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by 소라

계속되는 불면으로 날카로워져 있는 신경에

또 카페인을 들이부어 잠을 이루지 못하다

겨우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엄습해오는 짓눌림에 흠칫 놀라 잠을 깨보니 시간 반이 지났을 뿐.

다 잤네 싶어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아침은 멀기만 하고 다가오는 새벽의 찬 공기에 일상이 숨막혀온다. 내가 스며든 이 세계는 인간의 율을 포기한 자들의 공간, 왁자함이 관통하여 유혈이 낭자하고, 소스라친 나는 이곳에서조차 이국의 존재임을 확인하다.


나도 모르게 주류의 난동에 갇힌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자기 검열을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지나친 것이 아니냐 반문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나의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을, 내 존재를 의심받을 수 있음을 알아버렸다. 그렇지만 그 또한 나이고 나였다. 들추어내면 들추어낼수록 또 다른 어떤 내가 나타날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른다. 오롯이 내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함은 절망으로 몰아버리기에 존재의 앓음은 성찰로 나아갈 것이라 믿어버렸다.

주변의 어지러운 사물들에 현기증이 나 온통 치워버리고는 박박 닦아댔다. 그런데 아무리 지우려 박박 닦아대도 자꾸만 묻어나오는 흔적들에 주저앉아버렸다. -방어기제를 모두 벗어던지고 일상의 위선을 폭로하고, 타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말들이 좋았다. 믿음으로 이루어진 이해의 시간들이 낙원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조심하여 뱉으려 한다면 이미 그것이 위선, 이미 그것이 타협, 이미 그것은 불신이 될 것이기에 낙원 따윈 없다.- 힘껏 문지르면 지워지려나 했으나 더 두드러진 흔적에 감당할 수 없어 그대로 남겨두었다. 의미 없는 것이었다. 행함으로 지워질 것이 아니었었다.

처음부터.


기형도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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