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지만, 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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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전에는, 어젯밤 너무 술에 취한 거 같아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지만) 집에 데려온 후배를 택시 태워 보내고, 누나가 사다 준 순댓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엊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나에게 벌어진 사건의 의미를 해석해 보려다 그만두었다. 다만 나는 후배에게 아침을 챙겨 먹이지 못하고 보낸 게 못내 아쉬웠다. 어제 술자리에서부터 택시 안, 심지어 집에까지 와서도 H는 묻고 또 물어왔다. “정말이에요. 저 그래도 되는 거예요. 와, 이거 정말……” 하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 웃음에 담긴 의미가 불러 올 이후의 파장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2

한낮의 투명한 햇살과 가을밤의 친절한 바람과 가끔 찾아드는 쓸쓸함이 공모하여 만든 그날, 그 뜻밖의 상황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 나는 모른다. 마음을 다치거나 불행하다고 느낀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러면 된 거다. 이미 벌어진 일은 필연적으로 벌어질 일이었다. 다만, '지금껏 아무것도 변한 건 없으니 앞으로도 새삼 가슴 시릴 일이 또 뭐가 있겠어' 하는, 다소 위장된 담담함으로 10월 앞에 서 있을 뿐. 친구가 여행지에서 찍어 보낸 이국의 밤 풍경 속에서도 어김없이 가을은 웃고 있었다. 내가 가을의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그날의 밤바람이 베풀어준 친절 때문이고, 그 바람 속에서 깔깔깔 소리 내서 웃던 누군가 때문인데, 이전부터 나를 향해 오던 웃음, 비로소 알게 된 그 웃음, 실은 내 웃음도 가끔 그를 향하고 있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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