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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에 대하여

일상을 덮치는 불운

by 프레디

김도토리는 우리 반 2번이다.

도토리는 키가 작다. 키 작은 건 1번이다.

도토리는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을 가졌고 웃을 때는 이를 드러내며 씩 환하게 잘도 웃는다.

5학년 답지 않게 작고 귀여운 남자아이. 그게 도토리를 향한 나의 생각이었다.


“이 씨발새끼야!”

평화로운 5학년 우리 반 쉬는 시간에 들린 소리였다. 나와. 3차례를 무섭게 불러 나온 아이는 바로 도토리였다.

도토리 소년은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에게 혼날까 봐 무서운 것 같았다.

도토리 소년에게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해보라고 했다. 도토리 소년은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 했던 말을 왜 다시 못 하냐고 물었더니 선생님 앞에서 부끄러워서 못하겠단다.

나는 도토리를 귀여워했고, 녀석도 아마 그 사실을 알았을 거다.

도토리는 내가 자신에게 실망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하지도 못할 말을 하고 다니는 건 도토리 네 인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사람들은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나의 말에 도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눈가에 눈물이 슬며시 차올랐다.

도토리는 이후에도 씨발 따위의 욕을 2차례 더 해서 혼이 났다. 반성문도 썼다.

지금은 잠잠한 걸 보니 조금 더 자라서 이젠 선생님 없는 자리에서 욕하는 법도 배웠나 보다.


도토리의 동태가 이상해진 건 이번 주부터였다. 도토리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어머니께 전화가 와 받아보니 집안 사정 때문에 학교를 보낼 수 없다고 하셨다. 어떤 집안 사정인지는 말해줄 수 없다는 말에

나는 문득 막연한 불안감이 차올랐다. 어젯밤 뉴스로 진도에서 일가족이 차에 탄 째로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내용을 본 탓이었다.

진도의 사건은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가 남자 고등학생인 두 자녀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함께 바다에 수장시킨 살인사건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 같다. 재차 물었지만 답하기 어려워하는 어머니를 더 캐물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출근길에 도토리를 찾았다. 또 도토리가 없었다. 9시가 돼도 오지 않는 녀석에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당황한 목소리로 도토리가 학교에 가지 않았냐며, 사실은 자신이 큰 병에 걸려 입원한 상태임을 전하셨다.

아하! 이제야 상황들이 조금 이해가 됐다. 도토리는 1교시가 끝나갈 무렵 머리를 긁적이며 교실문을 들어왔다.


도토리는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를 왔다. 스트레스에 예민한 아이들은 식사를 잘하지 않고 학교에 오면 입냄새가 난다.

위산의 냄새가 올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도토리의 식사가 걱정되어 물어보니 아침은 먹지 않고, 점심은 먹고, 저녁은 안 먹는단다.

하루 중에 점심만 식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성인도 아니고 한창 자라야 하는 12살 아이의 식사량으로는 터무니없다.

도토리 엄마가 입원을 했어도 아빠는 있을 텐데 아버지는 언제 집에 계시냐고 물으니 집에 계신단다.

저녁에 라면을 드시는데 도토리는 라면이 싫어 먹지 않았다고 했다. 배고파요 배고파요 말을 많이 하는 녀석인데 마음이 쓰였다.


다음 주는 생활수영이다. 수영장을 가야 하는데, 이 녀석 수영복은 있을까?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역시나 물에 안 들어가겠다고 한다.

왜 안 들어가냐 물어보니 수영복이 없단다.


아버지한테 수영복 사달라고 하면 안 돼?

돈이 없어요.


마음이 찢어진다. 네이버를 뒤져보니 다행스럽게도 수영복이 그리 비싸지 않다. 내가 사 줄 테니 생활수영 하자.

도토리와 수영복을 고르고 포스트잇에 내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저녁에 배고프면 연락해. 나는 1인가구니까 너랑 같이 먹으면 적적하지 않고 좋아.

선생님이 짜장면 사줄게! 그래도 6년을 일하니 이런 말은 하고 다닐 수 있어 기쁘다.


내가 학교를 다닐 적 받았던 선생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는 마음이다. 도토리의 어머니가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도토리가 씩씩하게 버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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