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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라 Dec 28. 2021

미역국과 친정아버지

아빠가 그랬어(6)

1998년 12월 초 어느 날이었다.

집을 마지막으로 떠 났던 것은 1996년이었다.

전국 여행을 3년을 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을 때는 나는 임신을 한 상태였다.

이건 흡사 고스톱으로 치면 자뻑 아닌가!

집 나간 자식이 애를 배어 돌아왔으니, 그 시절에는 동네 소문날까 무서운 사고였다.

집을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집은 친정이 되어 있었다.

물론, 결혼식도 안 올리고 그냥 애 배어 온 내가 친정의 의미를 알겠나.

다행히 올 때는 그냥 온 것도 아니었다. 애 아빠와 함께 왔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실업자.  결혼하자 프러포즈는 했지만 당장 애 분유값도 댈 형편이 아니었던 그 남자.

그 사람에게 영화를 포기시키고  직장을 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하기 위해서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겉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는 안 한다 안카나! 최서방 델꼬 온나. 와서 우리 집에 있다가 적당할 때 봐서

대구에서 일하라 카면 안되나~ 아빠한테는 실업자라는 말 비밀로 할게."


나의 오빠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와 함께 만삭의 몸을 이끌고 대구 오빠 집으로 갔다.

그때 오빠는 올케언니와 식전 동거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새엄마와 함께 근처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고, 나는 그게 오빠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 집이라고 생각했다.

철없었다. 난 결혼을 한 게 아니기에 친정과 시댁도 몰랐기에 그게 마냥 우리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너무 당당하고 떳떳했다.


"아빠야. 아빠 니는 내 애 낳는데 뭐해줄 건데?"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야야. 느그 시댁에서 해줘야지. 친정에서는 그냥 미역국 끓여주고 몸 풀게만 해주면 되지."


더 깊숙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차마 아빠가 충격받을까봐 말을 아꼈다.

그저 가물치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볼멘소리를 하던 어느 날,

아파트에서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아파트 입구에 부녀회에서 진행하는 지역특산품 판매장이 열렸다는 방송.

별 관심 없이 듣다가 시장을 갔다 오는 나는 그곳에  진열된 미역을 보게 되었다.


"아저씨 미역 얼마예요?"

"한각에 십팔 만원요!"


헐~ 무슨 미역이 십팔 만원이나 하지?

내가 그냥 가니, 판매하는 아주머니가 또 소리쳤다.

"새댁, 반각도 팔아~ 구만원~~~"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빠가 왜 미역 사주는 것에 생색을 낸 건지 알았다.

아~ 미역이란 게 비싼 거구나! 하고 생각한 나는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야~ 아파트 입구에 완도특산품 파는데~ 거기 미역 한각 다 사지 마라~~ 반각만 사도 된데이~~

그거 억쑤러 비싸더라~"


내심 아빠를 위한답시고 전화를 한 나는 그날부터 미역이 배달되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빠가 미역을 사놨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베란다며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 이상하다. 그거 클낀데...어디있지?'


오빠와 올케에게도 아빠가 사 둔 미역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봤으나

다들 대답이 시큰둥하다.

어디 있겠지 하고  미역 찾기를 단념한 나는 그날 밤 잠을 자는데

거실에서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하고 나가서 거실의 불을 켜는데, 갑자기 후다닥 거리는 오빠의 모습

그리고 나의 발 밑으로 동그랗게 말린 미역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웃었다.

역시 우리 아빠였다.

평소에도 아빠는 부지런하셨다. 북어포를 찢어 놓거나, 다시마를 잘라놓거나

어릴 때 이혼하시고 홀아비 생활을 하시던 아빠의 살림 솜씨가 웬만한 여자보다 나았다.

아빠는 그 큰 미역을 한번 끓일 만큼 소분해 놓으셨던 것이다.

우리 아빠........

짠하게 웃으며 남산만 한 배를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미역을 잡아 올리는데

미역에는 견출지로 가격이 적혀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흐릿한데... 680원........

그리고 놀라서 오빠를 쳐다보는데 오빠의 손에는 680원 680원 680원 680원 적혀있는 견출지가

다닥다닥하게 붙어 있었다.


멍하게 서 있는 일분 동안 모든 상황이 그려졌다.

대각을 사 올 것이라 믿었던 나, 그리고 아빠가 사 온 시장표 싸구려 미역, 이 상황을 눈치챈 올케가

오빠에게 말했고, 오빠는 나의 성질을 아는 지라 미역에 붙어진 가격표를 떼내고 있었던 것이다.


삐졌다.

난 단단히 토라졌다.

아빠에게 전화해서 불같이 화를 냈고, 집안에 첫 손주를 보는 건데

아무리 내가 사고 쳐서 애 뱄다지만 어떻게 육백 팔 십원 짜리 미역을 사 오냐며 난리를 쳤고

그럼에도 아빠는 당당했다.


"미역이 다 똑같지. 괜히 비싸기만 하지. 니 그거 다 끓여주면 다 먹을 자신 있나!"


그렇게 아빠와 나는 꽤 오랜 시간 냉정기에 이르렀고

일주일이 지나 나는 출산을 했다.

출산을 하자마자 집으로 돌아오니 680원짜리 미역으로 끓인 미역국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거 그 육백팔십 원짜리 미역 이가?"

그러자 아빠가 말하셨다.

"야~ 그래도 소고기는 한우야! "

"그라면 미역국을 끓이지 말고 소고기 국을 끓여놓지 "

"아줌마(새엄마)가 시장 정육점에서 제일 좋은 고기로 사 온 거야. "

"내 지켜볼 거다. 올케가 애 낳으면 어떻게 하는지!"


나의 올케는 오뚜기 미역국을 먹었다.

그러나 후에 알았다. 아빠가 나 몰래 가물치를  해줬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안 나는 그날도 아빠에게 폭풍 화를 냈다.


그 이후로 나는 미역을 살 때면 꽤 좋은 미역으로 산다.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비싼 미역으로 산다.


그렇지만, 내가 아빠한테 서러운 것은 미역 하나인데

나는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아빠 생각을 한다.


"이거 먹어보시고 돌아가시지......"


아빠는 매번 좋은 음식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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