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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종 Oct 18. 2023

낫개

  열린 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의 짭조름한 향이 나의 콧속을 깊게 파고든다.

  방파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차를 주차하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얼마 만에 찾은 곳인가. 30년이 지났는데 나는 지금 왜 여기로 온 것인가.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 아내와 대화할 때 의례적으로 어릴 적 얘기가 나오면, 나는 항상 낫개에서 놀던 어린 시절을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항상 그리워하면서도 정작 이곳으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오늘은 26년을 근무한 회사에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요에 의한 명예퇴직 신청서를 제출한 날이다. 

  무너지는 자존심과 내 젊음, 꿈을 함께 불살랐던 직장이었건만 마지막에 이렇게 쫓겨나듯 나오게 되니 저절로 내 눈에는 촉촉한 무언가가 자리한다. 이런 내 모습을 누군가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고개를 들고 깊은숨을 들이켜 본다.

  입사 동기인 최부장에 대한 원망도 가득하다. 최부장은 내가 하는 일에 매사 딴지를 걸었다. 똑같은 내용의 보고서도 최소 세 번 이상의 반려를 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겨우 결재를 하곤 했다. 예전에는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서로의 인생 갈림길에서 나는 일상을 선택했고 최부장은 성공을 선택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마케팅부서의 모든 직원들이 제일 두려워하면서도 싫어하는 상사가 최부장이다. 출근과 동시에 최부장의 욕과 짜증 섞인 고함 소리가 들린다. 부하직원들의 말은 전혀 듣지도 않고 동료를 믿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후배 직원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나하고는 매일같이 심한 언쟁을 일삼곤 했다. 

  내가 강제로 명예퇴직을 당한 것도 최부장 때문이다. 최부장이 임원들에게 나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말을 인사팀 친구에게 듣는 순간, 온몸이 떨리고 그를 죽이고 싶다는 감정이 치솟았다. 그를 찾아가 고함치며 항의를 하였으나 나에게 돌아온 건 상사에 대한 항명이라며 가만두지 않겠다는 최부장의 협박이었다.

  그 일이 있고 2개월 만에 이렇게 처참한 몰골로 쫓겨나게 되니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으리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지금 내 나이 쉰넷. 앞으로 무슨 일을 해서 집안을 꾸려나가나. 집에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최부장과의 관계로 명퇴당했다는 말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백수가 된 아빠를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부끄러워하지는 않을까. 잡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깨질 듯한 머리를 식히려 근처 조그마한 슈퍼에서 소주 한 병을 사서 방파제 제방 위에 앉았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제쳤다. 정장 윗도리를 제방 위에 던지듯 놓아두고 소주의 쓴맛을 느끼며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저 앞에 보이는 테트라포드 위의 누군가가 연신 고기를 낚아채고 있다. 호기심에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가 어망을 살펴보니 팔뚝만 한 밀치와 우럭이 뒤섞여 있다. 

  “이야, 오늘 입질이 아주 좋으시네요.”

  낚싯대만 응시하던 남자가 그제야 나를 쳐다본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누구지? 분명 아는 사람인데. 어디서 봤더라.’ 그 남자도 나를 본 적이 있는 듯 묻는다.

  “혹시 여기 사세요. 성함이?”

  “아, 네. 예전에 여기서 살다가 지금은 다른 곳에 사는데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저는 김익제라고 합니다. 혹 성함이? 분명 아는 분 같은데.” 

  “맞네. 내 수용이다. 정수용. 니 장림초등학교 나왔제. 나랑 같은 반 몇 번 했던 익제 맞제. 내 알아보겄나?”

  “이야. 니 몰라보게 달라졌네. 아직 여기서 살고 있는 거가? 반갑다.”

  “아냐. 나도 여행 삼아 이틀 전에 여기 왔어. 낚시도 하고 술도 마시며, 이렇게 혼자 놀고 있다.”

  우리는 악수하며 예전 그때처럼 부둥켜안고 못다 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물고기가 쏠쏠하니 잘 잡히더만 니캉 술안주 해라고 그런갑다. 저쪽으로 가면 정자 있으니까 거기 가서 한잔하면서 얘기나 좀 하자. 내가 뜬 회가 기가 막히다. 참, 니 오늘 시간 좀 괜안나? 회사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가.”

