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그랬어 (5)
엄마가 집을 나간 그다음 해였다.
내가 육 학년이 되었고, 아빠의 홀아비 생활은 일 년 차가 되었다.
그 해에는 가난했던 우리 집에 먹을 복이 터졌다. 그 이유는 아빠의 잘생긴 외모 때문이었다.
아빠를 좋아했던 김밥 할머니가 늘, 우리 집으로 남은 김밥을 가져다주셨고, 또 아빠가 좋아했던 이웃집 과부 아주머니 덕분에 우리는 한 달에 두 번은 찜닭을 먹었다.
가난한 우리 집이 찜닭을 자주 먹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근처에서 찜닭집을 하는 아주머니가 예쁘기 때문이란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이 생겼다.
우리 집을 오시는 분은 김밥집 할머니도 아니고, 닭집 아주머니도 아니고 그냥 고향 아줌마였다.
아빠는 그분을 우리에게 처음 소개할 때. 고향 아줌마라고 했다.
그리고 그분은 일주일에 몇 번씩 아빠의 방에서 자고 가셨다.
그분이 집에 자주 오시면서 나에게는 꽤 귀찮은 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설거지였다.
사실, 군인 출신의 아빠는 6시에 기상하고 바로 밥을 드시는 습관 때문에 밥 먹는 시간이 빨라
설거지를 미루는 일이 없지만, 그 당시 내가 관현악단에서 엘토 색소폰을 연주했기 때문에
아침 조회가 있는 날에는 일찍 등교를 했어야 했다.
그런 날에는 설거지를 미루고 바로 등교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아빠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넌 거기 설거지 쌓아두고 가면 아줌마가 오셔서 뭐라고 하겠니?"
"너 방 정리 안 하고 가면 아줌마가 오셔서 뭐라고 하겠니?"
"성자야~~~ 넌 입은 옷을 빨아야지. 쌓아두면 아줌마가 오셔서 일하시잖아!"
사실, 가사는 오빠의 몫도 동생의 몫도 아닌 나의 몫이었기에 그 잔소리를 듣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억울할 수밖에, 거기다가 나는 학교에서 꽤 많은 클럽활동을 하고 있었다.
악대부에서 엘토 색소폰, 교내 합창부, 거기다가 아주 가끔 있는 과학발명대회, 사생대회. 백일장
일 년 동안, 내가 받은 상장만 해도 열개는 넘었기에 난 아주 바쁜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거기에 살림까지 맡아했어야 하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날도, 아빠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아빠에게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을 뱉었다.
"그러면 그 아줌마 오지 마라 카면 되잖아!!! 난 그 아줌마 오는 거 싫어. 아빠는 맨날 나한테만 잔소리하고!"
그 말이 끝나고 나서 나는 쫄았다.
분명 혹독한 매질, 혹은 내가 뱉은 말보다 더한 말들이 와야 하는데......
아빠는 아무 말씀을 안 하시고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아빠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야단칠 것 같은 불안감에 떨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빠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나는 잠이 들었고, 그다음 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고 하는데 아빠가 나를 부르셨다.
"성자야. 설거지는 아빠가 할 게. 잠깐 와 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맘으로 아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런데 아빠는 화를 내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성자야. 작년에 아빠가 엄마 나가고 많이 힘들어서 통장들이랑 같이 실비집을 갔어. 그런데 거기서 일하는 아가씨가 있는데 그 아가씨 팁을 오만 원을 줬어.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방문을 열어보니까
너네 삼 남매가 담요를 덮고 자고 있더라. 저 새끼들 내일 아침에 아빠 백 원만 해도 내가 성질부터 낼 텐데
내가 분 냄새 맡으려고 오만 원을 쓰고 왔다는 죄책감에 그날 밤 아빠가 많이 울었어. 성자야. 아빠가 환갑이 되었는데 그래도 남자더라."
내 나이 열세 살, 나는 그 말이 뭔지 알았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아빠 맘이 어떨지도 알았다.
처음이었다. 아빠가 내게 그런 속내를 이야기한 것이.
그리고 그때 다짐했다. 절대로 아줌마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하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그리고 호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우리가 아줌마라고 말했던 그분을
우리는 스무 살이 되어서 어머니라고 불렀고, 그리고 그분이 아버지의 마지막 여자가 되셔서
십 년간 아빠의 병시중을 드신 분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쓰는 대본에 멋진 할머니 역이 있을 때마다
그 역의 이름을 '백청자'라고 짓는다.
아버지 살아생전 나는 농처럼 말했다.
"아빠는 여복이 많은 거 알고 있제? 결혼해준 여자 따로, 자식 낳아준 여자 따로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랑해주는 여자 따로. 얼마나 여복이 많노! 어머니한테 잘해라~"
그러면, 그분은 꼭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복이 많은 거지. 아버지 같은 분 만나서 늘그막에 사랑받고 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