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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자리에서

예정에 없던 2차 테스트

by 일요일오후여섯시

실기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조용한 방,

가라앉은 마음,

넘어가지 않는 시곗바늘.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진짜 합격할 거라고 생각하고 도전한 건 아니잖아.

경험해 본 것만으로도 멋진 거지.”

위로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나도 모르게 단정 지어버린 결과에 힘이 빠졌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오기가 생겼다.

그래!

사람들은 나의 도전을 응원해 주는 척하지만

속으론 이미 끝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사실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쯤이면 충분하지.’

‘이제 그만하면 됐어.’

결과를 기다리며 나조차 기대를 내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자 발표 날.


내가 받은 결과는



합격의 기쁨도, 탈락의 슬픔도 아니었다.

내게 돌아온 건

2차 테스트를 보러 오라는 애매하고 잔인한 답변이었다.



다시?

또?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왜 또 그 떨림과 긴장감을 견뎌야 하지?

왜 다시, 나를 증명해야 하지?

비겁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떨어질 거잖아.’

‘1차 때가 내 최선이었어.’

‘더는 못해. 이미 다 보여줬어.’


내 안의 나는 수없이 많은 이유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을 지나 나는 또다시 테스트장에 서 있었다.

진심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1차 때보다 더 잘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기대하고 있을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1차 때 내 모든 걸 쏟아냈으니까.


숨겨둔 기술도 없었고, 감춰둔 체력도 없었다.


더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잘하고 싶은 욕심만이

남아있었다.


그게 지금의 나였다.


프로축구단의 이름을 달고 큰 대회에 나가겠다는

내 당찬 포부는 그 여정을 통해

‘운동선수의 세계가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간절함만으로 다 이룰 수 없는 현실도 존재한다는 것’을 차근히 알려주었다.


결과는, 냉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 냉정함 안에서

어쩌면 가장 뜨거운 나 자신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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