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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오 Oct 18. 2024

말타기 노, 중국집 굿

여름 방학이 길긴 길다. 한 참을 쉰 거 같은데 절반 정도 지났으려나? 모든 게 더디게 흘러가는 거 같다. 무언가 하는 거 없이 시간이 가는 거 같지만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이다. 너무 심심해서 안 되겠다. 티브이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동생분께서 시청 중이다. 할 수 없다. 한국에서 가져온 가방 꾸러미에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내 손바닥 크기 만한 드래곤볼과 지아이조 피겨 모델들이다. 손오공, 베지터, 피콜로가 드래곤볼 팀, 애꾸눈 특전사, 금발머리 특전사가 지아이조 팀이다. 



원래 전투능력은 드래곤볼 팀이 압도적이지만 몇 가지 핸디캡을 두었다. 에네르기 파 같은 것들은 금지고 날아다니는 것도 안된다. 대신 지아이조 팀은 온갖 무기도 되고 날아다닐 수 있도록 허가한다.



드래곤볼 팀은 내 왼손, 지아이조 팀은 내 오른손. 정체 모를 모든 효과음은 내 입에서 나온다. 치열한 전투가 지속되자 잠시 휴전을 하게 된다. 



전투는 다시 재개되고 승리는 드래곤볼 팀에게 주어진다. 비록 피콜로가 장렬히 전사했지만 금발머리 특전사는 다리를 하나 읽게 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하게 된다. 함께한 정이 있어서 장례는 못 치르고 그냥 다리 하나 없는 채로 고이 모셔둔다.





어머니가 나가자고 한다. 뭐 좀 살게 있다고 한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다. 버스 타고 몇 정거장 가니 쇼핑센터가 하나 있다. 그중 제법 큰 매장에 들어선다. 각종 공구들도 보이고 스포츠 용품들도 즐비했다. 규모가 매우 커서 나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무엇을 사러 왔는지 알게 됐다.



테니스 라켓과 테니스 공이다. 단지에 테니스 장이 있어서 테니스를 치나 했다. 그런데, 누구랑?



"너도 하나 골라봐."



"저요? 저 테니스 칠 줄 모르는데..."



"배우면 되지."



"어... 저는 이거요. 이게 예쁘네요."



그렇게 테니스 라켓 두 채와 공 3개 한 세트 두 개, 내 동생이 고른 알록달록한 배구공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자, 말타기 자세 해봐."



(잘 안된다. 어색하다.)



"아니, 그게 아니고 말을 탄다고 생각해 보면서 하란 말이야."



(죄송한데, 말을 타봤어야 알죠. 그냥 대충 치면 안 되나?)



"이제 조금 자세 나오네. 그럼 팔을 쭉 폈을 때 팔이랑 라켓이 90도가 돼야 해."



(하아, 치기도 전에 재미없다. 그냥 재미 삼아 공만 몇 번 쳐보면 안 되나?)



"자, 한 번 쳐보자."



(그런데, 테니스는 언제 배운 거지? 궁금했지만 직접 물어볼 만큼 궁금하지는 않았다.)





자세 신경 쓰랴, 날아오는 공에 집중하랴, 잔소리 들으랴, 정신이 없다. 나의 첫 테니스 경험은 그냥 핵노잼이다. 처음 잡아보는 라켓인데 꾸중만 잔뜩 들으니 이걸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캐나다에서는 운동을 잘해야 인기가 있다나... 사실이긴 한데, 이렇게 스트레스만 받을 거면 인기고 나발이고 뭔들 중요한가. 



"아휴, 그냥 그만하고 가자."



"먼저 가세요. 저는 얘랑 더 놀게요."



지금 같이 집에 가봐야 잔소리만 더 들을 게 뻔하다. 테니스 친다고 혼자 쓸쓸하게 배구공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느라 수고하는 동생 녀석에게 패스 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나는 못한다고 절대 절대 뭐라 뭐라 꾸짖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에 새긴다.


"야! 거기로 차면 어떡해!"


"야 인마! 거기에 던지지 말라니까!"


H연필로 마음에 새겼나 보다. 잠자리 지우개로 지운 거 마냥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이 녀석은 내가 그러건 말건 신나서 난리다. 그래, 그렇게 재밌으면 된 거지. 



알록달록한 배구공은 지저분해지고 원래 용도인 배구는 한 번도 못해보고 운명을 다 할 거 같다. 던지고 차이고 긁히고 눌리고, 공은 하루 만에 당근에서 거래도 안 될 만큼의 빈티지함이 묻어났다. 




"씻고 준비해라. 저녁 먹으러 나갈 거야."



오, 외식인가? 외식은 거의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살짝 설레었다. 뭐 먹으러 가는 거지? 그런데 할머니랑 동생은 나갈 준비가 안 돼있다. 흠, 뭐지? 나랑 어머니랑 둘이서? 좀 그런데...



