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하나

by 이삼오

토요일 밤, 퇴근한 지 두 어 시간도 지나지 않아 벨소리가 울린다. 원장님이다. 평소랑 다르지 않게,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지금 혹시 학원으로 가능한 한 빨리 와주실 수 있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분명하고,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았다. 이런 깜짝 호출이면 직접 가서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



학원에 도착하니 내가 퇴근할 때 있었던 입시생들이 그대로 있었고 몇몇 아이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입시생 전원 호출인 거 같은데, 공기가 제법 무거운 걸 보아하니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닌 듯했다.



언제 준비된 건지 종이컵에 작은 양초들이 보였다. 원장님은 사전 준비를 다 해 놓고 오늘 밤에 있을, 아직 알 수 없는 이벤트 준비를 완료했다.



'이럴 거면 미리 좀 알려주지... 퇴근 안 하고 그냥 있었을 텐데...'



뭐, 이런 갑작스러운,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이 한두 번인가... 그다지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모두 강의실에 모여 촛불을 붙이고, 방 불을 껐다.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막힌 공간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건 좀 위험하지 않나?'





원장님이 새로 오고 나서 학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슈스케를 비롯한 오디션 프로의 열풍에 힘입어 학원생은 폭발적으로 늘였다. 비지 형님이 계셨던 학원 학생들도 (대부분 입시생) 동시 다발적으로 합류를 했기 때문에 학원은 외형상 성장세가 뚜렷해 보였다.



대부분 원생들은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 주며 다독이는, 매우 이상적인 분위기가 조성이 돼 있었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것도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 친구들이 많이 모여있으면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나와서 와전되고, 또 그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 어떤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인지가 부족한 친구들이 제법 있었나 보다.



학원에서 공연도 했고, 엠티도 갔다 왔고 여러 행사와 일들이 있었던 사이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쌓인 부분이 있었던 거 같다. 학생과 학생 관계뿐만 아니라 일부 학생은 선생님이나 원장님에게 서운 했던 것들도 있었나 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가급적이면 서로 마주 앉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로는 쉽다) 험담과 이간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세였다.



나도 이런 낌새를 일부 학생들에게서 느끼기는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당연히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게 무엇인지 따라 나의 처신법이 달라지겠으나, 그냥 별 의미 없는 험담이라면 그러려니 한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때로는 학생들이 가십거리 대상이라는 거.



그러나 원장님은 원내에서 정치적인 갈등은 결코 용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모두가 좋게 가든가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웃시키려는 계획인 듯했다. 가족적인 분위기와 문화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우선 학원은 교육의 장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서비스 업종이기도 하다. 원장님은 돈 만 보고 이 학원을 운영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돈을 내고 다니는 사람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미우나 고우나 학생과 학부모는 고객이다.



원장님의 철학대로 학원은 운영되는 것이지만 때론 드는 생각이, 굳이 학생들 인생에 너무 파고들 거 까지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만약 어느 특정 학생이 안 좋은 영향력을 펼쳐 학원 운영에 있어서 지장이 간다면 당연히 개입되어야 할 일이지만 원생들끼리의 어느 정도의 갈등은, 심한 정도가 아니라면 그저 본인들이 해결하든 아님 시간이 해결해 줄 수 도 있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촛불을 하나씩 들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쌓였던 것들과 불편했던 점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뭔가 큰 문제는 없는 듯했다. 그저 서로들 오랜 기간 부딪히고 봐 오면서 쌓였던 감정들이 묵혀 있었던 듯했다.



여기까지는 그저 나름 훈훈한 분위기다. 답답했던 마음들을 털어놓는 그런 시간...



그러나 몇몇 친구들은 이 상황이 불편하기만 하다.



특히 보컬 전공, 원장님의 직속 제자 몇은 학원, 정확히 말하자면 원장님에게 쌓인 것들을 호소했다.



누가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기보다는 그저 서로 간의 오해와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 같았다.



비지 형님을 힐끗 봤다. 형님도 나와 눈이 마주쳤다. 형님도 이런 방식의 문제 해결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으신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왠지, 일을 더 키운다는 느낌이랄까... 문제가 되고 서로 갈등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아서 소통을 하는 방식이 더 나을 법도 한데... 오늘 이 후로 더 큰 갈등의 시작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안 해본 것일까?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몇몇 친구들은 대놓고 불만을 표하며 교실을 나섰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이 들은 별말 없이 학원에 있던 본인들의 물건을 챙겨 유유히 떠났다.



참으로 안타깝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 들은 뭘 크게 잘못한 게 없어 보였다. 그냥 다른 이 들과의 갈등인데 원장님께 반기를 들었으니 학원을 떠나야 하는 씁쓸한 상황이었다.



교육에 있어서 명확하게 옳은 답은 없는 거 같다. 지도자의 성향과 방식이 다 다르고 이를 따르는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엄청난 정성과 열정을 쏟아 이 들을 진심으로 지도했다면, 내 자식 같다고 느꼈다면, 그래서 훈육도 내 방식으로 해야 하고 내 말은 절대적이다라고 한다면, 뭐, 할 말은 없다.



그래도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학원은 '사업'이다. 내 열정과 가르침도 사업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거스를 수 없다. 옛날처럼 선생님 말씀이 절대적인, 사부 열전의 시대도 아니다.





"이제 얘기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된 거 같은데, 선생님들 한 말씀씩 해 주십시오."



(딱히 할 말이 없는데...)



"서로 헐뜯고 험담하고 할 거 없다. 다 부질없다. 각자 할 것만 열심히 해라. 내 거에만 집중해도 모자란데 남한테 쓸데없이 괜한 에너지 쏟지 말고."





(며칠 뒤)


"지난 토요일은 조금 당화스러우셨지예?"



"저는 또 무슨 더 큰일이 있었나 싶어서요.. 그나저나 몇몇 친구는 좀 아쉽네요."



"애들이 자기들끼리 욕하고 하는 건 그렇다 치고 선생님들을 씹고 다니는 건 좀 아니지예."



"뭐, 애들이니까 그럴 수 있죠. 학창 시절 누구나 특정 선생님을 욕해본 적은 있잖아요."



"하여튼 저는 용납 안 됩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상스럽게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저희가 뭐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고... 애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크게 연연은 안 합니다."



"리스페트, 존중. 저는 이 건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모두 퇴근 후, 다시 불시에 집합시키는 게 존중의 표현은 아닐 텐데)



"그런데, 내 입맛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게 꼭 디스리스펙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래도 캐나디안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실 수 도 있지만..."



(그놈의 캐나디안...)



"죄송합니다만, 캐나다에는 약 4천만의 인구가 있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 제 말과 행동이 그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직장인 레슨생 도착, 감사합니다)



"원장님, 수업 들어가 보겠습니다."






별거 아닌 듯했지만 제법 별 거였던 촛불 이벤트가 문제 해결의 도움이 되었을까?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을 색출해 내려했던 방법이었을까?



실수는 했더라도 큰 잘못을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저지르지 않은 미성년자들을 공개된 자리에서 저격을 하는 것도 교육의 일부일까?



사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나는 절대적인 존재일까 아니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일까?



올바른 철학은 무엇이고 쓰잘데 없는 고집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디션 프로의 열풍이 식어지는 만큼 이곳의 온기도 식어가는 것인가?






머릿속에 물음표가 쌓여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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