  “아냐, 나도 오늘 휴가 냈어. 바람도 쐬고 생각도 좀 할 겸.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여기 놀러 온 거야. 오늘 한잔해 볼까?”

  수용이는 나를 끌다시피 정자로 데리고 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에 어리둥절했지만 혼자 멍 때리며 깡소주나 마시느니 오래간만에 옛 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익제야 니 뭐하노. 퍼뜩 슈퍼 가서 술 좀 사온나. 나는 회 뜰 준비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다녀온나.”

  수용이가 직접 잡은 생선으로 회 뜰 준비하고 매운탕도 끓일 듯 된장, 마늘을 가방에서 꺼내는 모습을 보고 나는 슈퍼로 향했다.

      

  “익제야, 빨리 똥 누고 나온나. 행님들 먼저 갈끼다.”

  “행님아, 내 인자 다 누간다. 쫌만 기다리라.”

  “문디, 맨날 어디 갈라 하면 똥 누러 가기 바쁘고. 어린 게 와 저란가 모르것네.”

  나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이제 가자며 히죽 웃어 보이니 시원하냐며 형들도 따라 웃는다.

  우리 집에서 낫개까지는 걸어서 40분 거리다. 낫개는 갯바위로 둘러싸인 바닷가인데, 가는 길 양옆으로는 코스모스와 패랭이꽃이 가득 피어 불어오는 바람에 서로의 춤솜씨를 뽐내려는 듯 산들거리는 모습이 마냥 좋아 보인다.

  “행님아, 좀 천천히 가자. 다리 아프다.”

  “짜식이 맨날 죽는소리고. 니도 이제 아홉 살이다. 이 정도 걷고 다리 아프다고 하면 니는 남자도 아니다. 자꾸 그라면 니 꼬치 때 삔다. 빨리 가야 좋은 자리 차지한다. 쫌만 빨리 가자.” 

  형님의 재촉에 뛰는 듯 열심히 걷는다.

  낫개에 도착하니 아침인데도 우리 학교 아이들 반 이상은 여기에 와있는 듯하다.

  전부 하얀 팬티 하나만 걸치고 바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웃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죽은 고동껍질을 귀에 대고 파도 소리가 난다며 신기해하고, 다른 쪽에 있는 아이들은 조그마한 차돌을 주워 탑을 쌓는다고 정신이 없다.

  언제나처럼 큰형은 엉켜 붙은 돌을 반듯이 세우고 있고 작은형은 냄비를 챙겼는지 확인하고 있다.

  “여기에 자리 잡으면 되겠다. 평평하니까 나중에 여기서 점심도 묵고 앉아서 쉬면 되겠네. 냄비도 챙겼고 성냥도 하나 가져왔으니 너거들은 지금은 좀 놀다가 나중에 나뭇가지 마른 거 좀 주워 온나. 다른 사람들이 다 주워가면 우리가 쓸 게 없다.”

  각자 맡은 일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낫개에 오면서 흘린 땀을 씻어내려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큰형은 우리 동네에서 수영을 제일 잘한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벌써부터 저 멀리 보이는 등대를 향해 헤엄쳐 나가고 있다. 나도 큰형처럼 수영을 잘하고 싶은데 가슴 부위까지 물이 차면 겁이 나서 한 발짝도 움직이질 못하겠다. 작은형도 큰형보다는 못해도 동네 아이들 중에서는 잘하는 축에 드는데, 나만 바보같이 수영을 못해서 형들한테 놀림을 받고 있다. 

  “익제야, 니도 수영 좀 배워봐라. 일로 온나. 행님이 가르쳐주게.”

  “거짓부렁 마라. 저번에도 수영 가르쳐준다 캐놓고 물만 잔뜩 묵게 만들고. 내 인자 행님말 안 믿는다.”

  “아니다. 그때는 니가 겁먹어서 버둥대다가 가라앉아서 물 먹은 거고. 겁먹지 말고 행님이 가르쳐주는 대로만 하면 니도 잘할 수 있다.”

  작은형의 말을 믿고 내 허리까지 오는 얕은 바닷가 쪽으로 가서 엎드린 자세로 누웠다. 작은형이 양손으로 내 배 밑을 받쳤다.

