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네카와 고타로, 바람의 도시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추석이 끝난지도 얼마안되었는데 행사가 있어 2주만에 다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하루하고도 한나절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함께 다녀온 제 동반자에게는 다르게 느껴졌었나봅니다.
"이제 내 속에서 그 오래된 이야기는 끝이 났어.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네."
깊어진 눈으로 조용조용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있자니 문득 "긴 여정의 끝"이라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은 글을 쓰거나 읽으실 때 크게 숨을 들이마시게 하는 단어, 유독 시선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이미지가 있으신가요? 제게는 "길"이란 단어가 그렇습니다. 쭉 뻗어있는 대로가 아니라 어슴푸레 안개 뒤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 어디로 이어져있는지 알수 없는 좁디좁은 골목길의 이미지가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이틑날, 글 앞에 앉으니 문득 오래전 읽었던 「야시」라는 소설집 속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도시, 평범한 도로 한 곁에 숨겨진 길을 경계로 두 세계가 나뉘어있는 "바람의 도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기묘하고도 쓸쓸한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이것은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변화도 없고 극복도 하지 않는다.
길은 교차하고 계속 갈라져나간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제가 얼마전까지 보아온 길은 이렇게 끝없이 갈라져나가는 미로였습니다. 선택의 결과가 두려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며 가시밭이든 구렁텅이든 그저 걷다가 길 끝에서야 떠밀리듯 다음 길을 고르는 고행을 반복하는 길이었죠.
그러다 정말 운좋게도 함께 할 이를 만나 새로운 길을 함께 걷게 되었습니다. 거침없이 길을 헤쳐나가는 그 이를 보며 우물쭈물 망설이는 저와는 다른 모습에 경탄해왔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미로에서 헤메는 때가 있나봅니다. 아내는 나직히 이야기 하더군요. 길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느낄 때, 그 누구도, 가장 가까운 이조차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느낄 때, 어린시절 맞닥뜨려야했던,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이 다시 밀려왔었다고 말이죠.
출구없는 미로를 헤맬때면 증오가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이 미로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은 자들을 찾아 헤매입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힘겨운 순간, 지금이 막다른 길끝이라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 닥치면 오래전 끊어진 어두운 길 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분노와 두려움에 가득차 울부짖고 있는 아이, 누구도 돌보지 않는 조그마한 아이.
이 아이의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까요? 오래된 미로의 끝은 어디인지, 아내가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 저는 고개만 끄덕일뿐 다 알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는 "돌아보면 다 작디작은 것들이었어."라고 말한 후 잠시 침묵에 잠겼고 우리의 대화는 곧 마무리되었죠. 하지만 아내의 고요한 침묵을 곱씹다보니 이성복 시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한여름 세찬 바람 그치고, 피로 덮힌 마당을 보니, 모두 꽃들이었다는군요. 불을 뿜어대던 억세던 꽃들 또한 바람 앞에 떨어져나가는 한송이 여린 꽃이었을 뿐.
"바람의 도시"의 주인공은 오래된 그 길을 성장도, 변화도, 극복도 없는 영원한 미로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길을 보았고, 걸었고, 그리고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오래된 어두운 길을 담담히 바라보는 그 자리에서, 어린 자신을 가만히 안아주는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겠죠.
그럼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