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형적인 대학교라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미국에 오기 전 저는 전원적인 환경의 넓은 부지에 자리 잡은, 19세기 영국풍의 건물이 가득한, 그리고 한쪽 편에는 멋진 미식축구 경기장이 있는, 그러한 캠퍼스의 모습을 상상했었습니다.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교 (Columbia University)에 박사과정을 하러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맨해튼의 110가 이북, 모닝사이드 하이츠 (Morningside Heights)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교는 이러한 저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도심에 위치한 특성 때문에 비교적 작은 캠퍼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과는 달리 대학 캠퍼스의 경계가 명확합니다. 지금의 캠퍼스는 1894년 당시 뉴욕 최고의 건축가였던 찰스 맥킴 (Charles McKim)이 캠퍼스 디자인을 총괄했는데, 중간에 광장이 있고, 그 광장 주위로 건물들이 배치되면서 자연스럽게 캠퍼스와 동네의 경계선을 명확히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캠퍼스의 경계도 불분명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서로 다른 건축가들의 건물이 세워진 여느 미국 대학교 건물들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하버드를 포함하는 미국 북동부의 많은 대학들이 영국풍의 벽돌 건물 (조지안 양식) 또는 영국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 건물을 연상시키는 고딕 (Gothic) 건물을 많이 지었지만, 19세기 후반 뉴욕 최고의 건축가들에게 영국풍 건물의 인기는 시들해졌나봅니다. 그래서 컬럼비아 대학교 캠퍼스는 여느 미국 대학들과는 달리 서양 문화의 원조격인 그리스 로마 양식을 더욱 충실히 계승발전시킨 보자르 (Beux-Art) 양식으로 지었습니다. 일단 116가 입구에 두 개의 석상이 서 있는데, 그리스 및 로마 시대의 옷차림을 한 인물들입니다. 책을 들고 있는 여성 석상은 레터스 (Letters)라고 불리고, 지구를 들고 있는 남자의 석상은 사이언스 (Science)라고 명명됐습니다.
이 입구를 통과해서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잔디밭이 있는 광장이 나타납니다. 그 남쪽 끝에 그리스식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직사각형 건물이 이 학교에서 제일 큰 버틀러 도서관 (Butler Library)입니다. 그리고 광장의 북쪽으로는 계단이 있고, 거기에 알마 마터 (Alma Mater)라 불리는 월계관을 쓴 여신상이 있습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모델로 한 동상입니다. "알마 마터"가 "모교"라는 뜻으로 널리 통용되지만 이 여신상을 지칭하는 이름의 라틴어 원래 뜻이 "먹이고 키워주는 어머니"입니다. 학생들에게 지혜를 양분처럼 제공하며 키운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그 뒤쪽으로 원형 돔의 로우 라이브러리 (Low Library)가 있습니다. 서양 건축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로마의 판테온의 원형 돔 모습을 재해석한 건물입니다. 사람들이 도서관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학교 본부 건물로 쓰이고 있습니다. 서양의 고전문화에서 제일로 쳐주는 그리스 로마 양식을 철저히 따른 캠퍼스 디자인입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원래 미국 독립전쟁 이전인 1754년 킹즈 칼리지 (King’s College)라는 이름으로 월가 (Wall Street) 근처에 처음 세워졌던 학교입니다. 독립전쟁 이후 영국 왕을 기념하는 이름을 더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1784년 미국 대륙을 상징하는 용어인 컬럼비아로 학교 이름을 개명했습니다. 원래의 월가 캠퍼스가 비좁았던 관계로 19세기 중반에는 지금의 미드타운 록펠러 센터가 위치한 곳에 부지를 사서 학교 캠퍼스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이 되자 미드타운이 번잡한 도심으로 변했습니다. 이렇게 되며 학교가 그 이전에 사들인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학교의 재정이 탄탄해졌습니다. 부동산으로 돈도 많이 벌었고, 또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던 당시 상황이 합쳐지며 학교가 1896년에 지금의 모닝사이드 하이츠로 캠퍼스를 또다시 옮겼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학부생 수가 8천 명 정도라 하고요, 거기에 더해 대학원생이 5천 명가량 됩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삼십 년 전에 비해 동양인 학생수가 많아진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 컬럼비아 소속 여자대학 바너드 칼리지 (Barnard College) 학생들,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 북쪽에 위치한 유니온 신학교 (Union Theological Seminary) 학생들이 이 동네의 젊은 분위기에 일조합니다. 