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내 상황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데, 감사는 얼어 죽을... 왜 감사하라는 건지 이해는 하지만, 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날들이다. 한때 나도 누군가의 조언으로 '감사일기'를 써 본 적이 있다. (물론 귀찮아서 하루 이틀 쓰고 말았다) 그때 썼던 내용이 뭐더라... 아, 그래. 무사히 눈을 뜨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은 왜 눈을 뜨게 하셔서 못 볼 꼴을 다 보이게 하십니까-!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쓴 걸까?
가끔씩 '감사'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내가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걸 감사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래, 살이 이토록 오동동 하게 올랐으니 굶지 않아서 감사하고... 어... 그래. 이렇게 노트북이 있으니 글도 쓰니까.. 그것도 감사해야 하고. 그래... 어쩌면 생각보다 내가 감사할 순간은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이 요지경인데 감사를 찾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비극 속에 희극을 찾으라는 것 아닌가! 아휴. 역시 난 성인군자가 될 그릇은 못 되나 보다.
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아프고 나서.. 우리 집의 대화 방식에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다. 정말 사소한 건데...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말을 자주 하게 된 거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뭐 이런 것들. 고작 3글자뿐이지만 정말 말하기 어려운 단어들. 그건 좋은 것 같다. 서로 불 지르는 듯 싸우다가도, '미안해' 한 마디면 어느 정도 풀리게 된다. 평생 미안하다 소리를 잘 안 하던 아빠가 내게 미안하다고 할 때는, 어쩐지 뭉클한 기분도 든다. 사랑한다는 말도 낯간지러웠는데… 이제는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는 듯 자주 말하고 듣게 되었다. 그래, 이건 감사한 일이지.
... 이거 말고 또 있나? 머리를 잠시 굴려본 뒤... 아. 그런 게 있다. 정말 '사소한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건 그냥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내 친구 J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내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내게 메시지로 웃긴 영상을 자주 보내준다. 그냥 평소처럼 웃긴 것들을 서로 공유하는 것인데, 어느 날 깨닫게 되더라. 얘가 날 정말 신경 쓰고 있구나. 작은 것에부터 신경을 써주는 친구들이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된 점. 아픔으로 헤어진 인연이 있으면, 또 아픔을 통해 만나는 인연도 있고... 가령 병원에서 비슷한 증상의 환자를 만나게 된다던지. 그리고 나 자신이 아프니까, 다른 사람을 더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이렇게 나열해 보니 아팠던 게 꼭 나빴던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조금 들게 된다.
물론 자고 내일 또 눈을 뜨면 세상은 얼마나 나에게 가혹하며 잔인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순간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들. 그리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