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후기를 쓰며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아침도 안 먹고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갔고,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 불을 킨 후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책으로 지루함을 때우고, 일찍 왔다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수업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다시 수업을 하고 학교가 끝났다. 도저히 교지부 마지막 활동 시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나는 종종 막연히 교지부의 끝을 생각했었다.
슬픔, 뿌듯함과 같은 감정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내게 있어 교지부의 마지막은 '편집 후기'를 쓰는 것이었는데, 아직 1학년인 탓인지 동아리 자체의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교지의 '편집 후기'가 좋았다. 이 교지를 완성한 사람들이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학생이란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일종의 용기, 다독임이라 느꼈던 것 같다. 후기는 끝끝내 무언가를 완성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 어쩌면 나는 그 단어를 사용해 보고자 교지부원이 됐는지도 모른다.
편집 후기를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써야 적당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지부원이 되었다는 설렘을 시작으로 선생님, 선배님, 그리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감사를 끝으로 마무리지었지만 어딘가 허전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것이 나의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교지부 최종 마감은 내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출판사로부터 1차, 2차 원고가 올 때마다 나는 눈이 빠져라 원고를 읽었다. 오타와 비문을 찾아서 기록하고 또 수정했다. 평소보다 훨씬 더 촉박하고, 더 무게감이 있었던 작업이었던 탓에 머리와 눈이 아파도 한동안 노트북과 핸드폰을 놓지 못했었다. 가장 지루하고 가장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가장 진지하게 임했던 작업이었다.
그렇게 송고한 원고는 이제 정말 '교지'가 되어 학교에 도착한다. 교지가 담긴 박스가 도서관 구석구석 수북이 쌓였다. 이 교지를 배부하는 것이 교지부원의 마지막 일이다.
학교에 도착한 교지는 총 60~70 박스 정도로, 각 박스 당 30권의 교지가 들어있다. 우선 이 상자를 모두 한 곳에 모아놓고, 각 반의 학생 수를 칠판에 적는다. 상자를 옮길 때 정말 정말 허리 조심, 어깨 조심을 해야 한다. 상자가 정말 상상 이상으로 무겁다! 각 반별 상자는 1개씩으로, 책상 위로 옮긴 상자 옆면에는 N학년 NN반을 적어 놓는다. 반별 인원수를 확인하고 열었던 상자를 다시 포장하면 된다. (내가 재학 중인 학교는 각 반 최대 30명으로, (보통 27, 28명이다.) 30명이 되지 못하는 반은, 그 반의 상자를 열어 숫자에 맞게 책을 빼서 권수를 맞춘다.) 이후, 상자를 각 반에 옮겨놓으면 첫 번째 팀의 모든 일이 마무리된다.
첫 번째 팀이 각 반 별로 교지를 나누기 위한 작업을 하는 동안, 두 번째 팀은 외부로 발송할 교지를 포장한다. 종이봉투에 주소 스티커를 붙이고, 교지를 넣고, 종이봉투를 포장할 수 있는 양면테이프를 붙이는 일로 단순한 작업이지만 단순하기에 더 어려운 작업이다. 몸이 고생하지만, 한눈에 봐도 작업량을 알 수 있는 '반별 교지 배송'과 달리 단순 반복 작업인 '외부 교지 발송'은 그 가늠조차 하기가 어렵다. 학교를 거쳐가신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주위 중학교로도 (내가 나온 중학교로도 발송했다.) 발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송되는 교지 권수는 반별로 나누는 교지와 비슷하다.
나는 첫 번째 팀으로, 반별로 교지를 나누는 것 외에도 학교 선생님들께 드리는 일도 도맡아 했었는데, 이 모든 일을 합침에도 두 번째 팀의 일이 끝나지 않았을 정도다. (결국 모두가 도와 일을 마무리했다.)
모든 팀의 작업이 마무리 되자, 우리는 그제서야 이별이 왔음을 알았다.
나의 1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조금은 허무하고 또 애틋한 이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