그리고 유니온 신학교 길 건너편에 맨해튼 음대 (Manhattan School of Music)가 자리 잡고 있는데, 제가 이곳에서 공부하던 시절 캠퍼스 옆에 위치한 어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여기 음대생들을 고용해서 토요일 저녁마다 오페라를 공연을 했었습니다. 젊은 성악가들이 장난기 있는 모습으로 오페라 아리아를 열창하면 식당을 빽빽하게 메운 관객들이 브라보를 연발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러한 컬럼비아 대학교가 지난 학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시위로 시끌벅적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규탄한다는 시위자들이 버틀러 도서관 앞에 텐트촌을 만들고 농성을 하던 와중에 이 대학 총장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 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학생들이 제대로 보호를 못 받고 있다며 의원들의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기부금을 내던 유대인 부호들이 반 유대적 정서에 대처하지 않으면 돈줄을 끊겠다고 나왔습니다. 요즘 대학 총장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학교 재정을 키우는 일인데, 미국 의회와 유대인들의 협조가 없으면 총장이 결코 좋은 실적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직후 총장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서 시위대를 해산하게 됐는데 평화로운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했다고 해서 더 큰 분란이 생겼습니다. 학교 간부들 중 “유대인들의 돈에 학교가 휘둘린다”는 문자를 공유한 두 사람이 반 유대적인 정서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습니다. 시위대 중에서 외부인들도 있다고 해서 이제는 캠퍼스에 외부인들 출입을 통제를 합니다.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은 이런 골치 아픈 상황에서 더 이상 일할 의욕을 잃었는지 최근 사임하고 영국 외무부에 새 직장을 얻었다고 하는군요. 곧 개학을 하는 학교 캠퍼스에는 아직도 긴장감이 감돕니다. 학교 캠퍼스 길 건너편의 한 아파트에는 학교 측에 굴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커다란 팔레스타인 국기를 걸어 놓았고요, 그 맞은편 학교 입구에는 학교 경비원들이 출입자들의 학교 신분증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가 위치한 110가부터 125가까지의 맨해튼 서쪽 동네를 모닝사이드 하이츠라고 부릅니다. 작은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 허드슨강가 공원에서부터 캠퍼스로 걷다 보면 이를 실감합니다. 여기서 컬럼비아 대학에 이르려면 두 개의 언덕을 올라야 합니다. 두 번째 언덕 앞에는 석벽이 있는데, 해가 질 무렵에 오면 이곳에 사는 너구리들이 많이 출몰합니다. 그 석벽을 따라 나 있는 계단을 올라 브로드웨이에 도달하면 대학교 캠퍼스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더 동쪽으로 가면 모닝사이드 공원 (Morningside Park)이 나옵니다. 모닝사이드 하이츠가 고지대이고, 거기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위치에 공원이 있는 거죠. 언덕 위에서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면 확 트인 시야로 맨해튼의 이스트 할렘 (East Harlem)이 보입니다. 이러한 위치적 특성 때문에 모닝사이드 하이츠라는 지명을 갖게 됐을 듯합니다.
참고로 제가 처음 뉴욕에 왔던 1990년대의 모닝사이드 공원은 위험해서 가지 말아야 하는 곳으로 여겨졌었습니다. 그 공원의 동쪽은 저소득 흑인 동네였고요. 그 이후 뉴욕의 치안이 좋아지며 그 지역에도 다른 인종들이 이사 왔습니다. 저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도 그 지역으로 이사해 살면서 아침마다 공원에서 반려견 산책을 시킨다고 하고요. 하지만 몇 년 전 그 공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 세간의 관심을 끈 적이 있습니다. 바너드 칼리지 여학생이 밤에 혼자 여기에 왔다가 휴대폰을 뺏으려는 10대 깡패들에게 둘러싸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전화를 안 뺏기겠다고 저항하며 다투는 와중에 깡패들이 휘두른 칼에 찔렸어요. 뉴욕이 많이 안전해졌다지만 밤에는 조심해야 하는 동네들이 분명 있습니다.
