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결석계 10화

미움아 미움아

오든가... 말든가...

by 까밀

내 인생의 목표가 있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진 못해도, 단 한 사람도 미워하지 말자.


어렸을 때는 이 목표가... 나름 '간지'가 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 많아도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는 나. 그 모습에 약간 취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다니지 않지만, 교회를 다녔을 적엔 늘 그렇게 기도했다.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잖나. 그렇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예수님이니까 가능하다. 나는 예수님 같은 성인이 아니라 한낱 인간에 불과한 걸?


나는 내가 무 자르듯이 단순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내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분명히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한 사람이 있다. 이 개 XX야! 욕설이라지만 간단히 말할 수 있으니 좋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던가, 그 사람의 생활이 어땠는지. 한 때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런 게 복합적으로 생각난다. 드라마에 악역이 악행을 저지를 때, 왜 나쁜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사연이 나오질 않나. 그때는 '뭐야 그게 면죄부가 될 수 없어!'라고 쉽게 외치면서, 내 일에선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알 수가 없다.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점이 있다. 지금은 싸워서 연락이 끊긴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말투도 어딘가 불편했지만, 그 녀석이 쓰는 단어들이 맘을 쓰라리게 한 적이 많았다. 충격이었던 일화를 말해볼까. 나는 내 힘든 걸 잘 말하지 않다가도, 어쩔 땐 친한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려는 때도 있다. 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을 때, 더 그랬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 재밌게 다녔던 추억들이 있었으니까, 사람에 대한 배고픔이 있었다.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서, 친구들에게 너희가 우리 학교에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껍데기처럼 학교에 다니는 것 같다고 징징거렸는데, 그 녀석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너네 학교에 재입학이라도 하란 소리야?' 내가 너무 신경 쓰이게 했나 싶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그 말이 그렇게 문제였던 건가... 싶다가도, 내가 굳이 그런 소리를 들어야 했을까? 복잡하다.


한 번은 또, 우울하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카톡방에서 징징댔던 일인데, 그 애가 이렇게 말했다. '카톡방에 정신병이 포자처럼 퍼져있네.' 포자? 생소한 단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냥 평소처럼 지나쳤던 것 같다. 어떤 날에는, 술에 취한 그 녀석이 '네 주변이 쓰레기라서 나도 쓰레긴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취중진담'이라는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걱정해서 한 말이라는 건 충분히 안다. 누가 그걸 모를까. 그 애는 힘든 시기를 같이 버텨낸, 어찌 보면 전우이기도 했다.


그 애는 내가 속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에 많이 답답해했다. 꿍해 있지 말라고 표현을 하라고 그랬는데, 맞는 말이다. 나는 표현이 정말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나는 표현이 '어려운' 사람이다. 나는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는 그 친구가 아주 부러웠다. 그래서 그 애처럼 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늘 아쉬웠다. 감정을 말했을 때 힘들었던 적이 있어서 더 그랬다. 똑같이 그 일이 반복될까 봐 무서웠고... 그게 또 내 발목을 잡는 게 좀 서럽기도 하다.


그런 점이 내가 내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애는 그렇게 말한 걸 거다. 알아. 근데 나도 사람이라 그런지, 그 표현이 서운하고 버거웠어….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곁에 뒀던 이유는 그냥, 그 사람이 꼭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단점이 크게 보여도 이 사람은 어떤 점에선 좋고, 어떤 이유로 재밌고. 나도 그 과정에서 단절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난 그냥 단순히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고. 난 그냥... 날 좀 우쭈쭈 해주는 게 필요했던 거지. 이렇게 보니 나 진짜 F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_^; 아구 힘들었어? 그래도 잘했어. 나 진짜 X 같았어~ 하면 어떤 X이야 하고, 그냥 가볍게 맞장구치는 그런... 그런 게 필요했던 것 같다.


아, 모르겠다. 솔직하지 않은 게 죄인가? 누구나 다 솔직하게 말하는 걸까... 싶다가도. 그러지 못한 내가 짜증나고 원망스럽고... 어떤 인간 말대로 난 그다지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아서. 애매해서 힘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희대의 썅X처럼 살 걸 그랬나? 스물 일곱이 되어도 난 아직도 내가 어렵고 힘들다.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지금 거실에서 잠을 자고 계시지만~


암튼 그렇다. 오늘의 속사정은 끝. 다음에는 더 좋은 이야길 해볼 테야.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9화돌고래 IQ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