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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라 Jul 13. 2021

아빠와 참치 1

아빠가 그랬어 (2)

그해, 엄마가 집을 나가고 삼 남매와 아빠는 봉덕동 관제탑 앞 어느 집에 세 들어 살게 되었다.

뻔한 동네에서 주인으로 살다가 세를 들게 되는 심정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열 통장 네 마누라가 집나 갔데", "그 집 마누라가 여기저기 빚을 많이 졌데"

"선산과 논밭 다 팔았데~" 등등의 갖은 소문들을 우리는 직접 들어야 했다.

왜 어른들은 지나가는 애들 뒤통수에 대고 들리게 이야기할까?

그게 궁금했었는데, 지나고 나니 내가 늙고 나니 알았다.

어른들은 키는 줄어들고 목소리는 계속 커진다는 걸.


그런데 참 웃긴 건 우리 삼 남매는 씩씩했다.

미모의 동생은 그 당시 국민학교 2학년, 나는 국민학교 5학년, 오빠는 중1이었지만 집안이 몰락했다고

느껴질 만한 것은 냉장고가 사라진 것 외에는 없었다. 자게 농이야 있거나 말거나 였고, 그 당시에는 돈이 있던지 없던지 사람 사는 형태는 비슷하지 않았나. 우리 집이 엄청 좋은 양옥집에서 살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 지라 방 딸인 복덕방으로 이사를 갔어도 그게 전세인지 사글세인지 몰랐다. 다만 우리 집이 아니란 것만 알뿐.


지금으로 말하면 학교에서 나름 반인싸였던 것 같다.

대단하진 않았지만 나름 악대부에서 바통도 돌리고, 키도 좀 컸고, 미술 관련상과 글짓기 관련상을 다 휩쓸기도 했으니 그래도 봉덕 국민학교에서 이성자라고 하면 듣보잡은 아니었던 학생이었다.

근데 그때 발레 하던 은지라는 친구가 있었다. 서울에서 전학 온 그 친구는 야리야리하게 뽀얗게 서울내기처럼 생겼다. 그 친구는 그 동네에서 제일 부자동네라고 일컫는 미리내 아파트에 살던 친구였다.

아파트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 거기 살고 있었다고 하면 우와~ 아파트 사는 친구.라고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 아이는 가끔 나에게 말을 건넨다.

"성자야. 너 오늘 우리 집 가지 않을래?"

"미안. 나 악대부 연습 있어서 안 돼."

"그럼 내가 너네 집으로 가면 갈까?"

"안 돼. "


엄마는 집 나가고, 아빠는 매일 술을 드시면서 가끔 언성이 높이시던 그때, 오늘은 아빠가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기도드리며 잠을 청하던 그즈음이었기에 누군가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은 불편한 일이었다.

엄마가 가출한 지도 어느덧 몇 개월이 지나고 아빠는 점차 기분을 회복하시고 그 어렵던 시기를 다시 버티어 보기 시작하셨는지, 휑하던 복덕방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민화투와 육백을 치러 오셨고, 아빠는 그 당시 대나라고 불리던 자릿세를 뜯어 그 돈을 모아 어르신들의 술안주를 만들어 주셨다. 그 술안주는 대부분 두부였다. 그 덕에 우리 삼 남매는 매일 두부를 먹었다. 왜냐면 아빠는 자릿세로 산 두부의 반을 집 찬장에 빼돌리셨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반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두부를 사러가야 하는 아빠.

동네 구멍가게가 아닌 슈퍼라는 곳이 처음 생겼다. [앞산 슈퍼]. 슈퍼마켓이라는 이름이 처음이었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가게를 지금의 이케아나 코스트코 보듯이 본거 같다. 엄청나게 넓은 매장과 많은 물건들.

그곳을 구경하기 위해 두부 사러 가는 아빠의 뒤를 따라갔다.


"아이고 통장님 오셨으예~ 오늘도 두부 사러 오셨는 갑지예~"

"우리 애들이 두부를 좋아하네.~"


아빠는 우리 핑계를 댔다.

어차피 우리 때문에 사는 두부도 아닌데, 그러자 눈치 없는 앞산 슈퍼 아주머니가 말한다.

"두부만 무면 질리지예~"

"뭐 사줄 게 있나."

"통장님. 참치간슴매라고 새로 들어온 게 있는데 요거 하나 사가 보이소! 이게 국 끓여놓으면 엄청 시원해서

소고기 저리 가라 아입니까!"


백 원짜리 두부나 콩나물 백 원치면 해결이 될 것을 그날 아빠는 말 한번 잘못했다가 큰돈을 쓰셨다.

참치캔. 그 조그만 캔 하나를 사 가지고 오신 아빠의 요리법은 간단했다.


노란 양은으로 된 말통에 무 하나. 콩나물 백원치. 대파 반 단. 그리고 고춧가루 약간과 그 참치 한 통.

그게 아빠의 조리법이었고 참치 국을 처음 맛본 우리들은 탄성을 질렀다.


"아빠. 무슨 국이 이래 맛있노. 이거 고깃국이 가?"

"이게 저 멀리 태평양에서 잡은 참치라 하는 생선인데. 그 생선국이야. 맛나지?"

삼 남매는 참치의 흔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그 국을 미친 듯이 먹었고. 한 번 끓이면 삼일을 같은 국을 먹어야 하지만 그게 더 좋았다.

그 이유는 물컹해지는 무도 맛났지만 국이 바닥을 보이면 보일수록 실 같은 참치살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참치 국은 아빠가 기분이 좋은 어느 날이면 해주는 특별식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친구 은지는 방과 후 만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성자야. 니 오늘 우리 집에 가면 안 돼? 나 오늘 발레 쉬는데. 너도 오늘 비가 와서 악대부 연습 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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