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사랑

by 구육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 누구도 나보다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을 나만큼 사랑한다.


당신을 사랑하게 될수록

당신을 향한 마음이 짙어질수록


나는 나를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나만큼 사랑하는 당신을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언제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부끄러운 시이다. 아마 20대 초반이었나. 그때는 이런 시 같은 글을 많이 썼던 것 같다. '당신'은 이미 잊힌 지 오래이고, 새로운 '당신'도 지금은 없지만, 왜인지 글을 쓰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아마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나만큼 사랑하는 것이 가장 많이 사랑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저 당시의 나에게는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때의 나는 나 대신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나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은 그때의 나에겐 너무 큰 상처와 아픔이었고, 결국 나는 나를 무조건 1순위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마음가짐을 다잡고자 이런 시를 쓴 것 같기도 하다. 나만큼 사랑한다는 것이 좀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름 낭만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할 줄 몰랐던 시절의 나는 꽤 힘들었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았다. 사실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내 생각에 나는 지금도 진짜 힘든 것들이나, 말하기 시작하면 길어질 것 같다는 감이 오는 것들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으려 한다. 어쨌든 그때의 내가 힘든 건 나밖에 몰랐다. 아무도 몰라주고 나만 아는 것들, 그래서 그냥 내가 알아주기로 했다. 내가 나를 알아주고 위로해 주기로 했다. 더 아프기가 싫어서 나만 생각하고 싶었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며 생긴 내 나름의 방어기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맨 처음엔 그냥 이기적으로 살려고 했다. 그래봤자 특별히 한 것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으니 조금 편해지긴 했다. '이 세상에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 내 탓을 하더라도 '저 사람은 미친놈이다. 나는 아무 잘못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만 봤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그때 알았고, 나와 대화를 했고, 나를 아껴주었다. 그동안 내가 나에게 준 상처들이 너무 아팠고 미안했다. 왜 그랬는지 모를 정도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정말 조건 없는 내 편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나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사랑받고 있고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니까, 내가 나에게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 스스로에겐 소중한 존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소중한 어떤 사람을 어떻게 타인이 함부로 상처 입힐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타인으로부터 상처 입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함부로 대해지기 싫다. 그러니 나 역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히 내가 '나'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한, 너무 소중한 사랑받는 존재인 '나'이기 때문이다. 상대방도 그 스스로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나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사랑받고 소중한 존재니까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다 나보다 나중이야." 같은 생각은 잠깐 했을지 몰라도, 남에게 민폐 끼지는 행동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랬다면 꽤나 꼴 보기 싫었을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보니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준다는 건 너무 대단한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힘들어도 상대방이 조금이나마 잘 되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을 알기에 그 도움이 너무 따뜻하고 힘이 되었다. 도움받을 때의 그 감사한 마음이 좋았기 때문에 나도 돕고 싶었다. 나에게 감사함을 느꼈으면 좋겠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되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그 경험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은 너무 좋았으니까. 지금의 내가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을 가졌다. '나'라는 소중한 사람이, 또 다른 소중한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후부터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다. 물론 좋은 사람도 싫은 사람도 있지만, 그냥 설명하기 어려운 내 나름의 기준을 통해 편하게 대하려 했다. 다가가고 싶은 사람에 먼저 다가가는 것은 여전히 어렵긴 해도, 저 사람에게는 어떤 방법을 써야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한다. 가까워질 기회가 언젠가 한 번은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지만, 뭐 기회가 없으면 연이 아니구나 하고 아쉬워하면 그만이다. 싫은 사람이라면 뭐 최선을 다해서 안 보면 그만이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두면 된다. 그 미움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난 나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를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어져도 괜찮다. 물론 많이 힘들고 외로울 수 있지만, 나만은 나를 사랑할 테니까 결국 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난 혼자가 될 수는 있어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솔직히 혼자가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나랑 사이좋게 지내면 된다. 나를 아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주기적으로 내 상태를 내가 알 수 있게 업데이트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절대 나에게 스스로 상처 주지 않겠다." 내가 나와한 약속이다. 과거에 내가 한 선택에 후회는 할 수 있어도, 나를 미워하지는 않기로 약속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은 얼마든지 나에게 상처 입힐 가능성이 있다. 고의든 아니든 그럴 수 있다. 그러니까 단 한 명, 나만은 나를 믿고 절대적인 내 편이 되어 절대 상처 주지 않기로 약속했다. 내가 힘들 땐 나에게 의지하면 된다. 절대 배신하지 않는 내가 있다. 언제나 내 편인 내가 있다. 나와 평생을 함께하고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할 사람은 단 하나 '나'뿐이다.

