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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 노래가 싫다.

사랑은 예쁜 거품이다.

by 승란

어릴 적에 순정 만화 마니아였던 나에게

사랑은 꿈같은 거였다.

아름다운 꿈
설레는 꿈
그리고 꿈만 같은 꿈


사랑 노래가 가슴을 콕콕 찌르기도 했었다.
저건 내 이야기였기에
울면서 따라 부르기도 헸다.

사랑 때문에 사는 게 좋았고
사랑 때문에 죽고 싶었다.


그런 내가 나이 들면서

사랑이 밥 먹여 주냐?'는 말이 이렇게 와닿게 될 줄 몰랐다.


돈 걱정 없이 살았던 나는 돈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고

사랑해서 결혼했기에 가난한 시댁과 착하지만 무능한 남편에게 지치게 될 줄도 몰랐다.

그저 성실하면 다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신혼집부터 빛으로 시작한 우리는 20년이 넘도록 빛을 벗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실직과 이직이 잦았고 돈도 떼이고 다녔다.

월급을 주지 않는 달도 많아서 나도 맞벌이를 해야 했지만 아이가 아파서 일을 하기도 힘들었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무능하고 그저 착하기만 한 남편에게 나는 지쳐갔다. 이런 줄 알았으면 대기업을 다니던 내가 일을 하고 남편이 전업주부를 할걸 그랬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커서 내 손이 덜 가게 되어 나도 일을 시작했는데 무슨 일이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딱 내가 번 만큼 남편은 덜 벌어온다. 그러니 나아지는 게 없다.

사랑은 간 곳 없고 원망과 피로감만 쌓이는 결혼, 나는 이 사람과 왜 사는 것일까?

졸혼? 이혼?


아이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번번이 참았던 말

그간 여러 번 생각한 졸혼 그리고 이혼


그런데 그놈의 정이 원지 20년을 넘게 살다 보니 나도 짠하지만 남편도 짠하다. 아니면 이걸 의리라고 해야 하나?


남들도 세월이 만든 정 때문에 다들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사랑이라는 색은 오래전에 바랜 흐린 회색이지만

내게 정이란 옷에 붙은 껌 같아서 깨끗이 안 떨어진다.


사랑이란 예쁜 거품,

그 거품 때문에 내가 감당할 알맹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랑 노래가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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