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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오 Oct 08. 2024

피자는 역시, 맥도날드지

토론토의 여름은 싱그러움 그 자체다. 공기도 맑고 햇빛도 강렬하다. 도시 곳곳은 녹지와 공원이 많고 다람쥐가 뛰노는 모습이 그저 신기했다. 다람쥐든 새든, 여기 동물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제일 신기했던 것은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바깥은 9시가 지나야 완전히 어두워졌다. 해는 이리 빨리 뜨는지 새벽 5시면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 



이제 방학이다. 슬슬 지루하고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동네 주변만 산책 같이 돌아다녀봤기 때문에 아직 이 도시에 대하여 아는 게 없었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이 도시, 또 나라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캐나다로 이민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 캐나다 관련 책을 사달라고 했다. 얼마 후 책 두 권을 주셨는데 한 권은 이미 예전에 구입하셨던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새 책이었다. 정말 몇 개월간 이 두 책만 스무 번은 넘게 읽었을 거다. 나는 원래 지리에 관심이 매우 많아서 지도 보는 게 내 취미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2학년 때 사촌형 집에 놀러 갔는데 형이 보던 사회과부도를 달라고 졸랐다. 이 사회과부도는 내가 이민 갈 때 들고 간 배낭에도 합류했다. 



책을 통해 사전에 많은 정보를 입수했다. 우선 캐나다에도 사계절이 있다. 메이플시럽과 아이스하키가 유명하다.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모신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 캐나다 에드먼턴에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캐나다 쪽에서 보는 게 진리다. 겨울은 길고, 눈 많이 오고 춥다. 호수가 정말 많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안 된다. 매너를 잘 지켜야 한다. 식당에서는 팁을 줘야 한다. 이 외 수백 가지 다른 정보가 있었다. 그래도 뭐든 직접 경험해야 진짜로 아는 거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가자 하신다. 오늘은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볼 거란다. 오호, 여기 버스와 지하철은 어떨까 궁금했다. 집 밖에 나섰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곳 쪽으로 향했다.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버스정류장이 근처인가 보다. 커다란 맥도날드도 보인다. 한국에서도 못 가본 맥도날드, 한 번 가보고 싶다. 그러나 내가 먼저 가보자고 하지는 않았다. 조르거나 하는 버릇이 사라졌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정류장으로 향하던 가족의 발걸음은 공원에서 멈췄고 아버지는 어머니랑 얘기 좀 하신다고 동생과 잠깐 놀고 있으란다. 하아... 또 시작인가? 설마 길바닥 사람 있는데서 전투를 벌이진 않겠지? 여기는 툭하면 경찰 부른다던데. 하여튼 나랑 동생은 저만치 떨어져 공원 잔디밭에 털썩 앉아서 풀을 뜯기 시작했다. 다람쥐들도 보인다. 다람쥐 한 녀석이 나를 뚫어져라 본다. 손을 내미니까 나에게로 온다. 자기 코를 내 손가락 끝에 대고 킁킁 거린다. 먹이가 있는 줄 착각한 모양이다. 다람쥐를 티브이랑 책에서만 접해왔던 나에게는 신기하고 놀라자 빠질 경험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두 분이 극적인 화해를 한 거 같다. 할머니가 계셔서 그간 화끈한(?) 전투를 못한 게 쌓인 건지, 그나마 다행히 신사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한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버스를 타기 전 맥도날드로 향했다. 오, 드디어 맛을 보는 건가? 그런데, 햄버거가 아닌 피자를 주문하신다. 피자? 굳이 햄버거 가게에 와서 피자를? 여긴 원래 피자도 잘하나? 솔직히 난 이때만 해도 피자, 햄버거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최고의 피자는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미니 냉동 피자였고 햄버거는 문방구 앞에서 파는, 양배추가 잔뜩 들어간 불량 햄버거가 제일 맛있었다. 



10분 좀 넘게 기다리니 피자가 나왔다. 맛을 본다. 어?! 김연경이 내 뒤통수를 한 대 스매싱한 맛이었다. (물론 김연경은 이때 여섯 살짜리 꼬마였지만) 그냥 엄청 맛있었다. 허기와 평화 협상 타결로 마음도 편해졌겠다, 나의 첫 맥도널드는 '빅맥'이 아닌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피자였다. (피자가 워낙 인기도 없었고 다른 메뉴에 비해 엄청 기다려야 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단다)



버스에 올랐다. 흠, 소음등은 있지만 안정감이 상당했다. 손잡이를 안 잡고도 중심을 잡을 수 있고 넘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한국 시내버스는 거의 롤러코스터 수준인데. 무한도전에도 나오지 않았던가. 손잡이 안 잡고 안 넘어지는 게 미션일 정도였으니.



지하철은 한국이 더 깔끔한 거 같다. 붐비는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빈 좌석이 많았다. 그러고 한참을 가서 내렸다. 목적지는 CN타워였다. 이때만 해도 세계에서 제일 높은 타워(빌딩 포함)였는데 지금은 명함도 못 내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탁 트인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같은 호수와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멋있었다. 그러나 아주 큰 감흥은 없었다. 왜? 1층 기념품 가게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게 있었는데 그것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이스하키 선수의 포스터였다. 누군지 아냐고? 당연히 모르지... 그냥 토론토 선수이고 포지션은 골리(골키퍼)였다. 


정확히 이거였다!



일층에 다시 왔다. 하아, 깊은숨을 내쉬고 용기를 내어본다.  



"아빠, 나 실은 사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어느 아이스하키 선수... "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말 끝이 흐려진다.)



"그게 뭔데?"



기념품 가게 앞 액자에 담긴 포스터를 가리키며, "저거..."



가만 보시더니 생각에 잠기신 듯하다. 아버지 표정을 본다. 난 이미 포기했다. 



"그래. 사자. 가서 들고 와."



이게 웬걸? 이렇게 쉽게? 아버지는 원래 책, 먹을 거 아니면 거의 아무것도 안 사준다고 보면 되는데... 나는 신나서 내 몸통보다 큰 액자 포스터를 들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싸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표정, 행동에 이상 기류를 못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어쨌든 나는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나의 첫 맥도널드에서의 경험은 피자였다. 그 후로도 맥도날드에 가면 햄버거보다 1인용 피자를 더 자주 먹었다. 캐나다에 살면서 피자는 정말 질리도록 먹은 거 같다. 피자가 거의 무슨, 한국으로 치면 라면 같이 먹었던 거 같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동네에 크고 작은 가게들이 항상 1+1이나 때론 1+2 행사를 자주 하기 때문에 먹고 남은 건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놓기도 좋았다. 토핑도 먹고 싶은 것만 얹을 수 있으니 좋았고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을 때는 그냥 클래식하게 치즈 피자를 먹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는 피자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먹던 그 맛의 피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심지어 직접 만들어도 먹었지만, 그 맛이 안 난다.




정말 가지각색 종류의 피자를 먹어보고 했지만, 아직도 '맥피자'가 나의 인생 피자이다. 혹시 다시 부활할까?라는 희망도 가져보지만, 지금 봐서는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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