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빠져 살던 날들

by 위하는 마음

숫자에 매몰되던 시절,
내가 정말 필요했던 건
“네가 잘 버티고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였다.

성과를 내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나는 숫자에 모든 걸 걸었다.

매출, 원가, 목표 달성률, ROI.
스크린 안에 떠 있는 숫자들이 내 존재를 증명해줄 거라고 믿었다.
지표가 오르면 살 것 같았고, 떨어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좋은 숫자도 오래 가지 않았다는 거다.
결과가 잘 나와도 그건 잠깐.
다음 주엔 다시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더 높은 기준이 주어졌다.
이전 성과는 이미 ‘기준선’이 되어버린다.
이기고도 이긴 것 같지 않은 게임의 반복이었다.

시장도, 소비자도 예측할 수 없었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더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었다.

숫자는 냉정하다.
성과도 정확히 보이고, 실수도 숨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애썼다. 더 정확하게, 더 깔끔하게.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놓친 건
“내가 잘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고 있는가”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나를 설명하는 말은 “성과 잘 내는 사람”, 그게 전부였다.
그 말이 처음엔 자랑스러웠지만, 나중엔 무서워졌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걸까?

사람들과 웃으며 밥 먹는 시간도 줄어들고
회의 중에도 계속 보고서를 수정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나를 인정해주는 순간은
상사가 수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 3초였다.
3초를 위해 3주를 버티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금의 나는 나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조금씩, 수치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번 기획이 어떤 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일은 나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있지?’
성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외면이 아니라 내면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성과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수치들이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팀, 감정, 그리고 내가 지키고 싶은 나의 기준.
그 모든 것이 함께 있어야, 일은 지속 가능해진다.

일은 결국 합의의 기술이다.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은 판단을, 리스크를 나누는 선택을 만드는 일.

숫자는 방향이지, 나를 정의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야 조금씩 그걸 배우고 있다.

성과지표는 일의 결과이지, 나의 사람됨이 아니다.
지표를 잘 관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지표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성과는 숫자였지만, 일은 결국 사람이었다.
숫자에 빠져 살던 나를 꺼내준 건, 숫자가 아닌 질문 하나였다.
“이 일, 나를 지키고 있나요?”


[다음 화 예고]
4화. 다정한 동료는 회사를 살린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건,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
‘같이 버티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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