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2화
� 『일상의 블랙홀』 시리즈
매일 스치는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삶의 온도와 울림을 기록합니다.
작은 블랙홀에 빠져본 당신, 함께 이 여정을 걸어가요.
낮엔 고요했다. 바람만 점잖게 불었고, 차 소리도 어쩐지 스르륵 미끄러져 지나갔다. 나도 착각했다. "이 동네, 괜찮은데?"
나는 도시남이다. 아파트도, 마을도 아닌 술집 거리 위의 오래된 단독주택 2층에 산다. 그저 세들 집을 찾다 보니 이리 흘러들었고, 그 낮의 정적에 속아버렸다.
사실 조용한 거리에서 글을 쓰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어딘가에서 '작가는 고요한 골목 끝방에서 탄생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있다. 그러니 이곳, 오후 6시까지 너무도 조용한 거리에서 나는 큰 결심 없이 이삿짐을 풀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 거리의 진짜 얼굴은 오후 7시 이후에 나타난다.
오후 6시까지, 이 거리는 마치 서부영화 한 장면 같았다.
사람들이 숨어버린 거리. 텅 빈 공간에선 먼지바람과 석양만이 주인인 시간.
술집거리의 낮은, 마치 《황야의 무법자》 속 주인공과 악당의 결투를 앞두고 있는 정적 같은 느낌이다.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음악이 깔리는 듯한 정적. 말은 없고, 긴장만이 공기를 지배한다.
총을 뽑기 직전, 팽팽한 기운은 당겨진 실줄처럼 위태롭고,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기울 무렵. 도시는 방아쇠를 당긴다.
첫 웃음소리. 첫 고성. 총성이 울리듯, 밤의 소란이 터져나온다.
창문밖 웅성거림. 곧이어 뾰족한 취기 오른 웃음소리.
그 웃음 끝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성과 유리 깨지는 소리.
그리고 어김없이 시작되는 똑 같은 말만 되풀이 되는 말싸움.
싸움이 없으면, 이 거리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아, 진짜 그 얘기 또 하냐?”고 외치고 누군가는 이미 술에 취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도시는 싸우기 시작했다. 총 대신 목소리로, 피 대신 이야기로.
창밖은 전쟁터다. 나는 관객이자 기록자, 그리고 때때로 피난민.
5년이 지났다. 이젠 그 소리도, 밤새도록 돌아가는 노래방의 회전 불빛도 친근하다. 도시는 시끄러워야 제 맛이라는 말, 이제는 나도 이해한다. 어쩌면 저 사람들의 고성이 외로운 나의 밤을 깨우는 자명종이다.
예전엔 새벽 5시까지 잠을 설쳤다. 소리는 가로등보다 더 길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목소리들이 창문 아래를 떠돌았다.
첫날, 여름밤의 열린 창을 통해 잠을 청하는 베개 바로 밑에서 울려오던 그 소리—
마치 릴케가 『말테의 수기』 서두에서 묘사했던, “요오드포름, 감자튀김 기름, 그리고 두려움”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공기처럼,
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바로 그 소리의 직접성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1시쯤이면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힌다. “요즘 장사 안 돼요. 힘들어요.” 그 말 끝엔 한숨 같은 웃음이 묻어 있다.
어쩐지 허전한 내가 남겨둔 소주를 한 모금 따른다.
누군가는 이 거리의 밤을 ‘피곤하다’고 말하겠지만 나에게 이 밤은 이제 삶이고, 기억이고, 익숙한 위로다.
당신의 밤에는 어떤 블랙홀이 숨어 있나요?
소리로, 냄새로, 혹은 어설픈 웃음으로... 도시의 소음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일상의 블랙홀』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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