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그릇의 무게

국밥집

by seungbum lee

지하철 2호선은 늘 붐빈다. 아침 여덟 시, 가방을 메고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지나면 빌딩 숲 사이에 끼인 허름한 국밥집 하나가 보인다. 여든 가까운 주인이 손에 쥔 국자 하나로 아침을 살아낸다. 그 옆에, 그릇 하나를 꼭 쥔 중년 남자가 앉아 있다. 말없이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넘긴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국밥의 마지막 숟가락을 떠올린다.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 요즘 서민들의 삶을 본다. 끼니는 챙기지만, 삶은 챙길 틈이 없다. 고물가, 고금리, 집값 폭등, 그리고 복지의 사각지대. 정치권은 경기 회복과 민생 안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길거리의 민생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뉴스 속 숫자들은 성장 중이라지만, 그 성장 어디쯤에 우리 같은 사람들의 자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 둘을 키우는 이웃 김씨는 작년부터 세 번이나 아르바이트를 바꿨다. 공공근로를 신청했지만 탈락했고, 육아수당은 소득 기준에 걸려 받지 못했다. 그 소득이란 게, 아이들 학원비 한 달이면 휘청이는 수준이다. “정책이 있다 해도, 내겐 늘 한 발 늦고, 한 발 멀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트 계산대 앞에서 물건을 반품한다. 자존심보다 살아남는 게 급한 시대다.


정부는 복지 혜택을 확장한다고 했지만, 그 문턱은 너무 높다. 기초생활수급자는 몇 푼의 생계비를 받지만, 그 몇 푼이란 게 사람을 살아 숨 쉬게 하긴 어렵다. 근로소득이 조금만 올라가면 혜택은 끊기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더 벌면 손해라니, 이게 뭔가요?” 하고,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송씨는 한숨을 쉰다. 어정쩡한 중간지대에 선 서민들은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채, 사각지대와 죽음의 트랩을 오간다.


노년층의 삶도 다르지 않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의 수레는 언제나 무겁다. 자식에게 손 벌리기 미안해 나선 길이지만, 하루 종일 모은 걸로는 도시락 하나 사기도 빠듯하다. 기초연금도, 임대료도, 건강보험료도, 물가는 올라가는데 그대로다. 도시 한복판에서 노년은 점점 고독하고 초라해진다. '효도는 나라가 한다'는 말이 무색하다. 이들이 평생 나라 위해 일하며 낸 세금은 어디로 간 걸까.


복지정책은 결국, 가장 약한 곳에 닿아야 한다. 책상 위 설계가 아닌, 밥상머리에서 들리는 탄식과 식탁 위 빈 그릇을 살펴야 한다. 아픈 사람에겐 치료가, 배고픈 사람에겐 밥 한 끼가, 일하고 싶은 사람에겐 기회가 가야 한다. 그게 복지다. 숫자로는 환산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재정 부족을 이유로 연기되는 정책들, 몇백억 원짜리 대기업 지원은 통과되면서도, 몇만 원짜리 서민 지원금은 논의만 무성하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그냥 버틴다. 버티는 법을 배우는 게 정책이 주는 유일한 효과라면, 그건 실패다.


어느 저녁, 다시 그 국밥집을 지났다. 국밥 한 그릇에 천 원을 더 받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쌀값이 올랐단다. 주인 할머니는 "어쩔 수 없지요. 미안해요." 하며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 뒤에 무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서민의 하루는 그렇게, 천 원의 무게로 흔들린다.


나는 오늘도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한다. 아이들 용돈을 줄여가며, 병원 진료비를 아껴가며 살아간다. 때로는 화가 나지만, 더 자주 서글프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게, 위로인 듯 절망이다. 이 나라가, 조금만 더 사람을 품을 수 있기를. 우리는 그저 국밥 한 그릇처럼 따뜻한 하루를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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