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기숙사

by 이삼오

학원 오픈도 몇 달이 지났다. 학생들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대부분 기타와 피아노 위주로 수업을 진행 중이던 때, 점점 더 다양한 악기를 배우고자 하는 문의가 들어왔다. 학구열이 강한 동네에 있다 보니 이것저것 시키고픈 엄마들의 열성에 온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의 반응이 괜찮다 싶으면 소개로 오고 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지방이라 강사 수급이 어려웠지만 이런저런 연줄을 활용하여 강사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이럴 땐 한국의 선후배 문화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급한 상황에 부탁을 할 수 있는... 서로 입장차는 다를 수 있고 보통 선배들의 일방적인 호환이지만, 결국 상부상조 아닐까.



강사의 연령대는 대부분 낮았다. 연배가 있으신 선배님들은 많이 바쁘셔서 시간이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제 갓 졸업한, 혹은 졸업 후 이제 활발한 활동을 막 시작할 나잇대의 강사가 많았다. 내 또래의 강사들이 제법 있었는데 다들 타 지역에서 오기에 하루 정도는 머물다 갈 곳이 필요했다. 그런데, 학원이 아직 초반이라 매번 모텔 같은 숙소를 잡아 주기는 어려우니 다른 방안책이 있어야 했다. (추후에는 학원에서 원룸을 빌려 오시는 선생님이 편히 오셨다 갈 수 있게 했다.)



이때 옵션 1순위는 내가 사는 자취방이었다. 나이도 같겠다, 같은 음악인이다.. 원장님은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그렇게 해달라 하신다. 마지못해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될 선생님, 아니, 친구랑은 제법 빨리 친해졌다. 술의 힘은 대단하다. 좋아서 껌뻑 죽는 관계를 한 순간에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고 원수 졌던 관계를 봉합해 줄 수 도 있다. 어색함의 벽을 허물게 해 줄 수 도 있는, 술은 20대 후반의 남성에게는 실보다 득이 더 많다는 것을 착각하게 해주는 마법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드럼 치는 친구다. 별명은 '보쌈'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다른 친구를 통해 소개받았는데 그냥 별명이 그렇다더라. 서글서글한 성격에 외모도 적당히 호감형이라서 아이들도, 어머니들도 좋아라 했다. 드럼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은 아직 없어서인지 부담 없이 수업을 이어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마친 뒤 슬슬 안주거리 고민을 시작한다. 매주가 다르다. 감자탕, 족발, 조개구이, 해물찜... 혈기 왕성한 청년 둘이 1차에서 끝나지는 않을 터, 2차로 bar에 가거나 혹은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대충 사 와서 우리 집으로 향한다.



집에 오면 또 술판을 벌인다. 과자 몇 봉지에 소주, 맥주... 또 삘 받아서 라면까지 끓이고.. 60kg대였던 내 몸무게는 아름다운 추억이자 과거가 된 지 이미 오래전이다. 오전 늦게 일어난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매주 찾아오는 숙취, 왜 이 짓을 매번 반복하는지 후회를 하면서도 똑같은 짓거리를 매주 반복한다. 알코올의 파워다.



전날 술과의 전투를 버린 후 널브러져 있는 술병들을 본다. 술병들이 날 비웃는 거 같았다. '또 덤벼봐라, 우리 못 이긴다'


보쌈이 잠깐 나갔다 온단다. 여명 808을 사 왔다. 마신다. 웩... 내 스타일은 아니다. 다 토해낸다. 생수 2리터를 투 샷만에 끝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학원으로 향한다. 수업이 오후 늦게부터 있어서 다행이다. 첫 수업을 마칠 때쯤 완전 정신이 돌아온다. 원생들은 전날 내가 술을 엄청 퍼 마셨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름 프로답게 관리했다고 뿌듯해한다. 꼴값 떨고 있다.



보쌈을 비롯해 당분간 내 자취방은 이런저런 사람의 임시 기숙사 같은 곳이 되었다. 왔었던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우리 집을 이렇게 오픈하기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는지... 누구나 그렇지만 난 내 공간을 정말 중요시 여긴다. 웬만큼 친하지 않고서야 집에 들이지 않는다. 원장님이자 선배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좀 그랬고, 나도 뭐 매일도 아닌데 어떠냐라는 생각으로 잘 지냈다.



우리 집이 누구에게는 쉼터이자 사랑방이고, 또 누구에게는 불편하지만 혼자 모텔방에서 옆방 타인의 사랑이야기를 듣는 것보단 나으리라 생각했을 거다. 식사 걱정도 없었을 것이다. 술 먹고 다음날은 말 그대로 내가 밥을 해 먹였다. 어떤 친구는 그때가 그립다 하면서 문자를 보낸 경우도 있고, 어떤 친구는 카톡 친구 목록에 있지만 마지막 채팅이 10년 이상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이 시기쯤엔 정신적으로, 또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로워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계산을 잘하는 버릇이 있었다. 레슨비로 번 돈 절반을 술 값에 썼던 거 같은데... 이 때는 부업을 포함하여 다른 또래보다 벌이도 괜찮고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가 많이 챙겨주는 편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힘들었을 때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이렇게 돌려주나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많이 없었다. 수입의 변동성이 크고 어릴 때 자기 그릇 이상의 돈을 만지면 탈이 난다는 말이 뭔지 알겠다.



보쌈은 우리 집 비공식 하숙생 1 호이기 때문에 생각이 더 많이 나는 것 같다. 지금은 음악을 접고 다른 일을 한다. 결혼해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잘 사는 듯하다. 언젠가 같이 술 한잔 하고픈 생각은 항상 있다. 그렇게 된다면 술집에 앉아서 처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 계산은 네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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