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우 Sep 26. 2021

이야기가 우리에게 닿는다는 것은

존 윌리엄스, 스토너를 읽고

1. 소네트가 노래하는 풍경 둘    


어느새 여름이 끝나고 수확의 잔치날인 한가위도 지나갔네요. 긴 듯 짧았던 여름을 돌아보며 『봄에 나는 없었다』에서 처음 알게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구절을 떠올려봅니다.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퇴색하지 않으리.     


 책 속에선 이 한구절만 인용되어있기에 전체 시를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154편의 소네트 중 가장 많이 인용된다는 사랑스러운 소네트 18을 함께 감상해보실까요?     


소네트 18     


그대를 내 여름날에 비할까요?

그대는 그보다 더 사랑스럽고 온유합니다.

거친 바람이 오월의 사랑스러운 꽃망울 흔드는

여름 한철 너무나 짧습니다.

하늘의 눈 때로 너무 뜨겁게 빛나고

그 황금빛 번번히 흐려지지요.

아름다운 것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움 속에서 이울고

우연이나 자연의 주기 속에서 장식 벗는 법.

허나 장차 영원한 시행 속에서 그대 시간의 일부가 될 때

그대 그 영원한 여름 시들지 않고

그대 그 아름다움 잃지 않을 것이요,

죽음도 그대 제 그늘 속 헤맨다고 뻐기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숨 쉬고 눈이 볼 수 있는 한 오래도록

이 시 살아서 그대에게 생명 줄 것입니다.     


 시들지 않는 영원한 여름이라니! 위대한 시인이 시행 속에 한땀한땀 공들여 새겨놓으려했던, 화사하고 싱그러운 젊음의 숨결이 느껴지시나요? 여름은 이렇듯 타오르는 청춘의 계절이자 영원을 꿈꾸게 되는 계절입니다.     


 하지만 어떤 아름다움도 이울어가죠. 때가 되면 바뀌는 자연의 주기처럼 시간에 퇴적되어 처음의 신비로움을 잃은채 바래져갑니다. 하지만 스러져가기에 더 강렬하게 깨닫게되는 사랑이 있습니다. 영원한 여름을 노래하던 시인이 전혀 다른 어조로 읊조리는 장중한 비가를 함께 들어보시죠.     


소네트 73     


한 해 중 그런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보리라,

전엔 예쁜 새들이 노래했지만 이젠 황폐한 성가대석,

추위를 견디며 흔들리는 그 가지들 위에

누런 잎들 하나 없거나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계절을.

내게서 그대는 보리라, 해가 진 후

서녘에서 스러지는 그런 날의 황혼을,

만물을 휴식 속에 밀봉해버리는 죽음의 분신인

시커먼 밤이 조금씩 앗아가는 황혼을.

내게서 그대는 보리라, 불타오르게 해준 것에

다 태워져, 꺼질 수밖에 없는

임종의 자리처럼, 제 젊음의 재 위에

누워 있는 그런 불의 희미한 가물거림을.

그대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 사랑 더 강해져,

그대가 머지않아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과거에서 미래로 끊임없이 흐르던 생각의 물결이 멈추고 삶이 자신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순간. 자신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삶을 새로이 보게 되는 순간. 『스토너』 라는 책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에게는 이 소네트를 듣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소네트가 끝나고 스토너가 숨을 멈춘채 바라보던 풍경은, 마치 시인의 시처럼 제 시간의 일부로 새겨졌습니다.  

   

 네, 이번에 이야기할 책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께는 몇년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책이기도 하죠. 이미 읽으신 분이라면 늦은 편지의 변명으로 제가 슬그머니 내밀어보는 신형철 평론가의 다음 한마디가 공감이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 제대로 시작할 수조차 없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해보려합니다. 제게 이 이야기가 어떻게 도착하게 되었는지 짚어보는 걸로 말이죠.     


2. 이야기가 우리에게 닿는다는 것은     


 영문학 교수이자 작가인 존 윌리엄스는 평생 네 권의 소설을 썼습니다. 그 중 세번째 소설인 『스토너』 는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당시 책의 출간소식은 단 한 곳의 매체에서만 단신으로 다뤄졌고, 초판 2000부를 다 팔지 못한채 이듬해 절판되었습니다. 작가는 1972년 한 권의 소설을 더 낸 후 1994년, 숨을 거둡니다. 작가가 살아있을 때에도 소위 "핫"한 화제가 되지 못했던 이 책은 다른 많은 책들이 그러하듯 레테의 도도한 물결을 따라 흘러가버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출간으로부터 50년, 작가의 사후 20년이 지나 이 이야기는 망각의 강을 거슬러올라와 사람들에게 다시 회자되기 시작합니다. 소수의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다가 '당신이 들어본 적 없는 최고의 소설'이라는 평론가의 극찬을 받으며 미국에서, 유럽에서,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다시 출간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출간되었고, 작년에는 절판된 초판본의 디자인을 복각한 『스토너 초판본』 까지 나오게 되죠.     


