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결석계 09화

돌고래 IQ로 살아남기

내가 정신병동에?

by 까밀

생일을 3주 앞둔 12월, 구름이 잔뜩 낀 어느 날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대학병원에 오긴 했지만, 솔직히 내가 이렇게 심각한 수준인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첫 진료 때 교수님이 한참 어린 나에게도 깍듯하게 인사를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들으시더니, 그다지 무겁지는 않은 말투로 말하셨다. 입원이 필요하네요. 빨리 해야 해요. 그동안 버티느라 애썼네요…. 내가 하다 하다 정신 병동에 입원한다고? 그때 난 우습게도 '언덕 위에 하얀 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내가 그 집에 들어간다고. 진짜로? 그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차라리 오랜 시간 기절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어떡하지? 소문대로 진짜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거 아니야? 들어가기 전까지 별에 별 상상을 했다. 걱정과는 달리 첫 입원 때는 보호자와 입원해서 다행히 보호가 아니라 개방 병동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비교적 증상이 덜한 사람들이 개방에 간다고 하니까,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리고 개방의 좋은 점은, 노트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 (덕분에 병실에서 게임 레이드에 참여했다) 보호병동에는 가지고 갈 수 없는 물품도 있고, 긴 충전기들을 연결할 수 없다. 그리고 치료법에 따라서 폐쇄병동은 핸드폰을 못 쓸 수도 있다. 결론은, 첫 입원 때 나름 행운아였던 셈.


입원을 하게 되면 많은 검사를 해야 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하는 피, 가래, 소변검사를 비롯해서 첫 입원 때는 심리검사, 지능검사를 하게 된다. 몇백 문제에 답을 해야 한다. 객관식으로 된 문제들도 있고, 문장형으로 써야 하는 서술형 문제도 있었다. 그리고 지능 검사는 임상심리사 선생님들과 함께 검사 시간을 가지는데, 이걸로 아이큐와 내가 어떤 쪽으로 지능이 발달되었는지 알 수 있다.


심리 검사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데, 지능 검사 결과가 예상외로 충격이었다. 아이큐가 두 자릿수였던 것. 우울증 증상 중 하나가 지능에 영향을 미치는 거다. 내가 돌고래와 지능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웃지도 울지도 못한답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병증이 악화되어서 그렇지, 원래는 이것보다 10에서 20 정도 높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울증 환자들은 지능 검사가 보통 두 자릿수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그래, 평균 정도는 된다고 하니 살짝은 위로가 됐던 것 같다….


병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우리 병원은 웬만해선 평일마다 전공의 선생님들과 면담을 가진다. 내 첫 전공의 선생님은 꽤 무뚝뚝한 선생님이었다. 거기에 약간의 잔소리꾼 느낌도 있었고. 나한테 관심은 없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정말 친해지기 어려운 유형이었다. 그때 그 선생님이 레지던트 1년 차이셔서 그랬던 건지, 그다지 상담에 익숙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다지 라포(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 형성이 안 됐던 것 같다. 나도 이런 처음 겪는 낯선 환경에서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는다는 마음으로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입원까지는 병동 안에서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일단 내 상태가 정말 안 좋았고… 무엇보다도 말을 잘 안 했다. 의료진에게도 말하기가 버거웠다. 힘든 걸 제대로 토로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약을 정말 많이 먹었다. 지금도 정신과 약만 하루에 약 15알 정도 먹지만, 그때는 더 심했다. 고용량 약을 계속 먹다 보니 잠자는 시간이 많았다. 무슨 정신으로 버텼을까? 깨어있는 시간엔 계속 멍을 때렸던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자살이나 자해 충동이 올라왔다. 약으로 생각을 눌러줘야 했다. 아마 정신과 입원 초기에 모든 환자들이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나는 4년 전의 기억은 뚜렷하게 나지 않는다. 너무 힘들었어서 뇌가 그때 기억을 지운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드는데… 이제는 그래도 그때를 조금이나마 추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한 가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있긴 하다. 잠깐 병원 주차장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거기서 환자복 입은 채로 동기들과 마주했다… 차마 정신과 입원이라곤 말 못 하고, 그냥 어디가 아프다고만 했는데 정말 창피했다. 이제는 당당하게 "나 정신 병동 입원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어려운 게 참~ 많았던 것 같다.


그 이후로 5년 동안 7번을 입원했는데, 병동은 이제 나에게 거의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하도 입원하다 보니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간호사 선생님들 얼굴을 다 기억하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입원할진 모르겠지만, 병동에서 있던 기억은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습기도, 서글프긴 했지만 아주 따뜻했던 시간들이었다.


앞으로 병동 생활이 어땠는지 풀어보려고 한다.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 댓글로 남겨주시기를!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8화아픔에도 끝이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