  “양팔을 옆으로 쭉 뻗었다가 손바닥을 오므리면서 다시 가슴 쪽으로 당기라. 두 다리는 발바닥으로 날아 차기하는 식으로 뒤쪽으로 쭉 뻗으면서 차 봐라.” 

  “자꾸 까라진다. 행님아, 내 배에서 손 떼면 안 된대.” 

  “알았다. 걱정 말고 자신 있게 함 해봐라.” 

  몇 번을 버둥거려도 내 몸은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짜디짠 바닷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에이씨. 행님아 내 안 할란다. 자꾸 까라지고 물만 묵고 머 하는 짓인지 모르겄다.”

  “그러게. 니는 와 안되노. 요상타. 그래도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물에 뜰기다.”

  둘이서 이러고 있는데 등대까지 갔다가 돌아온 큰형 손에는 성게가 몇 개 들려져 있다. 큰형은 잡아 온 성게를 하나씩 돌로 내리쳐 껍데기에 구멍을 내어 우리에게 주었고 성게를 받아 든 우리는 가시에 찔리지 않게 조심스레 그 구멍을 쪽쪽 빨아 성게알을 파 먹는다. 큰형은 작은형 얼굴을 바라보며 나한테 아무리 수영 가르쳐도 못할 거라며 낄낄거린다.

  “이제 점심 묵자. 익제랑 둘째는 들고 온 다라이에 담치랑 고동 좀 따가 온나. 나뭇가지는 다 주워 놨나?”

  “익제 수영 가르친다고 못 주웠네. 퍼뜩 주워 놓고 담치 따 가 올게.”

  우리는 버려진 신문지와 나뭇가지를 주워서 불 피울 준비하고 있는 큰형에게 갖다 주고, 빈 고무통을 들고 갯바위 쪽으로 갔다. 갯바위 밑에 붙어 있는 담치를 따고 고동과 소라를 주워 고무통에 가득 담았다.

  냄비 한가득 담긴 담치와 고동이 다 익어갈 무렵 형들이 이제 먹자며 제일 큰 담치 하나를 꺼내 내 입에 넣어주었다. 

  “이야, 대끼리다. 행님아 무봐라. 이거는 맨날 묵어도 엄청 맛나다.” 

  허겁지겁 먹는 나를 보고 형들은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으라며 다른 담치도 꺼내주었다. 얼마나 먹었을까. 냄비 속 건더기는 하나도 없고 국물만 남았을 때 큰형이 엄마 몰래 가져왔다며 신문지에 돌돌 말아온 국수를 꺼냈다. 울행님 최고를 외치며 폴짝폴짝 뛰고 있는 내 옆으로 형들 눈치를 보며 수용이가 다가왔다.

  “익제야. 내도 국수 좀 주면 안 되나. 배고파 죽겄다.”

  “익제 친군가 보네. 잘됐다. 그러잖아도 국수가 좀 많다 싶었는데 같이 묵자.”

  큰형이 젓가락으로 쓸 나뭇가지를 칼로 깎아서 내민다. 수용이가 잘 먹겠다며 입속으로 뜨거운 국수를 밀어 넣었다. 며칠은 굶은 듯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우리는 그냥 어이없이 구경만 하고 있다. 

  점심 먹고 난 후, 형들이 설거지하러 우물가로 가고 없을 때 수용이가 자꾸 수영하러 가자고 졸랐다. 창피해서 수영 못한다는 말은 못 하고 미적거리고만 있으니, 니 혹시 수영 못하냐며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수영도 못 하냐며 놀려댔다.

  “내도 수영할 수 있다. 같이 물에 가자. 보여 주께.” 

  큰소리치며 같이 바닷물에 뛰어들었으나 수용이는 벌써 내 키보다 더 깊은 곳을 향해 헤엄쳐 가면서 빨리 오라며 손짓을 한다. 나도 ‘그냥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물속에 몸을 다 담그고 아까 형이 가르쳐준 대로 해본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걸 느끼며 수용이를 향해 헤엄쳐가다가, 숨도 차고 힘이 들어서 잠깐 일어섰는데 발이 바닥에 닿지를 않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이 굳으며 머리끝까지 바다 물속에 잠겼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리며 무서움과 두려움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때였다. 내 앞으로 희미하게 누군가가 헤엄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 그 사람의 팬티를 잡았다. 팬티 말고는 잡을 곳이 없다. 그 사람이 놀라서 바둥대며 나를 발로 차 떼어내려 했지만, 나는 살기 위해 끝까지 팬티를 잡고 버텼다. 어느새 발이 바닷속 바닥에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왔을 때 나는 팬티를 놓고 구역질하며 일어섰다.

