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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오 Oct 11. 2024

니가 가라, 나이아가라

캐나다에 온 지 한 달쯤 됐나? 드디어 짐이 도착했다. 거의 텅 비어있다 시피한 집이 물건으로 조금씩 채워졌다. 내 짐은 책상 이외엔 별게 없어서 방이 밋밋해 보였다. 그래도 커다란 창문에 심플한 블라인드, 세련된 카펫으로 은은한 멋이 있었다. 비자발적 미니멀리스트다.



짐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눈에 띄는 물건이 하나가 들어온다.


(설마 저것도 챙기셨나?)


대한민국 집집마다 적어도 한 개씩은 있던 '훼미리 주스병'이었다. 와, 이것까지 챙겼나? 추억이 깃든 아이템이라서 버리지 못했던 것인가? 주스를 마셨던 기억은 없고 보리차, 옥수수차, 결명자차를 마신 기억은 있다.


요즘엔 이 병만 팔기도 하던데...


냉장고와 가스레인지를 제외하면 모두 그대로 챙겨 온 거 같다. 이민 가면 좀 더 큰 티브이를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그대로 짓밟아준 21인치 삼성 티브이도 설치했다. 케이블 신청을 완료했는지 틀자마자 채널을 돌려본다. 채널이 엄청 많다. 끝이 없는 거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토론토는 미국 버펄로랑 가까워서 버펄로 채널들도 볼 수 있었다.



한참을 돌리니 만화가 나온다. 흠, 계속 돌린다. 계속해서 만화, 어린이 프로그램이 나온다. 어린이 전용 채널들만 따로 있나 보다. '이거 완전 신세계네...' 표현하기 어려운 희열이 내 발끝에서부터 전달되기 시작한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이 당시 한국에는 공중파 채널 몇 개가 다 아니었던가? 그것도 EBS을 제외하면 오후 늦게서야 방송을 시작했으니... 입이 떡 벌어질 만도 했지..



그런데 문제는, 내가 영어를 하나도 모른다는 거지. 그럼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보냐? 어떻게 보긴, 그냥 본다. 나는 아직 어린이다. 배트맨이 악당을 흠씬 두들겨 팬다거나, 엑스맨 울버린과 사이클롭스의 신경전, 스크루지 손자들이 왜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심통을 부리는지는 영어를 못하던, 못 알아듣는 게 별 의미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다 이해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에 있었으면 티브이를 보면서 엄청 눈치를 봤겠지만, 여기서는 아무리 봐도 어머니나 아버지가 뭐라고 안 하신다. 아마 영어 학습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여겨서 그랬던 거 같다. 나는 못 알아들어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상황별로 이해하려고 했다. 짧게 자주 나오는 말들을 몇 가지 따라 해보기도 한다. 나름 재밌다. 나도 언젠가 저 캐릭터들처럼 자유롭게 말할 날이 오겠지?




아버지가 한국에 정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출국했다. 불안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끔 친하다.


동생과 어머니는 베프다.


동생과 아버지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별로 친하지 않다.


어머니와 나는 안 친하다.


아버지와 나는 나름 친하다.


동생은 나와 친하다.


할머니는 동생과 안 친하다.


할머니는 나와 매우 친하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친하다.




관계 밸런스에 상당한 타격이다. 할머니가 친한 사람은 나 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아직 꼬맹이다. 곤란하거나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면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앞으로 대략 한 달간 별일 없겠지?




어머니가 며칠 후에 어디 간다고 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란다. 오... 책에서만 보던 그 어마어마한 광경. 그걸 보러 간다? 그런데, 얼마나 걸리지? 아! 책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란다. 깔끔하다. 이 정도면 그냥 서울에서 아산까지의 거리 아닌가. 그래도 난 걱정이 앞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멀미를 심하게 하는 편이어서 어디든 한 시간 이상 거리면 멀미약을 꼭 챙겼다. 그런데, 여기도 멀미약을 파는가? 멀미 걱정만 하던 며칠 뒤, 출발의 날이다.



작은 관광버스를 타고 갔다. 한국 여행사를 통했는지 다른 한국분들도 계셨다.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서로서로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버스 안에 시계를 본다. 출발한 지 40분은 지난 거 같다. 다행이다. 아직 멀미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몰라 들고 온 비닐봉지도 쓸 일이 없을 거 같다. 할머니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미하지 마라고 내 손 엄지와 검지 사이를 계속 주무르신다. 이게 멀미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심리적 위안이 된다.



드디어 도착인가? 저 멀리 폭포가 보인다. 나이아가라가 폭포 이름인 동시에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관광도시이자 국경도시다. 차에서 내려 폭포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워질수록 물소리가 엄청났다. 마치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함성을 지르는 듯했다. 날씨도 좋고 해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 한 번 찍을 때 엄청 신중하게 찍는다. 셀카, 디카, 폰카 이 딴 게 어디 있나, 전부 필름 카메라다. 한 번 잘못 찍으면 아까운 필름 한방이 날아간다. 필름 현상하고 사진들을 처음 꺼내보기 직전이 정말 두근두근 했던 시절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사진 한 장 한 장이 더 소중하고 사연이 많았다.



얼마 후 가이드님이 유람선 타는 곳으로 안내했다. 우비를 하나씩 나누어줬다. 선착장까지 물이 튀어서 옷이 제법 축축해졌다. 하수구 냄새도 난다. 엄청난 양의 민물이 부딪히고 하니 냄새가 날 수밖에..



배를 타고 폭포 매우 가까운 쪽 까지 갔다. 옆사람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지 소통이 될 정도로 소음이 엄청났다. 중간중간 할머니 표정을 본다. 계속 시끄럽다고 하셨지만 웃는 얼굴을 하고 계셨다. 생에 처음 보는 광경이 나쁘진 않으셨나 보다.




폭포 관광을 마치고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불고기랑 이것저것 있었는데, 그냥 한국에서 먹던 맛이었다. 신기했다. 나는 내심 현지 식당을 가보고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어른들이 많은 투어라서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저녁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알차고 즐거운 하루.. 어? 잠깐만... 집에 오긴 왔는데 어머니랑 할머니가 안 보인다. 안방은 닫혀 있고... 둘이 무슨 얘기 중이다. 며느리한테 혼나는 중 이시구나... 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신다. 할머니 표정을 잘 모르겠다. 완전 포커페이스다.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보였다.



불과 몇 년 전 서울대병원 교수님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그 교수님들을 비웃듯 위암 완치 판정을 받으신 분이니... 할머니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잠자리에 누웠다. 잠에 들기 전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참만 다행이여. 그래도 아들 없을 나한테 씨부렁거리. 아직 아베가 신경이 쓰이긴 하나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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