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서관은 도피처였다.

JO_&

by 조앤

도서관은 도피처였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나르시시스트 이런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도서관을 가는 이유를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게 도서관은 매우 편안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좋아서 도서관을 찾아갔고, 그 후에는 책 그 자체를 보기 위해 찾아갔다. 학교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집에서 일찍 출발했다. 나는 내 성격을 너무 잘 알았기에 도서관에 가는 것을 미루지 않도록 바로 실행했다.


어떤 질문에도 내 대답은 항상 도서관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도 도서관, 가장 자주 가는 장소도 도서관. "또 도서관 가냐?"라는 말이 흔한 인사말이 될 정도로 나는 도서관이 좋았다.


나는 나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서 도서관을 갔다. 나의 공허함을 매우기 위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도서관이 좋았고 때로는 도서관의 박력에 뒷걸음질 치기도 했다.


어렸을 적 나는 도서관에서 살고 싶었다. 그냥 도서관도 아니고 아기자기한 오두막으로 만든 도서관에서 사는 것을 꿈꿨다. 아침이 되면 책으로 둘러 쌓인 방과 함께 깨어나고 한가로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나는 두꺼운 책을 한 손으로 펼쳐 보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괸 채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다. 허무맹랑한 꿈일지라도 나는 항상 나만의 작은 도서관을 그렸다.


이후 시간이 흘러 점차 책과 멀어지고 주변 친구들이 점점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을 때도 나는 꿋꿋이 책을 만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을 간다는 나의 말이 공부를 하러 간다는 말로 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그야 도서관이란 내겐 한결 같이 책을 읽기 위한 공간이었다.



도서관은 도피처였다.


어쩌면 이 말조차 내게는 절박한 창구였는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나만의 문장이었다. 그 누구도 훔칠 수 없는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모두가 아는 도피처였지만, 그 누구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 곳이었다. 나를 아는 누구라도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었음에도 사람들은 부러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숨을 쉬었다. 숨어야만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처럼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도서관에서도 숨을 곳을 찾았다. 이미 한 번 숨은 공간에서도 더 좁고 더 폐쇄적인 세상을 찾았다.


수천 권의 책으로 가득 채운 책장에는 많은 세상이 있었다. 나는 그 속을 거닐며 차분히 세상을 골랐다. 어떤 세상이 내게 적합할지, 어떤 세계가 진정으로 나를 위한 세계일지 나는 용사가 되어 기꺼이 나를 바쳤다.


나만의 아지트라는 건 참으로 견고한 것이다. 타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것이라 명명한다. 설령 그 공간이 모두가 함께하는 공간일지라도 어린 시절의 욕심이란 건 걷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낯선 사람들만이 가득했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하나의 세계를 탐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 사이 스치는 사람들에게 너그러운 배려를 보였다. 말을 섞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귀차니즘이 심한 사람이었고, 혼자 심심함을 달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심심함을 달래고자 꾸역꾸역 도서관을 가기 시작했다. 도서관은 도피처였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때 꾸준히 도서관을 가고는 했다. 2번의 이사를 했지만 집 근처에는 늘 도서관이 가까웠다. 그래서 종종 도서관을 갔다. 초등학교 때는 집 근처 도서관에 꾸준히 가기보다는 학교 도서관을 자주 갔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책을 빌렸고, 하루 종일 책을 읽고 다음날 반납했다. 일종의 출근 도장, 그런 거였다.


학생 두어 명만이 있던 교실은 항상 적막이었다. 전국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그랬을까. 학교에 일찍 도착하는 학생들 중 나서서 교실 불을 밝히는 학생은 없었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교실에 불을 키는 행위는 이 시간을 단절시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무런 대화 없이 가방만 툭 내려놓고 도망치듯 반을 나가고는 했다. 품에는 수 권의 책이 있었고 내 주머니에는 항상 학생증이 들어있었다.


나는 대출할 책을 고를 때도 반납할 책들을 꼭 껴안고 있었다. 이런 나를 이해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조금이라도 오래 책을 붙들고 있고 싶었다.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상을, 책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을, 책을 읽던 그 시간을. 내게 있어 책을 반납하는 행위는 나와 그 책의 단절을 의미했다. 내게서 너무 많은 것들을 앗아가는 것 같았다.


도서관은 참으로 신기한 곳이었다. 항상 깔끔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어도 책에서는 늘 손때 묻고 오랜 세월의 향기가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은 분명 그러한 면모를 사랑해 도서관을 찾았음에 틀림없었다. 사람들은 내게 아무런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내가 도서관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책을 훑던 책장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쾌적하고 조용한 환경일 뿐이었다. 엄숙하고 딱딱한 그곳이 도리어 내게는 가장 자유로운 것이었다.


나는 유유히 서가 사이를 걸었다. 부러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서가에 가서 한참을 고민하다가도 결국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다양한 장르를 성립하겠다는 나의 포부는 항상 허무한 끝을 맞이했다. 그렇게 책을 구경하다가 저 멀리서 사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곧 종 칠 거라는 선생님의 우려에 나는 화들짝 놀라 책을 들고 선생님께 향했다. 대출할게요. 수 십 번을 외쳐도 질리지 않을 나만의 주문이었다.


도서실을 나와 돌아온 교실은 두어 명만 있던 것과 다르게 어느덧 절반이 가득 찬 교실로 변해 있었다. 어두운 교실은 어느새 불이 켜져 있었고 조용하던 학생들은 즐겁게 수다를 떨어댔다. 교실 한 중간에 모여 즐겁게 웃던 친구들은 문가에 선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또 도서관 갔다 왔냐며 내게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해댔었다.



도서관은 도피처였다.


이 문장이 곧 세상을 혐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이 미웠던 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을 증오했던 것도 아니고, 내 주위 사람들이 꼴도 보기 싫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지쳤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쳤을 뿐이다. 누군가의 추억으로, 누군가의 착각으로, 나의 어린 시절로 도망가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른다.


그곳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었고 어지러운 미로 속 도달 할 수 있는 낙원도 아니었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고 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곳이었다. 그건 한 번도 나만의 아지트가 되지 못했고 나를 지켜주는 단단한 방호벽이 아니었다. 도망치고자 했던 나는 모두가 아는 공간으로 숨어들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추측할 수 있는 그곳으로 웅크려 들었다.


나는 누군가가 찾아주기를, 또 아무도 나를 찾지 않기를 동시에 바랐다. 책 속으로 숨어들며, 나조차 나를 잊고 싶었다. 나는 꿈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언가에 빠져들고 열망하고 열정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기력하고 겁 많은 사람이 아닌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거창하고 허울뿐인 말이어도 좋았다. 도서관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한 번도 거짓인 적이 없었으니까.



도서관은 도피처였다.

나는 내게 미안해서 도사관으로 향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기를 바란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숨 쉴 수 있는 곳.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당신만의 작은 도서관을.





~ 25.07.2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