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12화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사랑은 조건 없는 관심과 헌신이라고.
너를 위해서라면 나를 조금쯤 내려놓을 수 있고,
너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된다고.
그래서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기꺼이 자신을 잊습니다.
서로의 하루를 묻고, 눈빛에 귀 기울이며,
'함께'라는 말 하나에 작은 감동을 받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안에 조용히 섞이기 시작하는 게 있어요.
나의 기대와 나의 서운함,
내가 준 만큼 받고 싶은 마음.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말 한마디가
이젠 마음에 걸리고,
한 번쯤은 나도 먼저 챙겨주길 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순간부터 사랑은 조금씩
‘무조건’에서 ‘조건적’으로 바뀌기 시작해요.
그리고 문득,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이게 진짜 사랑일까?
나는 지금, 나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랑해도 나를 잃지 말자'
'너를 위하되, 나도 함께 있어야 한다'
이 말들, 맞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애초부터 '균형 잡힌 사랑'을 꿈꿉니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그런 사랑.
하지만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균형을 완벽히 지키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정말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조금씩 무너지고, 기울고, 때론 서툰 선택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아닌 너에게 더 많은 무게를 싣기도 하고요.
그래서 중요한 건
처음부터 균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흔들린 후에도 다시 중심을 되찾을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고,
공식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상대를 향해 기울었다가,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는 그 반복.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랑을 배우고,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갑니다.
나는 여전히 사랑 앞에서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많이 기울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사랑은 균형을 완벽히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함께 붙잡아 주는 일이라는 것을.
사랑은 중심을 잃었다가도,
함께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오늘의 문장
“사랑은 균형을 지키는 기술이 아니라,
균형을 되찾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