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드름과 자매

#디카시


#디카시 2편


고드름

처마 끝에 매달린

초록빛 고드름

그 겨울, 엄마는 햇살도 말리셨지


숨죽인 바람 사이

툭, 소리 내며 녹아내린다


- 왕나경


~~~~~~~~~~



자매


나란히 핀

큰언니, 작은언니, 그리고 나


정화는

저 너머,

보이지 않는 꽃으로 피었지


– 왕나경

~~~~~~~~~~~~~~



시작 노트


이 디카시에 실린 「고드름」과 「자매」는 나의 삶의 가장 뿌리 깊은 기억, '어머니'와 '큰언니, 작은언니, 여동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겨울, 처마 밑에 매달린 시래기, 고드름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바람마저 숨죽인 날, 햇살도 아껴 말리시던 어머니. 고드름처럼 투명한 사랑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픈 것이었는지 이제야, 그 고드름이 녹으며 소리 내는 순간이다. 그건 어머니의 눈물이며, 내 가슴 속에 스며든 사랑의 체온이다.


그리고 나란히 피어난 세 송이 꽃처럼 살아가는 우리 자매. 큰언니, 작은언니, 그리고 나. 그 곁에 언제나 함께 있었던 동생 정화는 이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마음 안에서 함께 있다.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매해 봄이면 가만히 피어나 우리 곁에 함께 하는 꽃이다.


「고드름」은 어머니의 계절을, 「자매」는 우리 자매의 이야기와 또 하나의 봄이다. 이 두 편의 디카시는 따로이 존재하지만, 결국 하나의 기억에서 출발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끝내 사랑으로 피어나는 순간. 그 조용한 떨림이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도 닿기를 소망한다.


– 왕나경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나무 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