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강남

by 이삼오

학원 개원 몇 개월 후, 고1 여학생이 전공생으로 등록을 했다. 본인은 음악이 좋다고 했지만 굉장히 열정적이거나 하는 인상은 없었다.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음악 쪽으로 전공한다는 건가? 그런데 성적을 보니 또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 당시 원장님의 방침 중 하나는 음악을 전공한다고 해서 내신을 아예 놔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한다. 전공한다고 왔던 상당수의 학생들은 중도 포기하고 이도저도 아닌 방향으로 가고는 했다.



이 친구가 처음에 왔을 때 조금 난감했다. 보컬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피아노를 하고 싶은지 본인도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나이가 어린 들 그래도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는 알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무작적 무반주에 아무 노래나 시켜본다. 깨끗하고 맑은 소리다. 음정, 박자도 나쁘지 않다. 다만 소리에 힘이 없고 성량이 많이 부족했다. 피아노를 쳐보라 했다. 이 또한 노래를 불렀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흠, 작곡을 해보는 게 어때? 싱어송라이터 같은..."



"아, 그런 것도 있군요. 좋을 거 같아요!"





이렇게 이 친구는 등록을 하고 레슨을 수강했다. 정말로 잘 튀지 않는 캐릭터였다. 노래나 연주가 특출 나지는 않지만 또 일반인에 비해 출중한 듯하고, 정말 애매했다.



실은 이런 친구들이 학원에 제법 많이 오고 갔다. 어찌 보면 대부분 작곡이나 싱어송라이터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 대다수가 이런 케이스였던 거 같다. 적당한 실력에, 적당한 열정에, 적당한 노력에... 그렇다고 공부가 싫어서 그런 거 같지도 않고, 그냥 자유로운 영혼들이라고나 할까?



이 친구가 어느 날 친구를 데리고 왔다. 교복을 보아하니 같은 학교 친구다. 듣자 하니 아버지도 서로 직장 동료로 아시는 사이였다. 새로 온 친구는 보컬을 전공하겠다고 온 친구였다. 노래를 해보라고 했다. 하아, 좀 별로다. 표정에서 드러났나? 당돌하게 한마디 한다.



"제 노래가 별론가요?"



"보컬은 좀 힘들 거 같은데..."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그런데 솔직히, 너무 아닌 거 같은 거를 잘한다 할 수 없지 않나. 전공할 거 라는데. 어떻게 보면 내가 누구를 평가하는 것도 좀 부담스럽지만 음정, 박자, 딕션, 발성 등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솔직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보컬은 타고나는 게 너무 큰 거 같다는 생각에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이건 어느 악기이건 배슷한 맥락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학원을 한... 1년 조금 넘게 다녔나? 재즈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고 서울에 유명한 현역으로 활동 중인 보컬 선생님을 찾아갔다. 몇 년 뒤에 정말 우연히 무대에서 볼 수 있었는데 실력이 엄청 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실력이 늘었기보다는 별로였던 노래가 들어줄 만할 정도로 실력이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또 몇 년 뒤 해외로 재즈 공부를 하러 가서 아예 눌러앉았다고 한다. 현지에서도 나름 활발히 활동하며 잘 지내는 듯하다.



이 친구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 우선 대학 가서 전공이고 뭐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본인도 뭘 정말 좋아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친구 따라서 왔다가 우연히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걸 찾게 된 거 같다. 그냥 관심받고 주목받고 싶어서 음악을 해볼까 해서 친구 따라왔는데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뭔지 깨달았던 거 같다. 단순히 대학을 가야겠다가 아닌 진정한 보컬리스트가 되겠다는 심정말이다.




이 친구처럼 친구 따라서 오는 경우가 수두룩 했다. 어떤 부모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마치 빌런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니, 공부 잘하고 있는 우리 아들, 딸을 왜 쓸데없이 물들게 하는 거지?!"



안타깝지만 상담 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자녀의 성적은 대부분 최저 등급이라는...



공부는 하기 싫고, 대학은 가야겠고, 음악은 나름 좋아하고. 그런데 솔직히,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음악에 큰 관심이 없을지언정 싫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담할 때 항상 전공을 희망하는 부모님과 학생에게 당부하는 게 있다.


1. 그냥 공부가 싫어서 음악을 전공한다고 결심했다면 차라리 다른 길을 알아볼 것


2. 수업과 연습을 소홀히 한다면 부모님께 보고 후 향후 진로를 다시 같이 고민해 볼 것. 이후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퇴원 조치 할 것.


실제로 학원 등록 작성함에 위 두 사항(이외 다른 사항)을 꼭 숙지하고 서명하게 되어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 학원에 전공생이 늘수록 좋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미래가 달려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건 구분해야 맞다.



물론 친구 따라 강남 왔다가 오히려 더 잘되거나 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주관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다니는 경우가 많다. 어른이 돼서도 그런 경우가 허다한다 어린 친구들은 오죽 더 안 그러겠나.




학원 개원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아직까지 크게 독특한 학생이나 학부영을 마주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폭풍전야라 하지 않았나.


"걱정 마. 앞으로 기대해."



누가 나에게 속삭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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