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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라 Jul 13. 2021

아빠와 참치 2

아빠가 그랬어 (3)

은지의 초대를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던 나는 은지의 집인 미리내 아파트로 갔다.

아파트는 친구였던 민선이네의 대성 맨션 말고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맨션과 아파트가 어떤 차이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아파트라는 이름이라서 더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이 몇 평의 집인지도 몰랐다.

요즘 아이들이야 '너네 집 몇 평이야?'라고 묻는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 우리들의 입에 평이라는 단어를 떠 오릴 일이 없었다. 그저 방이 몇 개야 정도였지.


아파트에 도착한 은지는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말했다.

"너 배고프지? 라면 끓여줄까?"


그때 은지가 끓여준 라면은 안성탕면을 만드는 농심에서 나온 까만소라는 라면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라면이었지만 그 당시 꽤 핫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파트는 좋구나 라고 느낀 것은 바로 싱크대 옆 조리대에서 서서 음식을 만드는 은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였다. 당시 우리 집의 부엌은 연탄보일러인 연탄불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연탄을 쓰지 않는 여름철에는 곤로 위에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아빠는 쭈그리고 앉아서 음식을 만들었었다.

입식 주방의 생경스런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나의 앞에 예쁜 그릇에 담겨 있는 라면이 도착했다.

라면을 먹으려고 하는 그 순간, 은지가 말한다.

"잠깐! 잠시만"

그리고 은지는 참치캔을 꺼내오더니 반을 내 라면에 붓고 반을 자기 라면 위에 부었다.


처음 알았다.

참치의 속살이 이렇게 맛나다는 것을.

말통 안에서 이리 부서지고 저리 부서져서 산산조각이 난 참치살이 아닌 정말 그대로의 참치살을 먹어본 것은

그날이 첨이었다.

진정 이게 참치 본연의 맛인가! 


그때 알았다. 이후 이 일은 내게 엄청난 철학적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그렇게 라면 한 그릇을 잘 얻어먹고 집으로 갔고, 그때부터 나는 아빠가 해주는 참치 국이 더 이상 맛나지 않았다. 훗날 나는 이걸 이렇게 말했다.

"얻어먹는 것도 자기 형편껏 얻어먹어야지 일상이 비루해지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나는 딸 단비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해줬다.

그건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은지가 내게 말했다.


"성자야. 오늘 너네 집에 놀러 가면 안 돼?"

집에 누군가를 데리고 가는 일은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화투를 치고, 군인 출신의 성격이 불같은 홀아비 아빠와. 그 당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오빠. 그리고 냉장고가 없어진 우리 집.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단박에 오케이 했다.


커서 생각해봤다. 내가 왜 그날 오케이 했는지.

그건 기브 앤 테이 크였던 것 같다.

나에게 최고의 맛을 보여준 은지였기 때문이다.


은지는 집에 왔고, 남루한 우리 집을 아무렇지 않게  재미나게 쳐다보았고. 나는 그녀에게 예의상 물었다.

"혹시 너 배고파?"

그러자 은지가 말했다.

"응. 배고파. 라면 있어?"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궁핍함을 느껴본 적 없는 부잣집 아이의 대답은 해맑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라면을 끓여주기 위해 곤로에 불을 켰고, 라면을 끓이는데 계란 하나라도 넣어주고 싶어서 찬장을 뒤졌다. 없다. 계란이 없었다. 그러나 계란 대신에 참치캔 하나가 있었다.

순간 어떤 망설임도 없이 캔을 땄고. 그녀가 나에게 대접했듯이 나도 그녀에게 참치캔 하나를 대접했다.

우리 집 삼일 치 식량이었던 참치캔


"너는 안 먹어?"

"응. 난 배가 안 고파. 나중에 식구들이랑 먹을 거야."


나는 은지가 먹는 동안 외쳤다.

방을 보여주러 간 아빠가 제발 돌아오지 않기를......

은지가 조금 빨리 먹고 가 주기를......


