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게 왜 좋아?

by 이삼오

"아휴, 진짜 큰 일이에요. 얘가 중학교 올라와서부터 공부도 안 하려고 하고 맨날 이상한 캐릭터만 그리고 앉아있고. 이제는 기타를 치겠다고 그렇게 난리예요. 뭐, 그래도 악기 하나 하는 건 나쁘지 않은 거 같으니... 선생님, 다만, 이걸로 전공을 하겠다, 이 길로 나아가겠다고 한다면 극구 말려주세요."



2008년, 2월 27일. 학원의 첫 등록생이자, 나의 첫 레슨생의 어머니가 등록할 때 하신 말씀이자 당부였다. 좀 그렇지 않은가? 음대에서 음악 관련 전공한 사람을 면전에 두고 제발 우리 딸은 음악 쪽으로 진로를 택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건 제가 결정하고 좌지우지할 바가 아닙니다. 따님 진로는 부모님과 학생이 결정하실 문제인 거 같습니다."



조용한 아이다. 어색한 듯 별말이 없다. 엄마 말로는 시끄럽고 너무 나댄다고 하던데, 첫날이니 뭐. 악기가 아직 없으니 당분간 학원에 있는 연습용 기타로 레슨과 연습을 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냐고 물었다. 딱히 누구를 막 좋아하지는 않는단다. 그냥 노래가 좋으면 좋을 뿐. 신나는 락(rock)이 좋단다. 기타의 구조, 피크 쥐는 법, 자세 등을 잡아 주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흠... 제법 잘 따라 한다. 이해력도 좋고, 제법 영리한 학생인 듯하다. 보통 처음 한 두 가지 시켜보면 학생이 잘 따라올지, 아니면 많이 어려워할지 가늠이 된다.



다행이다. 첫 수강생이 제법 똘똘해서 앞으로도 나의 학원 생활이 잘 풀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로서는, 조금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음악학원 레슨이다. 지금 생각해도 사람의 인연이란 정말 알 수 없다는 걸 잘 알려준 케이스다.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 던 중, 지금 당장 전공은 못 살리더라도 음악의 끈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우연히 알게 된 어느 피아노 치시는 형님, 이 형님의 절친한 후배가 미국에서 나와 같은 학교 출신이란다. 누구 아냐고 물으신다. 흠.. 아! 네. 알아요. 그런데, 친하지는 않아서 그냥 어색하게 인사만 하는 정도요. 잘 됐단다. 우리가 조만간 하는 공연에 오신단다.



공연이 끝나고 낯익은 얼굴이 무대로 올라왔다. 미국에서 뵙던 선배 형이다. 신기했다. 서울도 아닌 이 지방에서, 사람의 연이란 참으로 희한하다. 공연 뒤풀이 때 이런저런 근황을 서로 물어봤다. 이 형님은 교수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키보드 형님의 꼬심(?)으로 내가 있는 곳에 학원 자리를 알아보고 오픈을 하셨다. 자연스럽게 나는 기타 강사가 되었다.



첫 레슨이 끝나갈 무렵, 이 녀석도 어색함이 많이 가셨는지 슬슬 본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나이는 몇 이냐, 어디 사냐, 원래 집은 어디냐, 언제부터 기타 쳤냐, 전형적인 호구조사에 들어간다. 나이는 20대 후반이다. 백화점 근처에 산다. 원래 집은 물 건너 멀리 있다, 기타는 네 나이보다 조금 더 많았을 때 제대로 시작했다고 했다. 레슨 시간이 끝났다. 쉴 새 없이 쫑알거린다. 이 친구 말고 다른 학생은 없었기에 다 들어주고 대답해 줬다. 이 학생은 내가 붙여준 별명인 '금보'로 부르겠다. 동글동글한 이미지가 영화에 나오는 '홍금보'랑 인상이 비슷해서 그렇게 불렀다. 본인도 은근히 나쁘지 않은 듯했다.



학원이 금보가 다니는 학교 거의 바로 앞이라 매일 같이 연습을 왔다. 실력이 느는 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솔직히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그러나 학원은 교육업이지만, 또 서비스업이다. 세일즈맨처럼 최대한 많은 칭찬 멘트를 날리기 시작한다. 좋아라 한다. 누가 싫어하겠나. 정식 레슨은 아니지만 연습 때 중간중간 들어가서 이래저래 팁을 알려줬다. 눈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레슨 시간, 기타가 왜 좋냐고 물어봤는데 중2짜리 여자애 치고 의외의 대답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거 같아서요." 아하... 그게 무슨 말인데? "처음엔 그냥 기타 치는 게 멋져 보였는데,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았어요."



이 녀석은 레슨을 할수록 별의별 얘기를 다 해줬다. 가족 얘기, 친구들과의 이슈, 성적에 관하여... 무엇보다 엄마와의 갈등이 제일 큰 문제였나 보다. 하긴, 처음 등록 할 때 상담할 때에도 어머니의 말씀들이 좀 불편하기도 했고, 처음 상대하는 나도 답답하다 생각은 했다. 그런 어머니가 사춘기 딸과의 기싸움은 불 보듯 뻔하다.



어느 날 저녁, 전화가 울린다.


"선생님. 저 금보예요. 저..."



"어? 어. 웬일이야? 근데, 뭔 일 있냐?"



"하아... 제가요.."



"뭔데? 지금 또 레슨 해야 해서. 빨리 말해."



"저 집 나왔어요."



"...(하아, 올게 온 건가?)"



"야, 우선 학원으로 와. 기타나 좀 붙잡고 있어."



이 녀석은 결국 학원에 안 왔다. 레슨 후 전화를 걸어본다. 안 받는다. 계속 걸어본다. 겨우 받더니 아무 대답도 없다. 그냥 답 없는 수화기에 내 할 말만 했다. 네가 평생 집에 안 들어갈 거냐고... 평생 엄마, 아빠, 동생 안 볼 자신 있냐고.. 그럴 자신 있으면 내가 적극적으로 너 가출하는데 도움 주겠다고. (부모님께 알리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하다는 한마디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금보는 수업도 안 오고 연습하러 오지도 않았다. 전화를 해볼까 했지만 하지 않았다. 우선 그냥 시간이 좀 지나면 연락이 오든가 아님 뭐, 말든가 하는 생각으로 지냈다. 얼마 후, 이 녀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원에 왔다.



"엄마랑은 얘기 잘했어?"



"네. 이제 속이 좀 시원한 거 같아요."



"그래. 잘 됐다. 수업 시작하자."



금보는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학원을 다녔다. 친구들도 많이 데리고 오고, 나름 훌륭한 영업 사원이었다. (원장님이 고맙다며 아이팟 미니를 선물했다.) 전공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때, 나와의 수차례 상담 후 결국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학업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본인도 악기는 취미로는 재밌지만 전공은 자신 없다고, 그리고 성적이 제법 높은 편이어서 사뭇 공부를 놓기에는 아까웠나 보다.


후에 대학은 다른 지방으로 가서 명절 때 종종 안부 인사를 전해오고는 했지만 지금은 많이 바쁜 거 같다. 어디에 있건 잘 지낼 아이다. 기타는 계속 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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