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그 일이 생각난다. 지금부터 50년도 더 지난 그 일이. 생질(누나의 아들)이 있는데 나하고 나이 차이가 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다. 해마다 누나는 여름이면 친정에 와 열흘쯤 쉬고 갔는데 그 해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인가 생질의 나이가 4-5세 정도 되었을 때다.
우리 가족은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칼국수를 즐겨 먹었다. 우리 집 칼국수에는 밀가루만 넣는 것이 아니고 콩가루까지 같이 넣기 때문에 유난히 맛이 있었다. 하지만 칼국수를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한여름에.
그렇지만 식구가 모두 좋아하니 어머니는 늘 즐거운 마음으로 칼국수를 만드셨다. 반죽 하고, 홍두깨로 밀고, 칼로 총총 썰고, 검은 가마솥에 삶고.
그날도 몹시 더운 날이었다, 지금 기억에도. 마당에는 멍석을 펴 두었고 나와 다섯 살짜리 생질은 멍석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멍석을 구르고 때리고 도망을 가고 그렇게. 그 사이 칼국수가 솥에서 삶아져 한 김을 빼기 위해 커다란 들통에 담아져 멍석 귀퉁이에 놓였고 나와 생질은 뜨거운 칼국수는 안중에도 없이 여전히 장난을 치고 놀았고.
지금 기억을 하면. 내가 손으로 총을 만들어 생질에게 쏘는 시늉을 했고 생질은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몸을 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더운 날이니 생질은 위에는 러닝셔츠만 입었고 아래는 벗은 상태였는데 내 손을 피해 뒤로 뒷걸음질 치던 생질은 한 김을 빼기 위해 둔 국수 통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고 뒤로 넘어졌고 엉덩이가 큰 국수 통에 풍덩 하고 빠진 것이다.
아이는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고 그 소리에 놀라 부엌에서 어머니가 뛰어나와 아이를 국수 통에서 들어 올려 수돗가에 가니 엉덩이는 시뻘겋게 물이 들었고 물집이 봉긋하게 잡혀 있었다. 간장을 바르고 소주를 붓고.
암튼 소란도 그런 소란이 없었다. 그 덕분에 나는 어머니에게 싸리비로 종아리를 맞았고. 요즘 같으면 바로 병원으로 갔겠지만, 그 당시는 어머니들의 민간요법이 먼저였다.
더 기가 막힌 것 지금부터다. 아이 엉덩이가 빠진 그 많은 칼국수는 당연히 버려야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먹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얼라 궁디가 빠졌는데 머가 더럽노. 궁디를 담그고 있었던 거도 아이고 잠시 빠졌는데, 고마 묵자.”
나도 먹었다. 그런데 놀랄 일은 옆집 강원이네 어머니다. ‘“아이구 오늘 이 집 국수하는 날이제요. 나도 얻어 무야지요.” 우리야 어쩔 수 없는 식구여서지만. 강원이네 어머니는 식구도 아닌데 우리와 같이 그 국수를 먹었다. 그것도 두 그릇이나.
이후 생질의 엉덩이에는 그 영광의 흉터가 있었는데 영광의 흉터는 사오 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생질은 이후 지금까지 칼국수는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아기 엉덩이가 빠진 칼국수를 먹어 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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