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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템플스테이가 이렇게 시끄러워

[버킷리스트] : 조용한 곳을 찾아서 (1)

by 승란
일상을 내버려 두고 오셨지요?
편안히 앉고, 편안히 걷고, 편안히 먹고, 편안히 물으세요.

내 직업은 말을 많이 하며, 특히 크고 또렷하게

말해야 하는 강사이다.

늦은 나이에 새로 찾은 직업인지라 열정을 쏟고 있지만 예전 갖지 않은 체력 때문에 가끔은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재충전을 위하여 조용한 곳을 찾기로 했다.

어디 보자 절간만큼 조용한 곳이 있을까?

템플스테이라면 물소리, 새소리, 풍경소리가 나는 곳에서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안히 앉고, 편안히 걷고, 편안히 먹고, 편안히 물으세요.'

고요와 사색을 원하는 나에게

이렇게 마음에 드는 말이 또 있을까?

문구에 이끌려 경기도에 있는 산속 오래된 사찰을

바로 예약했다.

절은 조용하다?


체크인은 3시까지 이지만 일찍 와도 된다고 하여

점심공양도 가능한 오전에 도착했다.

이런 맙소사!! 내가 뭘 잘 모르고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를 간 모양이다.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

공사 중인 건물의 망치, 드릴 소리

제초기 굉음

방음이 안 되는 방

발로 차야 열리는 뻑뻑한 문

단체 숙박객의 잡담


템플스테이의 첫인상은 이렇게 고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방을 배정받자마자 나는 옆방 두 여성의 영화 이야기부터 강제로 들어야 했고,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영화 줄거리, 잘생긴 주인공의 인물평까지 상세 내용을 알게 되었다.

참을까?

뭐라 할까?

그냥 내가 퇴실해 버릴까?

나 오늘 망친 건가?


난 불교 신자도 아닌데.. 절간이 조용하대서 온 건데..

내가 생각한 침묵과 무언의 고요는 없었다.

저녁 식사 후의

템플스테이 공식 일정인 예불을 위해 모인 자리에는

나와 무척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내 또래 아줌마가 있었고

너무 좋은 분이었지만 지쳐서 입을 쉬러 온 나는

그녀 덕분에 열심히 수다들 떨어야 했다.

저녁 예불 후에는 각자 기도나 명상을 하라고 했는데

하필 이야기가 너무나 하고 싶은 스님이 계신 법당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스님의 마음 비우기 사설을 들어야 했다. 궁금한 거 물어보라 하시더니만 질문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해주고 싶은 좋은 이야기를 한참 담아 주신다.


불면증이 치유된 듯 오랜만에 너무 잘 잤어요.

나는 한동안 불면증으로 고생을 했다.

그래서 참가자 리뷰에 불면증이 치유된 듯 잘 잤다고 했던

그 말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밤 8시면 스님들도 주무신다고 돌아다니지 말라는 조용한 산사에서 옆방의 그녀들은 또 시끄럽다.

템플스테이는 한옥이고 문도 옛날 문이라

옆방 이야기가 너무 잘 들린다.

낮에 '방음이 안되어 다 들린다.'라고 한마디 했건만

10시가 되어서야 내가 생각하는 고요가 찾아왔다.

10시면 우리 집도 조용하다.

나 여기 왜 온 거지?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오늘도 틀렸구나.

이렇게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4시 반... 새벽 예불,

지금이야 말로 시끄러울게 뭐가 있겠냐 싶은 아주 이른 새벽

조용히 일어나 어스름을 지나 경건한 마음으로 간 법당에는

헐~ 대중교통은 없을 그 시간에 산중으로 관광버스를 타고 왔는지 한 무리의 참배객들이 있었고

식사를 하는 공양간에서는 무언을 하라 안내받았건만,

단체로 온 그들은 신이 나서 웃고 떠들고

참으로 그 새벽부터 기운이 넘친다.

'아 시끄러워....'

식사 후 난 또 어제 그 수다쟁이 아줌마를 만나서

새벽부터 이야기를 해야 했다.

급기야 자기가 여기온 이유,

묻지도 않는 가정사를 술술 풀어내는데 피할 데도 없으니 그냥 포기하고 들어 주었다.

이분도 예전의 나처럼 지금 화가 많이 났구나.

알지 알지, 참자 참자하며..

7시 반에 방으로 돌아온 나는

뭔가 일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은 피곤함에

퇴실은 점심 공양까지 하고 나오는 거였지만 방을 깨끗이 정돈하고 조기 퇴실했다.


어차피 인생이란 조용히 사는 건 힘들다.


잘 쉬셨냐며 만족도 조사를 부탁하는 직원분들의 환한 미소

그리 밝은 분한테 아침부터 'No'를 할 수 없었던 나는

'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유명한 관광지를 찾은 내가 잘못이지'하며

내 버킷리스트를 이룰 장소를 다시 찾기 위해서

서둘러 절을 떠났다.


어쩌면 산다는 게 늘 평온하고 조용하기만은 힘든 것처럼

조용한 곳을 찾는 내가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고요를 찾는 이유부터 차분히 들여다보아야겠다.

어딜 가야 절간처럼 조용할 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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