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14화
영화, 드라마의 이야기들은 늘 도달하지 못한 사랑을 다룹니다.
끝맺지 못했기에 더 오래 남고,
닿지 못했기에 더 순수하게 기억되죠.
그것은 마치
꽃이 피기도 전에 떨어진 꽃봉오리처럼,
현실에 물들지 않아
더 이상적으로 남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
그 사랑은 일상이 되고,
때로는 소멸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문학과 영화는
완성보다는 도달하지 못한 감정의 진폭에 집중합니다.
그 여운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본질을 되묻게 되니까요.
완성된 사랑은
장미꽃 한 송이가 아니라,
그 꽃이 시들고
다시 피어나고
그러다 결국 함께 늙어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완성된 사랑은 일상이 된 사랑,
낭만이 빠져나간 자리에도
존중과 배려가 남아 있는 사랑입니다.
그건 영화 속 명장면처럼 불타오르지는 않지만,
매일 아침
물 한 컵을 서로 챙겨주는
조용한 의식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루어진 사랑이 아니라,
지켜낸 사랑입니다.
완성된 사랑의 얼굴은 이런 모습일 겁니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상대방이 늦게 들어와도, 연락이 늦어져도 의심하지 않는 마음. 믿음이 습관이 된 관계.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거리.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편안함.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호흡.
기쁨과 슬픔을 함께 '기록'하는 시간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힘들 때 기대고 싶은 어깨.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 써내려가는 동반자.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곳에서 마주하는 상대의 눈빛. 화장을 지운 얼굴도, 잠옷 차림도, 심술궂은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선.
완성된 사랑은 불꽃이 아니라
오래 타는 등불입니다.
시끄럽게 타오르지 않아도
밤의 어둠을 조용히 밀어내는 빛.
어떤 사랑은 시작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어떤 사랑은 끝났기에 더 깊어집니다.
그러나
완성된 사랑은
추억보다 현재에 더 오래 머무는 사랑입니다.
그건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매일 조금씩 자리를 넓히는 사랑.
마치 바닷물이 갯벌에 조용히 스며드는 것처럼.
미완의 사랑이
이토록 찬란하고 가슴 아프게 남는다면,
완성된 사랑은
어디쯤에서 조용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걸까?
혹시 우리는
완성된 사랑을 사랑이 아닌 줄 알고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