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결석계 13화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의 뇌

by 까밀

안온하던 일상 사이에도 그들은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우울, 분노, 충동, 공황. 그것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 나의 오래된 숙제다. 사람의 일이란 무릇, '개연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놈들은 개연성이고 나발이고 노크도 하지 않고 마음의 집에 들이닥친다. 빌려 준 돈 받으러 온 사채업자처럼.


길거리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 적이 있는가? 별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늘 걷던 사람들 속을 지나치는데,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진다. 우연히 슬픈 사연을 들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서러워진다. 선명하게 보였던 가게 간판이 뿌옇게 흐려진다. 귓속이 웅웅 거리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내가 세상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쩔 땐 기이한 환청을 듣기도 한다.


그저께는 마트에 갔다. 동생이 오랜만에 가족끼리 다 같이 장을 보러 가자기에, 기쁜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커다란 피자 한 조각과 빵을 먹고, 카트를 끌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앞도 살짝 뿌예지길래 늘 오던 공황이 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정신을 붙잡고 어떻게든 돌아다녔는데. 지나가는 물건을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초콜릿, 그 애가 좋아하던 건데...


이게 무슨 생뚱맞은 생각인가? 종종 스치는 물건을 보며 이건 누가 좋아했고, 저건 누가 사고 싶었던 물건이고.. 하면서 안 좋게 끝났던 사람들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쌍욕을 하면서 '우울증 이 XXX야'라고 할 수 있다. 그때는 이상하게 과거에 있었던 일에 과몰입하게 되면서 차츰 안 좋아졌다.


개강이 다가오면서 학교 생각이 불쑥 났다. 힘들었던 지난 학기를 떠올리며... 이번 학기에 내가 과연 다닐 수 있을까. 오만가지 걱정이 다 들었다. 부모님도 이젠 나를 위해 자퇴를 선택해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셨다. 부모님만 허락한다면, 아무 생각 없이 자퇴 버튼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난 학기에 자퇴 절차도 알아봤고... 감정적인 나도 이성적인 끈은 존재하긴 해서 그런지, '자퇴를 하고 나면 나는 어떤 인간이 되는 거지?'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학교 밖을 떠나서, 그저 '나 자신'으로서 자립할 수 있나?


주치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꼭 학교를 벗어나더라도, 어디서든지 좋지 않았던 일들을 떠올릴 수가 있다고. 당장 학교를 벗어나서 잠깐은 자유로울지 몰라도, 근본적인 걸 해결하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걸 해결하기 어려운데... 그 공간에 있으면서 계속 고통을 받아야 하나? 괜히 반발심이 들기도 하다. 아, 나도 나를 참~ 모르겠다.


뇌에 삽입 가능한 걸로. 생각을 정리해 주는 프로그램 같은 게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결국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뭘 제대로 하고 싶은 건지. 똑바로 생각할 수 있게끔. 어제 친구가 내게,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고 한 게 떠오른다. 나도 내가 생각이 줄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어떡하라고? 이 모양으로 태어난 걸!


이런 상황 속 나를 위해 한마디 하자면. 그래. 이것도 다 성장과 회복의 과정일 거야... 하고 나를 가스라이팅 해본다. 진짜야. 10년 뒤에는, 내가 이랬다고? 하는 시절이 분명 올 거야... 그래. 그렇게 믿어보려고 한다. 하하하. 으악.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2화그 와중에 감사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