그리고 신은 나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은지가 가고 나서 나는 이불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저녁이 되어 오빠도 들어오고 친구 집에 놀러 간 동생도 들어온 그날 저녁

아빠가 찬장을 뒤지면서 말을 한다.

"성자야~ 여기 참치캔 못 봤어?"

나는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응...."


한참 동안 찬장을 뒤지던 아빠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라면과 참치 빈 캔을 보고는 문을 벌컥 여셨다.

"이거 누가 먹었어?"

내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맞기 시작했다.

"누가 집에 친구 데리고 오라고 했어! 넌 홀아비 밑에서 크는 거 보여 주고 싶어? 엄마 없이 사는 거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어? 왜 밥때 되어서 친구를 데리고 와? 왜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어?"

얼마나 맞았는지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 개도 안 아팠다. 이유는 은지가 가고 나서 아빠한테 들켰기 때문이다.

아빠의 성격상 은지가 있었어도 때릴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맞는 게 일상이었다. 


다만, 삼 남매에게는 룰이란 게 있었다.

누구 때문에 맞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내가 잘못해서 아빠가 화가 나면 그 때문에 다른 형제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오빠와 동생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우리는 잘못을 해도 똑같이 야단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예외였다.

나 혼자 맞았다. 모두가 없었던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 맞았던 것이다.

맞이 않아서 그런지. 훗날 이 이야기를 해줘도 오빠와 동생의 기억에 이 참치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밤이 되었고 잠을 자던 나는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을 가려면 일어나 연탄불이 있는 부엌을 거쳐. 아버지의 복덕방인 있는 쪽문을 지나 마당으로 가야만 화장실을 갈 수 있었는데 일어나 화장실로 가기 위해 부엌을 지나 쪽문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그때 검은 그림자로 보이는 누군가가 강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빠였다. 아빠는 복덕방의 다 찢어진 레자 소파 위에 앉아서 강소주 두 명을 놓고 안주 없이 술을 들이켜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였지만, 그것만은 알았다.

지금 화장실을 가면 안된다.

마려운 오줌을 참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언제 일어났냐는 듯이 숨죽이고 있었는데

이내 아빠가 들어와서는 나의 이불을 걷으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 들켰다. 또 맞겠구나.'

그런데 아빠는 내 바지를 걷어 올리시고는 연탄 집개로 맞은 다리에 안티프라민 연고를 발라 주셨다.

안티프라민의 화한 냄새가 내 코까지 올라올 때였는데 아빠가 혼잣말을 하셨다.

"그게 뭐라고....,,"

울었다. 맞으면서도 울지 않았던 내가 갑자기 울었다.

안티프라민 매운 냄새 때문도 아니고, 갑자기 맞았던 곳이 쓰라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그런데 그날 아빠는 내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해주지도 않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약을 발라주고 복덕방으로 나갔다.


한참을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그렇게 그 사건은 아빠와 나의 사건으로 기억 속에 묻어 버렸다.


그리고 내가 스무 살이 되었고, 나는 대명동 계명대 캠퍼스 앞에서 선물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을 때다

아주 간간히 집에 들어가 아빠가 차려놓은 밥상을 먹는데 그날은 아빠가 참치캔을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귀하던 참치는 선물용으로 흔해졌고, 이제 귀한 참치가 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도 아파트에 살 때였다.


"아빠. 이게 뭐고. 이거 참치 아이가! 내 이거 먹고 또 연탄 집개로 맞는 거 아이가?"

웃자고 한 농담이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신다.

칠순을 코앞에 둔 아빠가 우신다.

아빠의 눈물이 떨어지는 아빠의 손등을 보았다.

검붉은 반점들이  있는 아빠의 손등.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애를 그래 팼을까!"


난 또 울었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아빠의 그 검붉은 반점 때문이었다.

아... 우리 아빠가 많이 늙으셨구나.


이 일화는 내게 청소년 문학상을 주기도 했고. 그리고 나의 수많은 아빠와의 사연 중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보고 싶을 때는 한 번씩 참치캔을 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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