  “이 미친놈. 니 수영도 못하면서 겁도 없이 따라오면 우짜노. 내도 니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 빤쮸도 찢어지고 니 이거 우짤끼고.” 

  얼굴이 하얗게 찔린 나를 노려보며 씩씩거리는 수용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슈퍼에서 대충 먹거리를 사서 수용이 있는 정자로 가니 먹음직스러운 회가 차려져 있다.

  “와 이리 늦었노. 소주는 넉넉히 사 왔제? 배고프다. 얼른 묵자.”

  우리는 연신 소주잔을 기울이며 가족얘기, 친구얘기, 어릴 적 낫개에서 놀던 추억을 얘기했다. 추억과 함께 스며든 알코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 떠들며 웃었다.

   “익제야, 니 기억하나? 내가 니 생명의 은인이다. 내 아니었으면 니는 벌써 저 바닷물에 빠져 죽었을 거다. 빤쮸 다 찢어졌다고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는데. 니 인자 수영은 좀 할 줄 아나?” 

   “그래. 고맙다. 그때 니 빤쮸 잡지 못했으면 이렇게 니캉 술도 못 마셨을 거다. 그날 이후로 물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서 수영은 아예 안 한다. 앞으로도 할 생각은 없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수용아. 니는 여기와 있노. 여행 왔나? 몰골 보니까 면도도 며칠 안 한 것 같고. 뭔 일하노? 좋은데 다니나 보네. 이렇게 평일 날 휴가도 다 내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수용이는 한숨을 내쉬며 “대학 졸업하고 지역은행에 취직해서 잘 다니다가 우연히 주식을 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수익이 많이 나서 차도 외제차로 바꾸고 집도 좀 큰 평수로 이사도 했다. 그때는 맨날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좀 무리하게 대출을 냈지. 그러다 갑자기 주식이 폭락하면서 대출금 상환을 못 하게 되고, 손님 예치금까지 손을 대서 이렇게 도망치다시피 나왔다. 막상 나오니 갈 데가 없더라. 그래서 늘 생각만 하고 있던 낫개에 와서 민박집 하나 잡아 놓고 며칠을 낚시만 하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다.”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수용이가 내게 물었다.

  “친구들한테 얼핏 들으니 니는 대기업 입사해서 잘 나간다더만 재미가 좋나 보다. 옷차림을 보니 회사는 아직 잘 다니는 모양이고. 별일 없제?” 

  “내도 담배 하나 주라. 담배 끊은 지 십 년이 지났는데 오늘은 자꾸 담배가 땡기네.”

  끊은 담배를 왜 다시 피우냐며 피지 말라는 수용이의 말을 뒤로하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길게 후- 하고 뱉어내니, 내 안에 꿈틀거리는 갑갑함과 속상함이 담배 연기와 함께 입 밖으로 길게 나오는 것 같다.

  “사실은 오늘 회사에 명예퇴직 신청서 내고 나오는 길이다. 집에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고 무작정 차를 몰다 보니 여기 도착하더라. 여기서 너를 만날 줄이야. 니 덕분에 잠시나마 모든 것 다 잊고 참 많이 웃었다. 니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고? 집에는 연락했나?” 

  “마누라는 애들 데리고 친정 간 지 좀 됐고, 연락할 데도 없다. 여기 좀 더 있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야. 정 안되면 저 바닷물에라도 뛰어들어야지. 다행히 실족사로 판정 나면 사망보험금이라도 나올 거고, 그걸로 마누라랑 아이들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연신 담배만 뿜고 있던 수용이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수용이한테 비하면 좀 나은 상황인 것 같다.