모닝사이드 하이츠에는 컬럼비아 대학교 이외에도 외지인들의 관심을 끄는 곳들이 더 있습니다. 일단 컬럼비아 대학교 캠퍼스의 남단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고풍스럽고 거대한 성공회 교회가 보입니다.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 (Cathedral Church of St. John the Devine)입니다. 1892년 짓기 시작한 건물인데 면적으로 따지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크다고 하고요, 성공회 교회 중에서는 세계 최대이라고 합니다. 입구에서 보면 완성된 교회처럼 보이는데, 아직도 계속 짓고 있다고 하는군요. 교회를 처음 만들 당시 건축가가 중간에 교회 이사회와 사이가 나빠져 해고당하는 일도 있었고, 또 중간에 자금이 떨어져 몇십 년간 공사가 중단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회 중간에 계획된 타워가 아직 안 지어졌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공사 중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영국의 국왕이 성공회 교회의 명목적 수장이다 보니 영국 왕실에서 뉴욕에 올 때 여기서 행사를 갖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120가에 록펠러 가문의 돈으로 지어진 리버사이드 교회 (Riverside Church)가 있습니다. 1930년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입니다. 록펠러 가문은 개신교 침례교도들이니 원칙대로 했다면 사람 인물 조각이 없는 교회를 지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럽풍의 교회를 너무 사랑했던지 새로 짓는 교회를 프랑스의 화려한 샤르트르 대성당 (Chartres Cathedral)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연히 여기저기 가톨릭 풍의 장식과 사람 석상들이 있으니 침례교회로 운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무종파 교회로 운영하면서 침례교도이든, 가톨릭교도이든, 콥틱 교도이든, 기독교의 모든 분파를 환영한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기독교 종파인 콥틱교는 향을 피우며 예배를 보는데요, 그들을 위해서 교회 내부에 따로 예배당 공간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제 눈에는 교회의 입구의 화려한 석조 문양들이 특히 아름다운데, 조그마한 인물 문양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중 기독교와 상관없는 피타고라스 (Pythagoras)와 알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을 묘사한 조각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부의 제단 뒤편에도 사람들의 석상이 벽을 장식합니다. 미국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 서사시 <실낙원 (Paradice Lost)>의 저자인 영국 시인 존 밀턴 (John Milton)의 석상이 보입니다. 이 교회를 지은 사람들이 문학과 과학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 놀라운 것은 가톨릭 교회와 싸운 개신교의 창시자 마틴 루터 (Martin Luther),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개신교의 리더로 활약한 존 녹스 (John Knox)의 석상도 보입니다. 그들의 추종자들이 우상숭배를 배격한다고 가톨릭 교회의 석상들을 많이 파괴했다고들 하던데, 이들이 자신들을 묘사한 석상들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는군요.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119미터 높이의 종탑입니다. 겉은 석조 교회처럼 생겼지만 1930년에 철근을 뼈대로 해서 지은 건물이니 미국에서 가장 높은 교회 타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미리 교회 웹사이트를 통해서 이 종탑 꼭대기까지 안내하는 투어에 등록할 수 있는데요, 표를 사서 가면 교회의 기념품 가게 직원이 가게 문을 잠시 닫고 관람객들을 안내합니다. 가이드는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종탑의 20층으로 방문객들을 안내합니다. 거기에서 계단을 더 걸어 올라가면 수많은 종이 보입니다. 그 한 중간에 유리로 둘러싸인 방이 보였는데, 음대 여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일요일 오후 3시를 맞추어 교회의 종들을 울리는 악기를 연주를 하고 있더군요. 처음엔 요한 파헬벨 (Johan Pachelbel)의 캐논 (Canon)이 들리길래 찬송가 이외에 클래식 음악도 연주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일본 만화영화의 주제가 <인생의 회전목마, Merry Go Round of Life> 음악이 종탑에서 흘러나오더군요. 교회의 석상과 종탑 음악으로 판단하건대 이곳은 엄숙하고 교조적인 다른 교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더군요. 이렇게 유연한 교회 분위기가 방문객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네요.
걸어서 몇 층을 더 올라 마침내 종탑의 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는 이 교회의 종탑에 버금가는 고층 건물이 많지 않으니 사방으로 확 트인 도시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서쪽으로는 허드슨강이 보였습니다. 강 폭이 넓은 허드슨 강 풍경이 무척 아름답더군요. 북쪽으로는 작은 석조 건물이 눈에 띄는데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사령관을 역임하고 18대 미국 대통령이 됐던 율리시스 그랜트 (Ulysses Grant)의 무덤이었습니다. 아마도 역대 미국 대통령 무덤 중 가장 크고 장엄한 듯합니다. 그리고 남동쪽으로는 컬럼비아 캠퍼스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종교, 정치, 인권, 돈, 그리고 표현의 자유 문제가 뒤얽혀 이제는 마치 전투를 앞둔 어떤 비장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인데, 교회 꼭대기에서 보이는 학교 전경은 역설적으로 평화롭기 그지없었습니다. 종탑 꼭대기에서 <인생의 회전목마>를 들으며 느끼는 이 평화로운 기운을 땅에 있는 그들과 공유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