옷 이런 글씨를 붙인다면 그건 일상과 맥락이 있다. 서랍마다 가족의 이름을 적어 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서랍에 든 물건의 종류, 소속을 알려주는 상황과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서랍이라고 붙여두는 건 아이에게 서랍이라는 글자를 알려주려는 목적 외에 아무런 맥락이 없다. 이런 방법은 길게 갈 수도 없고, 큰 효과도 없다. 반면 동네를 산책하면서 가게의 간판을 함께 읽고 써보는 것, 장 보러 가서 마트 전단 속에서 좋아하는 식품 이름을 찾고 함께 읽어 보는 것 같은 활동이 아주 좋은 방법이다. 아이는 일상의 맥락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배울 때 가장 재미있고, 능동적으로 배울 수 있다. 이러한 환경 인쇄물(신문, 전단지와 같은 종이 위의 글자뿐만 아니라, 가게 간판, 교통 표지판, 상표, 장난감의 로고 등)은 아이에게 매력적이고 친숙하며 즉각적인 흥미와 관심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어 문해력 키우기에 효과 만점이다.


그림책 낭독이 큰 도움 된다

읽기는 크게 해독과 이해라는 두 과정으로 나뉜다. 해독은 문자를 인식하고 거기에 소릿값을 적용하는 과정이고, 이해는 그 뜻을 파악하는 단계이다. 서랍이라는 글자를 보고 소리를 내 읽는 게 해독이고, 실제 서랍을 떠올리는 게 이해이다. 한글을 뗀다는 건 해독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이다. 그런 측면에서 해독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 유창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배우는 지식의 양도 늘고 수준도 높아진다. 교과서만 봐도 글밥이 많다. 글자를 보고 소릿값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독이 자동화되어야 남은 에너지를 뜻을 이해하는 데 쓸 수 있다. 결국 문해력 차이는 이해력에서 오기 때문에, 읽는 것보다 이해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아이가 해독을 자동화할 정도로 익숙하게 하려면 유아기부터 그림책을 낭독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낭독을 유아에게 맡겨두면 안 된다. 아이가 글을 읽느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가 유창하게 느낌을 살려 읽고 아이는 그림책을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좋다. 다만 아이가 그림책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 스스로 낭독을 원하면 부모가 칭찬과 격려로 북돋우면 한결 좋다.


책을 같이 읽고 대화하는 습관을 가진다

아이가 읽는 책을 부모도 읽고 대화를 나누어 보면 아이가 어느 정도 책 내용을 파악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아이의 사고력, 어휘력, 관심, 취향도 확인할 수 있어 아이의 문해력을 키우는 데 좀 더 효과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으며, 아이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아이가 같이 책을 읽는 과정이 부드러워야 혼자 읽는 단계로도 잘 나아갈 수 있다. 아이가 한글을 깨쳤다고 혼자 읽으라고 하는 건 좋지 않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에게 달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적어도 초등학교 1~2학년 까지는 부모가 같이 읽어 주는 게 필요하다. 아이가 혼자 읽는다고 해도 질문도 하고 관심도 표현하면서 적절히 개입해 주는 게 좋다.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책을 같이 읽고 또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으면, 그런 일상이 모여서 문해력이 자라는 큰 힘이 된다.


한자어 감각을 어릴 때부터 길러 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한자 교육을 무리하게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릴 때부터 한자어에 대한 '감'은 길러 주어야 한다. 우리 말의 상당 수가 한자어 기반(국립국어원 등에서 발표한 전체 국어 어휘의 한자어 비율은 약 60% 수준)이기 때문에 한자어에 대한 감이 없으면 어휘를 습득하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한자어에 대한 감각은 일상 대화를 통해 충분히 길러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저녁 반찬에 생선이 있으면 '어(魚)'로 끝나는 물고기 이름 대기 게임을 하면 나중에 아이가 '광어' '민어' '방어' '청어'같은 단어를 처음 들어도 머릿속에 생선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단어를 연결 할 수 있으면서 우리 말에 대한 감각과 파생되는 언어에 대한 인식이 발달한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나민에 교수는 "국어 어휘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초등 3학년 전후로 한자를 가르쳐야 하며, 한자를 잘 아는 것이 국어 변별력을 갖추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일부 전문가는 한자 교육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며 아이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처럼 한자 교육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소 엇갈리나 글쓴이는 나민애 교수의 견해에 공감한다.


결국 꾸준히 책을 읽어야 한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 아이가 다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책을 선택해야 하는데, 재미있게 책을 읽은 경험이 많은 아이일수록 책을 집어 들 확률이 높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교과서도 글밥이 많아지고 호흡이 길어진다. 해독 과정이 미숙하거나 이해력이 떨어지면 책 읽기가 점점 버거워진다. 그래서 점점 독서와 멀어지고 결과적으로 이해력이 클 기회도 얻지 못한다. 이해력을 키우려면 결국 책을 꾸준히 읽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려면 일단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특히 초등 저학년 때는 읽기 어렵거나 따분하게 만드는 책이라면 과감하게 내려놓는 게 좋다. 설령 그 책이 필독서나 권장도서라고 해도 만찬가지이다. 아이의 관심사와 흥미를 끄는 책이 좋다. 그런 책을 아이가 먼저 발견하거나 부모가 추천해 줄수도 있다.


맺음말

글쓴이는 아이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좋은 책(良書)만큼 훌륭한 동반자는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의 관습적 교육경쟁에만 매몰되지 말고 책을 통해 다져진 인성(人性)과 소양(素養)으로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살아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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