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실홍실 나무 아래에서
청실홍실 나무 아래에서
마을 북쪽 비탈길, 그 끝에 다다르면 늙은 감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청실홍실나무’라 불렀다. 이름의 유래는 간단했다. 이 나무는 매년 기이하게도 파란 감과 붉은 감을 동시에 맺었다.
어떤 해에는 거친 태풍이 마을을 휩쓸고, 어떤 해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가지를 때렸지만, 청실홍실나무는 언제나 굳건히 두 가지 색의 열매를 품어냈다. 떨어진 열매는 없었다. 그저 푸른빛과 붉은빛이 한데 어우러져 가지 끝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소년 하윤은 어릴 적부터 그 나무를 유난히 좋아했다. 마을 아이들이 왁자지껄 술래잡기를 할 때도, 하윤은 홀로 나무 아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할머니는 그런 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늘 말했다.
“하윤아, 사람 사는 것도 저 나무와 같단다. 푸른 날도 있고, 붉은 날도 있어야 진짜 사람 구실을 하는 게야.” 할머니의 음성은 따뜻했고, 하윤은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푸른 감은 희망을, 붉은 감은 슬픔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때의 하윤에게는 그저 신기한 나무의 이야기였을 뿐, 자신의 삶에 그 이야기가 드리워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하윤의 세상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도시에 나가 있던 엄마가 긴 병을 얻어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하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매일 밤, 그는 남몰래 청실홍실나무 아래로 향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아래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붉은 감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엄마의 마지막 체온이 느껴지는 듯해 조금씩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파란 감을 손에 쥔 날에는 다시금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푸른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아 비참했다.
하윤에게는 붉은 감만이 위로였다. 붉은 감만이 엄마의 따뜻한 품을 기억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