 저는 이 이야기를 작년에 전자책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책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감정이 스물스물 올라오던 때였죠. 공간과 비용의 제약 속에서 더 많은 책들을 보려 욕심을 부리다보니 그 전까지 막연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전자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대형 오프라인 서점과 온라인 서점들이 경쟁적으로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것저것 따져가며 한참을 고민하던 중 대학시절 도서관 구석에 박혀서 읽던 책 – 중세 독일의 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대한 책 - 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런 책도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검색해보니 그런 책도 구독 서비스에 포함되어 있는 곳이 한군데 있더군요! 저는 곧바로 그 서비스를 구독했습니다. 하지만 난삽한 해설의 오래전 책은 쨍한 화면으로 읽어도 여전히 오리무중인데다,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슬그머니 구독 서비스 목록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게다가 정작 제가 글에서 다루고자 했던 예전 추억 속의 책들은 구독서비스에서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그렇지만 기대가득 야심차게 시작한 전자책 라이프이기에 한동안은 열정적으로 주제별 책들을 샅샅히 흝어가며 욕심껏 책들을 주워담았습니다. 소설에 인문서에 심리학, 과학, 몇권 안되는 만화까지, 책목록은 하염없이 늘어나는데 첫페이지를 클릭해보는 책조차 한주에 한두권으로 점점 줄어가고, 전자책 어플을 볼 때마다 무게없는 책들에 짓눌려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 읽어야겠다는 실현불가능한 과욕을 버리니 그나마 숨통이 틔이더군요. 이후로 어떤 책들이 구독제로 나올까 하는 호기심으로 드문드문 전자책의 작은 연못을 어슬렁거리게 되었습니다. 흘끗 들려서 위로, 아래로, 오른쪽으로, 다음화면으로, 이전화면으로, 목적없이 배회하던 화면 한 구석에서 어느날 저는 한 얼굴을 만났습니다. 하얀 바탕 가운데 흑색 스케치로 그려진, 그 얼굴의 절반은 책들로 가려진 한 남자의 얼굴. 작은 눈과 꾹 다문 입술선이 어쩐지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얼굴은 저를 화면 속으로, 오래 끈질기게 이어져온 이야기 속으로 잡아 당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소수의 대학원생들과 눈밝은 독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져 내려오던 이야기를, 누구보다 고집스러우면서도 한없이 섬세하고 열정적이던 한 남자의 일생을 만나게 된 것이죠.     


 오랜 시간에도 바래지 않고, 간절히 지켜온 이들 사이로 면면히 이어져와 결국에는 누구나 상찬을 마지않는 고전의 위치에 오른 책이라 할지라도, 다시 우리에게 와닿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연이, 또는 필연이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책을 어떤 시간에 우리가 읽는다는 것은, 그리하여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닿는다는 것은, 수없이 흩어져있는 뾰족한 바늘귀들을 뚫고 나온 가느다란 한가닥 실과 같은 확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사키 아타루라는 일본 철학자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에서 닷새에 걸쳐 책과 혁명을 이야기합니다. 그 닷새의 마지막 날, 문학의 종말을 떠들어대는 이들에게 철학자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사상 견줄 것이 없는 걸작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최종부인 제 4부가 몇 권이나 배포되었는지 아십니까? 출판사의 버림을 받아 자비로 40부를 찍었고 7부만 지인에게 보냈습니다. 세계에서 단 7부입니다.

 그렇다면 니체는 패배했을까요? 진 걸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런 건 인정할 수 없습니다.     


 『스토너』 또한 2000부도 팔리지 않은 채로 절판되고, 작가는 조용히 삶을 마쳤지만 존 윌리엄스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스토너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스토너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를 잊지 않고 계속 읽고 이야기해왔기에 55년을 뛰어넘어 그의 이야기가 제게 들려왔습니다. 제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이야기가 인식된 우연과 인식되지 않은 필연을 거쳐 제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여러분께 다시 이야기를 이어갈 수 밖에 없게 되었네요. 제가 들은 이야기가 마치 제 이야기인 마냥 이리저리 부풀려가며 뾰족한 바늘귀를 한껏 여러분께 돌려 어떻게든 실이 통과해 이어져나가도록 말이죠.     


 그럼 다음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참고도서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집(박우수 역), 열린책들, 2011 (소네트 18 인용)

2. 영국 대표시선집(윤준 엮고 옮김), 실천문학사, 2016 (소네트 73 인용)

3. 존 윌리엄스, 스토너(김승욱 역), 알에이치코리아, 2015

4.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송태욱 역), 자음과 모음, 2012

이전 12화 개인의 성찰이 부딪치는 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