"아, 네. 지금 내려갈게요."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한국 아주머니의 전화다. 어찌어찌 알게 됐는데 이 분과 같이 셋이 간단다. 다행이다. 어색할 뻔했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다. 겉을 보아하니 중국 음식점 같은데, 들어가니 매우 넓고 화려한 조명, 사람들로 북적였다. 북미식 중식 뷔페였다. 



나는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뷔페에 가보지 않았다. 실은 여태껏 뷔페가 요리 이름인 줄 알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일어선다. 접시를 집어든다. 혼란스럽다. 뭐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접시를 다시 내려놓고 한 번 둘러본다. 다 처음 보는 것들이지만 대충 뭐가 뭔지 알겠다. 튀긴 음식이 많았고 밥이랑 면도 보였다. 수프 종류도 몇 가지 보이고...



돈까스 식당 가면 보통 수프부터 주니까, 수프를 국그릇 같은데 한 사발 퍼온다. 만둣국이다. 깔끔하니 괜찮다. 또 다른 수프를 가져온다. 매콤 새콤한 향이 난다. 웩, 걸쭉한 전분기에 시큼한 맛이 난다. 패스. 



본 게임에 들어간다. 고기로 보이는 것들을 접시에 아주 조금씩 골고루 다 담는다. 볶음밥도 조금 담는다. 하나하나 맛보면서 어떤 요리인가 기억한다. 특히 맛있으면 다음 라운드에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먹으면서 맛있다고 감탄하면서 다음 전략을 짜느라 정신이 없다. 





고기로 보이는 것들을 골고루 담는다. 모양이나 색을 대충 보고 이게 소인지, 닭인지, 돼지인지 느낌적으로 알았다. 음식에 관련한 것들은 어랴서부터 촉이 좋았나 보다. 접시 한편에 예의상 볶음밥도 조금 담는다. 그래, 밥은 있어야지. 흰쌀밥은 담지 않았다. 밋밋한 것으로 내 배를 채울 여유가 없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도 신속히 씹어재껴 목구멍으로 보낸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를 살핀다. 두 분이 쉴 새 없이 대화를 하는 걸 보면 이 식사시간은 빨리 끝날 거 같아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슬슬 다음 라운드를 준비한다.



아직 배가 전혀 안 부르다. 그래도 너무 급하게 달리면 안 되니... 우선 샐러드 바로 향한다. 살짝 느끼함이 돌려고 할 때 풀떼기로 입가심을 한 번 해줘야 한다. 아는 풀, 모르는 풀 이것저것 담는다. 드레싱도 종류가 많다. 접시가 4등분 되어있다 생각하고 네 가지 드레싱을 나누어 뿌려준다. 



"오, 나이도 어린데 샐러드 같은 것도 잘 먹네. 훌륭한 식습관을 갖고 있구나!"



아주머니가 칭찬하신다. 별 것 아니지만 뿌듯하다. 그렇다. 나는 정말 싫어하는 게 아니면 편식을 하지 않는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먹는 것도 나의 즐거움 중 하나다. 



풀을 섭취함과 동시에 고기만 먹는다는 죄책감을 날려 버렸다. 이제, 튀긴 녀석들 차례다. 



동글동글 한 게 보인다.  아까부터 이 쪽에 사람이 항상 붐비는 걸 보니 인기 메뉴다. 뭔지 잘 모르니 하나만 담아본다. 튀긴 닭날개도 보였지만 뼈 째로 있어서 일단 포기했다. 열 살 한테 뼈 바르는 건 제법 번거로운 일이다. 



핫한 동글이를 먹어본다. 흠, 안에 든 건 닭고기 같다. 핫도그 안에 소시지 대신 닭고기가 들어가 있는 맛이다. 그다지 내 스타일은 아니다. 튀김류는 일부 남겼다. 뷔페는 항상 재도전할 기회가 주어지니 과감히 포기한다. 



이것저것 웬만한 건 다 먹어봤으니 베스트 메뉴만 담아 오기로 한다. 



"우와. 진짜 잘 먹는구나. 이제 막 크려고 하나 보네."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가 말한다)


"적당히 좀 먹어야 하지 않겠니?"



이제 배가 슬슬 불러오지만 내 마지막 접시는 아직 아니다. 디저트와 입가심 거리가 남았다.



아까 눈여겨보던, 생판 처음 보는 것에 다가간다. 녹색인데 젤리 같기도 하고... 우선 몇 개 담는다. 맛을 조심스레 본다. 탱글탱글 하니 식감이 딱 한국에서 먹던 '제리뽀'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제리뽀. 여기선 '젤로'라고 한다. 이것만 또 한 접시 담아 온다. 



녹색과 빨간 젤로를 끝으로 나의 첫 뷔페에서의 여정을 마친다. 






한국에 쭉 살았어도 중국집을 제일 많이 먹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스타일은 다르지만, 중국 음식이 대단한 건 전 세계 어딜 가나 현지 스타일에 맞게 진화하여 세대를 넘어 꾸준한 인기를 자랑한다. 음식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캐나다에 간다면, 일 순위로 튀어 갈 식당은 Chinese buffe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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