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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종 Oct 18. 2023

악인

  금요일 오전, 급한 일을 처리하고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을 때이다.

“띠리링, 띠리링. 네 이민규입니다.” “이 차장, 오늘 금요일인데 한판 째야지?” 전신실의 김팀장이다. “멤버는 앞전과 똑같고, 장소는 양산에 하림 메기탕으로 잡았다. 시간 괜찮겠지?” “네, 제가 빠지면 게임이 안될 건데, 당연히 가야죠.” 전화를 끊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 오늘 회사직원들과 한판 하기로 했으니 낼 아침에 집에 간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한숨을 쉬며 뭐 맨날 하는 일인데, 내가 뭐라 하겠어요. 돈 꼴찌 말고 재미있게 보내다 와요. 언제나 그렇듯이 아내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잔소리는 전혀 하지 않는다. 좋은 말로 하면 아주 쿨한 거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관심이 없는 거다.

  김팀장, 박기사님, 김대리와 만나 간단히 요기 겸 술 한잔 걸치고 판을 시작한다. 오늘은 훌라로 시작하기로 하고 카드를 돌린다. 다들 옆에는 술잔과 간단한 안주를 끼고 카드에 열중이다. 오늘은 이상하게 패가 좋지 않아 바람 좀 쐬고 온다며 3명이서 하고 있으라 하고 밖으로 나간다.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시골의 찬 밤공기를 느끼며 희선이에게 전화를 건다. 희선이는 일주일에 한두 번 조건 없이 만나는 사이이다. 몇 번 전화를 걸었지만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컬러링만 흘러나오고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멘트만 반복된다. 갑자기 얼마 전 희선이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오빠, 나 만나는 거 부담스럽지 않아? 우리 사이 너무 오래가면 안 될 것 같은데.” “괜찮아, 와이프는 관심도 없는데 뭐. 너 좋은 사람 생기면 내가 알아서 놔줄 테니 그때까지는 이렇게 지내자.” 나의 말에 희선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혹 다른 사람이라도 생긴 건가? 다시 훌라판에 끼어들어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형님들 저는 오늘 여기까지 하고 그냥 가보겠습니다. 영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인사를 하고 차를 희선이 집으로 몰았다. 운전 중 여러 번 전화를 해도 여전히 받지를 않는다. 집으로 간다고 문자를 보내고 액셀을 힘껏 밟는다.

  금양오피스텔 806호. 아무리 벨을 눌러도 희선이는 나오지를 않는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고 올라 문을 두드리다 발로 차기 시작했다. 띵동 하고 희선이에게 문자가 온다. “오빠, 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저 새로운 사람 만나고 있어요.” 문자 확인을 하니 왠지 모를 배신감이 차올라 더욱더 고함을 치며 문을 더 세게 발로 차고 있으니 이웃사람들이 짜증 섞인 모습으로 이 밤중에 뭐 하는 짓이냐고, 자꾸 그러면 경찰을 부르겠다더니 얼마 후 경찰이 와서야 희선이의 현관문이 열린다. 분명 집에는 희선이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더욱더 흥분이 되어 쌍욕을 하며 희선이에게 달려들다 경찰에게 제압당하고 인근 파출소로 끌려간다.

  간단한 조서를 꾸미고 희선이는 처벌은 원하지 않지만 대신 조건으로 앞으로 자기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각서를 요구하였지만 나는 응할 수 없다고 버틴다. 한참이 지나서 와이프가 파출소로 들어와서 말없이 나와 희선이를 번갈아 보며 눈물만 흘리다 나를 보며 “이제 당신 하고는 인연이 다 되었네요. 이렇게 끝을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이들은 제가 데리고 갈게요.” 파출소를 나가는 아내에게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도 못하고 말없이 희선이가 내민 각서에 사인을 하고 나도 밖으로 나왔다.

  새벽 찬 공기는 나의 마음속을 더 쓰리게 하고 머릿속은 조금 전까지의 행동에 대한 후회만 가득 차 오른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제는 갈 곳이 없다.

  해가 조금씩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아스팔트 위를 하염없이 걷는다.

  나는 악인이다. 나는 악인이다. 를 입안에서 되뇌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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