나를 사랑하는 데 이유 따위는 필요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사랑을 받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받는 것뿐이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오직 사랑을 주는 사람만이 결정할 수 있다. 특정한 조건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무'조건인 사랑이니까. 받는 사람이 사랑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 주지 않느냐고 요구할 수도 없다. 애초에 조건이 없었으니까. 사랑을 주는 사람이 주지 않으면 그냥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지 않은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 '나'니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라는 말이 나에겐 이런 의미인 것 같다. 제일 소중한 나한테도 못해주는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겠는가. 사랑받고 있는 사람은 빛이 난다. 우린 누구나 항상 빛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다. "나는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유치하지만 사랑에 순위를 매긴다면 공동 1위가 가장 높은 것 아닐까? 그럼 적어도 나보다 '더' 사랑하지는 않는 거니까 말이다. 만약 다른 사람을 너무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쓴 글이 위에 있는 시였다.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만큼 나도 사랑해 주면 된다. 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고 싶으니 나를 더 사랑한다. 나를 더 사랑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니, 말 그대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 사람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더 사랑한다면, 정말 사랑이 넘치는 삶이 될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은 너무나 큰 행운임이 틀림없다.


타인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선, 그만큼 나에게도 신경을 써주고 돌봐주면 된다. 내가 정말 그 정도의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능력 밖의 일을 무리해서 지속한다면 얼마 가지 못해 고장 나 버릴 것이다. 물론 당연히 가끔 무리할 수도 있고, 가끔 실망할 수도, 실수할 수도 있다. 원래 그러면서 사랑하는 거고, 그런 게 사람 사는 일이지 않겠는가. 다만 내가 괜찮지 않은데, 어떻게 사랑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괜찮지 않은 상태에서 주는 사랑을 받는 사람도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다.

천천히 늘려나가도 괜찮고, 이미 하고 있는 것을 잘해도 괜찮다. 심지어 줄어들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상태가 안 좋으면 자신을 더 많이 돌볼 수도, 상대를 더 많이 돌볼 수도 있다. 줄어든 다시 늘리면 되는 것이고, 더 진하게, 더 단단하게, 더 높이, 더 밝게, 더 뜨겁게 등등, 사랑을 하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다. 단순히 뜨겁네, 식었네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잴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다.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 틀에 사랑을 끼워두고 어쩌네 저쩌네 하기엔 사랑은 너무 아름답다. 더 다양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난 결국 내가 행복하고 싶다. 자신이 행복한 길이 상대방의 행복을 보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냥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방식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방식도, 또 다른 무수히 많은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서로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쳐나가면 된다. 그런 시간들이 모두 추억이 되고, 사랑이 된다. 상호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상대가 고치지 않는다고 화낼 것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실망할 것도 없다. 두 사람이 하는 사랑에서는 둘만의 답을 찾으면 된다. 다만 서로의 중간 지점이 두 사람의 양보를 통해 맞춘 행복한 지점이 아닌, 그냥 둘 다 고통받는 지점이라면 반드시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고통을 받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대로 계속하면 된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행복하려고 하는 거니까.


사랑을 말하기엔 내가 많이 부족하겠지만, 이런 글을 쓰고 보니, 내가 정말 나를 생각하듯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상처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양심에 걸린다. 분명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고, 그 사람은 나로 인해 힘들었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입었다면, 정말 죄송하다고, 변명의 여지없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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