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리리리~~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놀라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 5시 30분.. 아씨 또 누가 새벽부터 지랄이 고하며 휴대폰을 들어 보니 우리 회사 1년 차 계약직원 유리였다. “어 그래 유리야. 무슨 일 있어? 새벽부터 전화를 다 하고 “라고 하니 전화기 너머에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놀라서 “왜 그래? 무슨 일이야”재차 물었지만 유리는 말없이 계속 울기만 한다. 일단 안심을 시키는 게 먼저다 싶어 “괜찮아 언니한테 이야기해 봐. 따뜻한 물 한잔 마시고, 마음을 진정시켜봐”한참을 흐느끼던 유리는 “언니 저 남팀장한테 당했어요. 어제 우리 팀 회식을 했는데 제가 좀 과음을 했나 봐요. 눈을 떠보니 침대옆에 남팀장이 누워있고 제 가방이랑 입었던 코트도 없어요”라며 또 흐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너무 놀라 “거기 어디야?”“저는 몰래 모텔에서 나와 택시 타고 집에 도착했어요. 저 어떡해야 돼요?”라며 계속 흐느낀다. “일단 내가 출근해서 너 휴가 처리하고 상부에 보고한 후 연락할 테니 혹 남팀장 연락 오면 받지 마”라고 안심을 시키고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길에 오른다. 내가 노조 여성부장이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출근하여 회사 사장실로 찾아가 어제 발생된 일을 자세히 설명 후 다음 주면 계약직원 재계약일인데 그걸 미끼로 이런 천벌 받을 짓을 할 수가 있는지, 회사 측에서 진상조사 철저히 하고 해당직원 징계를 확실히 해달라고 요구한 뒤 유리집으로 향했다. 유리는 방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다 나를 보고 오열을 터트린다. 유리를 안심시키고 같이 경찰서로 가서 신고를 하고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회사로 돌아오니 남팀장을 비롯해 간부들과 다 같이 회의한다며 회의에 참석하라고 한다. 회의자리에서 남팀장은 어제의 일을 간부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정말 억울합니다. 유리 씨와 서로 동의하에 모텔에 간 것뿐인데 이렇게 성폭행범으로 몰리다니 어이도 없고 기가 막힙니다”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설명을 하길래 “남팀장님,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나이 차이가 20년이나 나는 어린 후배한테 어쩜 그럴 수가 있어요? 남팀장님도 딸을 키우는 입장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합리화만 하고 너무 하시네요.”라고 쏘아붙이니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당신이 뭔데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해”라며 나를 몰아세운다. 같이 있던 간부들도 나에게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기다려 보자”는 말을 하며 이 일이 이슈화가 되면 우리 회사에 아주 심각한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자중해 달라는 말만 할 뿐이다. 몇 달 후 재판이 진행되었고 남팀장은 과거 부장판사를 역임한 아주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했다. 모든 직원들은 명백한 성폭행이라며 법의 심판을 단단히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죄로 나온 판결에 모두들 참담한 심정으로 이 나라의 사법부를 비판했다. 피해 당사자인 유리 씨는 눈물을 흘리며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 후로 유리 씨와는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무죄판결이 난 다음날부터 남팀장은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더 기가 막힌 건 어디 대단한 싸움에서 이긴 것 마냥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회사 임원들, 직원들과 악수를 하며 여태까지 마음고생이 많이 심했다고, “술 한잔 먹고 힘 한번 잘못 써서 이 사태가 낫다”며 연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문득 내 얼굴도 남팀장의 악마 같은 얼굴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서에 고소하고 언론사에 제보하려고 할 때 임원 회의에 불려 갔었다. 사장은 ”현재 우리 회사 판매현황과 실적이 너무 안 좋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이슈화가 되면 회사의 존립자체도 위협받을 수 있으니 여직원들과 여성부장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하겠으나 다른 직원들을 생각해서 이쯤에서 덮어줍시다. 그리고 여성부장 이번에 승진시험 합격했다고 들었는데, 좋은 결과 기다려 봅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나갔다. 나는 멍하니 서있다 “다른 직원들의 생활의 터전인 회사가 살아야지 한 명의 억울함은 법에서 해결해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여직원들의 입단속을 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남팀장의 얼굴과 내 얼굴, 사장, 변호사등 모든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혼자 중얼거린다. “모두 똑같은 얼굴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