  “미친놈. 그게 할 소리가. 애들이랑 애들 엄마 나중에 어떻게 보려고. 니가 이래 가면 그 원망이 지금보다 몇십 배는 더 할 건데 죽어서도 그 원망 이겨낼 자신 있나? 니는 원래 맘이 약해서 니가 손해 보면 손해 봤지 남한테 피해 가는 짓은 절대 안 하잖아. 잘 생각해 보면 니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와이프한테라도 연락해라. 지금쯤 엄청 걱정하고 있을 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수용이라도 무슨 방법이 있으랴. 내 코가 석잔데 오지랖 넓게 충고를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내 오줌이나 좀 누고 오게. 니는 마시고 있어라.”

  “요 옆 수풀에 그냥 싸라. 오래간만에 니 오줌 누는 소리 좀 들어보자. 아무도 없는데 뭐 어떻노.”

  “그래도 니 보다는 내 오줌빨이 더 쎌끼다. 바람도 쐴 겸 방파제에 갔다 올게.”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방파제로 향하는 수용이를 바라보며 나는 소주만 연신 들이켰다. 밀려오는 적막감에 속은 타들어 가고 꺼놨던 휴대폰을 켰다. 아내한테 전화와 문자가 엄청 와있다. 전화할까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냈다.

  「바람 좀 쐬고 싶어 고향에 왔어. 꼬치친구 만나서 술 한잔하고 있어서 오늘은 못 들어가겠네. 걱정하지 말고 있어. 내일 집에 가서 얘기하자.」 

  문자를 보내고 나니 내일 집에 가서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방파제 쪽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불길한 소리에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뛰어갔다. 미친놈이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다. 

  “씨바, 사람이 바다에 빠졌어요. 빨리 좀 오이소. 빨리요.”

  목이 터져라 수용이를 부르며 근처에 있는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테트라포드 밑으로 살금살금 내려갔다.

  “야, 괜찮나. 이거 단디 잡아라. 씨발놈아, 빨리 잡아라.” 

  한참 후에야 수용이는 내가 내민 막대기를 잡았다. 

  “조금만 있으면 119 올끼다. 절대 놓지 말고 잡고 있어라. 말 좀 해봐라 문디 짜식아.”

  “알았다. 내는 괜찮으니까 그만 좀 해라.” 

  얼마 후 119 구급대가 왔다. 구급대원들과 힘겹게 수용이를 끌어올려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 응급실에 수용이를 눕히고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한 여자가 울면서 뛰어 들어온다.

  “여보. 괜찮아요? 갑자기 연락도 안 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이 짓 하려고 연락 끊은 거예요?” 

  여자는 울고 불며 악을 써대면서 수용이에게 원망 섞인 말을 뱉어냈다. 경찰서에서 수용이 집에 연락해서 온 것 같았다.

  “의사가 수용이 괜찮다 했어요. 타박상만 조금 입었고 몸에는 아무 이상 없대요. 걱정 마세요. 참 저는 수용이 어릴 적 친구 김익제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랑 오랜만에 만나서 한잔 마시다 보니 발을 헛디뎠나 봐요. 제가 잘 봤어야 했는데.”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내게 수용이 아내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먹이며 말한다.

  “괜찮아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혹 딴 맘이라도 먹었을까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수용이 아내한테 지금은 내가 있을 테니 안심하고 집에 가서 아이들 챙기고 내일 오라고 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기로 약속하고 간신히 돌려보냈다. 수용이는 누워서 눈만 껌뻑거리며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새끼야 니 진짜 죽으려고 뛰어든 거가?”

  “맞다. 이래 살 바에야 죽는 게 낫다 싶어 뛰어들었는데 막상 물속에 빠지니 겁이 나더라.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죽자 싶어 물살에 몸을 맡기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나를 빤히 보고 있더라. 어두운 물속인데도 어찌나 또렷하게 보이는지 너무 신기하더라. 한참 동안 물고기랑 눈 맞추다 보니 물고기 눈이 어릴 적 내 눈과 너무 닮았더라구. 여태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어릴 적 낫개에서 놀던 나, 시장통 난전에서 생선을 팔던 엄마, 아내와 아이들, 수많은 사람들 생각에 나도 모르게 온 힘을 다해 헤엄쳐 올라왔다. 니가 내민 막대기를 보고 필사적으로 잡았어.”

  “미친놈. 니 인생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 버리면 여태 고생한 게 아깝지도 않나. 최소한 노력이라도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는 보여야 하잖아. 다시는 몹쓸 생각하지 마라. 니 목숨보다 중한게 뭐가 있노. 정 안되면 있는 거 다 정리하고 니가 제일 잘하는 낚시 해서 너네 어머니처럼 난전에서 회 뜨면서 살면 되잖아.”

