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형님이라고 해도 되나요?

by 이삼오

베이스. 참 매력 있는 악기다. 일렉 베이스는 흡사 일렉 기타와 비슷하게 생겨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악기이다.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일단 기본적으로 베이스는 4현, 기타는 6현이다. 베이스는 밴드에서 저음을 담당하며 중심을 잡아준다. 락밴드에서의 베이스는, 케바케이긴 하지만, 별로 티가 안 나고 음색도 뚜렷하지 않게 들릴 수 있다. 재즈 밴드에서는 비중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피아노 트리오 무대를 보면 베이스가 대부분 센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역할이 크다는 얘기다.



상담할 때도 보통 수요는 피아노, 기타, 드럼, 보컬 위주다. 베이스는 전공생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 찬밥 신세인 경우가 허다하다. 축구로 따지자면 골키퍼, 야구면 포수 정도... 대중적으로는 상당히 애매한 선호도다. 그러나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존재이다. 태지형도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출신이다. 히딩크 감독의 표현으로 하면 음악계의 김남일 선수다. 있을 땐 몰라도 없을 땐 확연히 차이가 나는 그런 존재이다. 메탈리카의 "And Justice For All" 앨범을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베이스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이 앨범은 엔지니어 실수로 베이스 트랙이 꺼진 채로 마스터링 되어 발매되었다고 한다. 내 표현대로 하자면 전교 싸움짱이 물주먹 같다고나 할까?)



담배를 한 대 태우러 나왔다. 딱 봐도 흡사 도인+아티스트 같은 분이 계신다. 한 대 태우고 계시길래 , 옆에 합류한다. 베이스 선생님이 오신다고 들었는데 그분인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기타 치는 00입니다. 베이스 선생님이시죠?" 굉장한 중저음의 보이스로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라고 답해 주셨다. 정확히 이 분의 이미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스네이프 교수의 이미지와 목소리에 존 레넌 뿔테 안경을 쓰고 한국말을 한다고 하면...? 네. 이 베이스 선생님 맞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별로 없으셨다. 딱 뵀을 때도 내 연배보다는 한 참 위에 분 같았다. 흠, 아버지 뻘 까지는 아니신 듯하고, 삼촌뻘 정도 돼 보이셨다. 인상은 무서우신 듯하면서도 온화한, 카리스마가 넘치시지만 왠지 부드러운, 얼핏 다가가기 어려운 거 같지만 이미 앞에 가있는, 신비한 마력을 지니신 분 같았다.



차로 거의 1시간 반 거리에서 오시는 데 아직 학생이 몇 안 되어서 걱정이 됐다. 내가 딱히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솔직히 학생 두어 명 때문에 한두 시간 거리를 오지 않을게 확실하다.





학원을 마치고 베이스 선생님, 키보드 형님, 나와 또 다른 지인들이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베이스 선생님은 부원장(키보드 형님) 지인으로부터 소개받고 오셨단다.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또 술이 몇 잔 들어가니 내 말문이 조금 트이기 시작했다.



"학생 두 명 때문에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물론 앞으로 원생이 더 늘면 좋겠죠."



몇 마디 나누어 보지는 않았지만, 젠틀맨이시다. 동시에 드라마틱 한 삶을 살아오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술을 제법 드신 거 같은데 처음과 똑같이 흐트러짐이 전혀 없으셨다. 주량이 세셔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러신 거 같기도 하고.




술자리가 끝나갈 때쯤 선생님께 여쭤봤다.



"그런데 선생님. 앞으로도 뵐 텐데 제가 뭐라고 불러드리는 게 편하실까요? 한참 선배님이시니까 저에게는 말씀 편하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냥 편하게 '형님'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럼 다음부터 말 편하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형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형님은 얼마 안 되어 학원에 레슨을 그만두셨다. 베이스 학생들이 잠깐 하다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터전을 아예 옮겨서 다시 오시게 되는데, 사람 인연이란 참 알 수 없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된다.



베이스 형님은 실력으로 보자면 분명히 고수이다. 그렇지만 결코 본인이 누구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언행은 하지 않으셨다. 나이가 많던 적건 항상 레슨생들에게 최선을 다하셨다. 나에게 멘토링도 많이 해주셨고 겸손의 중요성도 알게 해 주신 분이다.



소위 자타공인 고수, 전문가를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겉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알맹이가 굵고 단단한 사람, 즉 '진짜'가 있는 반면에 겉은 요란하고 시끄럽지만 정작 안은 텅 비어있는 '가짜'가 정말 많다. 특히 음악이나 다른 예술 계통 쪽은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결국에는 본인 실력으로 보여주는 거 밖에는 없을 거다. 호날두나 메시가 나 축구 잘한다고 떠들지 않아도 다 아는 것처럼 말이다.




형님은 나의 20대, 30대, 또 40대에 접어들 때까지 꾸준히 나를 봐온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명이다. 나에게는 멘토이자 술친구, 또 음악 동료다. 지금은 타 지역으로 거취를 옮기셔서 거의 뵙지를 못한다. 연락을 드린 지도 꽤 오래전인데,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연락을 드려야겠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편의상 '비지(BG)' 형님이라고 하겠다. 베이스 기타의 이니셜이다. 공교롭게도 형님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형님과 조만간 한 잔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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