  “이번 기회에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 와이프 하고도 진진하게 다시 이야기해보고 어떡하든 방법을 찾아봐야지.”

  수용이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어 잘 생각했다며 아이들이나 아내한테 부끄럽지 않은 가장으로 남아야 된다며 쓴소리를 하고 또 하고 있으니 이제 알았으니 그만 좀 하라며 짜증을 낸다.

  “참나, 그래도 니가 내를 물속에서 다 구하고 세상 희한하게 돌아간다. 여하튼 이번에는 니가 내 목숨 구했으니까 나도 이제 옛날 일 또이또이 한 걸로 잊어주께.”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새벽녘에야 잠든 수용이를 보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 뻘겋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깊게 마신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 수용이 아내가 다가온다. 

  “많이 피곤하시죠. 좀 더 일찍 와야 했는데. 죄송해요. 애 아빠는 어때요?”       

  “아, 네. 왜 이리 일찍 오셨어요. 지금 자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수용이가 걱정이 많더라고요. 제수씨가 힘들어도 수용이 조금만 이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워낙 여린 놈이라 저도 걱정이 많이 되네요.” 

  술 마실 때 수용이와 주고받던 대화 내용을 들려주니 수용이 아내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걸 왜 혼자서만 걱정하는지. 제가 친정 간 것도 친정에 얘기해서 어떡해서든지 해결하려고 간 건데 내 맘도 모르고 속상해 죽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이제 좀 들어가서 쉬세요. 애 아빠 일어나면 연락드리라고 할게요.”

  나는 어제저녁 술 마시던 정자로 가서 먹다 남은 술을 한 잔 들이켰다. 수용이 일로 많이 놀라고 빈속이라 그런지 몸속으로 들어오는 깡소주의 쓴맛이 너무 찌릿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지럽혀진 정자를 치우고 근처 목욕탕으로 향했다.

  뜨거운 탕 안 들어서니 온몸이 노곤한 게 모든 피로가 풀어지는 듯하다. 그러다 수용이의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하던 차에 물속에서 봤다는 물고기가 생각이 났다. 그 물고기는 무엇이었을까. 수용이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물고기로 환생해서 나타나신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그러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도 아주 못난 놈 같이 아무 노력도 안 하고, 무작정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을 어디에 선가 보고 계신다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실까? 항상 내 또래 친구들보다 착하고 똘똘하다고 앞으로 크게 될 놈이라며 자랑을 하시곤 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가만히 내 현실을 직시했다. 어쩌면 수용이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바닷물 속에 몸을 던지는 상황이 오면 그 물고기가 나의 눈을 쳐다보면서 나를 위로해 줄까. 그래 어쩌면 나도 지금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현실이라고 느껴졌다.

  그래, 뭐든 해보자. 무작정 포기하지 말고 이 난관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뭐가 잘못됐는지, 왜 나만 명예퇴직을 당하게 됐는지, 다시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뜨거운 탕 안에서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릴 적 낫개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수용이의 팬티를 잡았던 기억을 회상해 봤다.

  ‘맞아. 그때도 살았잖아. 우연히 그 작은 천 쪼가리 하나 잡았을 뿐인데 그것이 어쩌면 기회가 되어 지금의 내 인생은 남 부럽지 않은 회사에 취직도 하고 가정도 꾸미고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아왔잖아. 뭐든 해봐야지. 이렇게 끝낼 수는 없는 거잖아.’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길로 목욕탕을 나와 옷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회사로 갔다.

  최부장이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김 과장. 며칠 쉬라고 했잖아. 왜 나왔어? 쉬면서 머리도 정리하고 휴식도 취하다가 안정되면 그때 출근해서 인수인계하면 되는데.” 

  다른 직원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내 눈치만 살피고 있다. 텅 빈 내 책상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듯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최부장. 어제 낸 명예퇴직 신청서 좀 줘봐. 내가 잘못 쓴 게 있는 것 같은데 잠시만 좀 보자.”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던 최부장은 자기 책상 서랍 안에 있는 서류를 꺼냈다. 

  “조금 있다 인사팀에 올려줘야 되는데, 잘못 적을 게 있나.”

  나는 서류를 받자마자 바로 찢어 버리고 최부장 책상 옆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쪽팔리기 싫으면 조용한 데서 얘기 좀 할까 아님 여기 직원들 앞에서 얘기해도 나는 상관없고.” 

  최 부장은 이게 미쳤나 하는 눈초리로 나를 째려봤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나 볼까. 회의실로 가자.“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 동료 직원에게 부탁한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마주 보고 앉았다.

  “그래할 말이 뭔데.”

  “여태 내가 잘못 살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서 다시 왔다. 나는 이제 마지막을 본 사람이고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어. 처음 명퇴 제의를 받았을 때 우리 회사 비리를 터트릴까 생각도 했었지만, 이슈화되면 동료 직원들이 힘들어질 것 같아 그냥 참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사실을 숨기는 게 동료들이 더 힘들어질 것 같더라고. 내가 알고 있는, 특히 최부장 자네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저지르고 있는 부정에 대해 내가 알고 있다는 거 너도 잘 알지.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내보내려고 안간힘을 쓴 거고. 그러니 약속하나 해라. 현재까지의 일은 잊어줄 테니 내 명퇴 신청 없던 걸로 하고, 앞으로 너도 부정행위는 더 이상 안겠다고. 그러면 나도 이번은 넘어가 줄게.”

  “야. 김 과장, 너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참, 어이가 없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착각하지 마. 니가 알고 있다는 비리증거 있으면 내놔 봐. 없으면 내가 너 감방 보낸다.”

  “내가 너를 알고 지낸 지 26년이 넘었다. 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인데 내가 그 정도도 없이 이러겠냐. 아직 나를 모르나 본데 니가 하던 업무 원래는 내가 10년 넘게 하던 거였어. 너보다 내가 더 잘 알걸. 지금 거래처 직원들도 아직 나랑 연락하고 있는 사이고.” 

  나는 휴대폰을 꺼내 한때 거래처였던 일등상사에 전화를 걸었다.

  “김사장님. 저 김익제입니다. 아까 저랑 이야기한 거 나중에 증언해주실 수 있죠. 네, 자료는 저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전화드릴게요.” 

  곧바로 감사실장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김익제 과장입니다. 제가 그래도 고등학교 후밴데 너무 소홀하신 거 아녜요. 하하하 네, 시간 되시면 차나 한잔하시죠. 네, 조만간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미친놈. 할 수 있으면 해 봐. 내가 이런다고 눈 하나 깜짝할 줄 알고.”

  “알았다. 어차피 한 번 그만둔 인생인데 뭐가 겁나겠어. 나 간다.”

  다 마신 종이컵을 들고 일어서는데 최부장이 내 팔을 잡았다.

  “이렇게 나가면 우리 진짜 원수 되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너 속상한 것은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러지 말고 저녁에 내가 멋지게 한잔 쏠 테니 술이나 한잔하자. 한잔하면서 풀 거 있으면 다 풀고 다시 얘기하자.” 

  “아니. 앞으로 너랑 술 마실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회사생활 똑바로 하자. 나는 내일까지 휴가라 이제 갈 테니 잘 생각해 보고 문자 주라. 참, 잊은 게 있는데 툭하면 부하직원들한테 나 때는 이랬니 저랬니 자랑은 제발 좀 하지 마라. 너도 알다시피 동기 중에서 일머리가 제일 떨어지는 사람은 너였잖아.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 사실을 모르는 직원들은 없을 건데. 다만 탁월하게 줄 잡는 법과 아부하는 방법을 일찍 터득해서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뿐이잖아.”

  영화에서의 한 장면처럼 양복 윗도리를 멋지게 어깨에 걸치고 씩 웃으며 회의실을 나왔다.

  뒤에서는 미친놈이라는 욕 섞인 고함소리만 잠시 들릴 뿐이다.

  밖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회의실만 주시하던 직원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등 뒤로 누군가의 박수 소리가 들린다.

  사무실 밖의 시원한 공기가 나의 콧속으로 스며드는 게 확실히 낫개에서의 향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앞날은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런 자신감으로 남은 세상을 살다 보면 삶에 대한 두려움, 능력에 대한 무력감 같은 건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차에 오르려는데 나도 모르게 다시금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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