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우 Sep 08. 2021

낯선 길을 방황하며 똑바로 나아가다

- 후루야 미노루, 크레이지 군단을 읽고

 오늘은 후루야 미노루의 『크레이지 군단』 이라는 만화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작가인 후루야 미노루는 『이나중 탁구부』라는 꽤나 엽기적인 개그만화로 유명세를 탄 만화가입니다. 『크레이지 군단』은 작가의 두번째 연재작으로 일본어 원제는 ”나와 함께“라는 서정적인 제목입니다. 1997~1998년 동안 연재된 작품이죠. 이후 작풍을 바꾸어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한없이 가벼운 개그 속에 진지함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이 제게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1. 낙오된 이들성적 환상과 암울한 현실의 사이에서 방황하다     


 이야기는 중학생과 초등학생 형제가 집을 나와 아무 연고도 없는 도쿄로 상경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후, 무릎끓고 앉아있는 형제에게 새아버지가 이렇게 이야기하죠.     


 너희들이 대신 죽어줬으면 좋았을 걸.     


 스구오와 이쿠오, 두 형제는 그 길로 집을 나와 뜬금없이 도쿄의 우에노 동물원으로 향합니다. 그 곳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형 또래의 이토킹이라는 친구를 만나게되죠. 이후는, 엉망진창입니다. 신너를 불며 거리를 떠돌던 이토킹에게 휩쓸려 어설프게 매춘을 시도하기도 하고, 어찌저찌 눌러앉게된 이발사의 집에서도 군식구가 되어 밥만 축낼 뿐입니다. 8수를 지나 9수를 하는 수험생에, 왕따 초등학생에, 주변도 온통 낙오된 이들입니다. 스구오와 이토킹은 사춘기의 왕성한 성적 욕망에 이끌려 말도 안되는 일들을 벌이다가도, 이 평범한 일상이 실은 이발사 가족의 호의에 기대어 있는 것이기에 여기서도 떠나야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를 반복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낄낄거리다가 읽어나갈수록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거침없이 선을 넘어가는 성적 판타지도, 떠들석하게 벌이는 엉뚱한 사고들도, 실은 마음 둘 곳 없는 사춘기 중학생이 답답한 현실을 잊어보려 치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책이라는 환상 속으로 도망쳤던 것처럼 스구오는 거칠지만 한없이 순수한 이토킹이라는 친구가 이끄는 성적 환상 속으로 도피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스구오에게는 책임져야할 아홉살짜리 동생, 이쿠오가 있습니다. 아무리 도망치고 싶어도 다시 가혹한 현실로 돌아와 동생을 지켜야하지요.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을 그는 기꺼이 지고 가려합니다.    

 

2. 가족이란 무엇인가또는 진정한 가족이란?     


 여러분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요? 모성이라는 신화에 언젠가부터 여성들이 갇힌 것처럼, 가족 또한 하나의 신화가 되어 구성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하니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21』이란 책을 대학 철학 강의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전 읽은 책이라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일왕의 전쟁책임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면서 자유의지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처럼 책임지는 것이 그 진정한 의미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족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있지요. 어떤 부모들은 자신의 의지로 아이를 선택했다고 자식을 소유물처럼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부모들은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생겼다며 자신의 인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자식을 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낳고싶다해도 아이가 찾아오리라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온다고 해도 어떤 아이가 올지는 역시 선택할 수 없죠. 불임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부부도 많을 뿐더러 아이를 가진다해도 성격은 커녕 성별조차 결정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이 또한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원하지 않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책임이 과연 아이에게 있을까요? 태어난 아이에게 부모의 인생을 저당잡힌 것처럼 군다면 그것은 아이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일까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입장만을 강요하며 마땅히 져야할 책임은 지지않는다면 가족이란 미명은 서로에게 족쇄가 될 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족쇄로 여기기에 아이를 학대하고 심지어 버리는 사건들이 매스컴에 심심치않게 오르내립니다. 스구오와 이쿠오의 양아버지가 어머니를 막 잃은 형제를 마치 주인잃은 물건처럼 팽개쳐버리듯이 말이죠. 반면에 딸인 아야코 때문에 우연히 세 가출청소년을 맡게 된 이발사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결코 그들을 내치지 않습니다. 딸과 둘만 있던 쓸쓸한 공간이 활기넘치는 공간이 된 것을 오히려 기뻐하지요. 스구오와 이토킹에게 이발기술을 가르쳐주고 이쿠오를 학교에 보내며 뒷바라지를 해줍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이미 가족이었던 듯이 일상을 함께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책임지려 합니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란 영화에서도 문소리가 연기한 누이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혈육인 동생보다는 오히려 그 동생이 팽개치고 간 나이많은 여인과 일상을 함께 하며 진정한 가족이 되어갑니다. 두 이야기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진정한 가족의 핵심은, 선택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인연을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책임지는 삶이지 않을까요?     


다시 두 형제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발사가 세 가출청소년을 최선을 다해 보살피듯 스구오 또한 어린 동생을 최선을 다해 책임지려 합니다. 자신들이 아야코네 생계에 짐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떠나려다가 이별을 아쉬워하는 동생을 보고는 이토킹만을 데리고 몰래 떠납니다. 단 하나남은 혈육을 두고 떠나기싫지만 동생을 위해 자기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죠. 하지만 아야코에게서 동생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질주하듯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결심합니다.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너무나도 싫어하는 새아버지와 다시 대결하기로 말입니다. 새아버지와 사고뭉치 크레이지 군단의 대결이 네 권으로 이루어진 만화의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그렇지만 결말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만화에 얽힌 제 이야기를 잠시 들려드리고 싶네요.     


3. 방황하는 벗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제가 이 만화를 읽던 즈음(10년도 한참 지났네요), 제 주변에 삶을 무척 힘들어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로 방황하는 모습을 저는 꽤 오래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화도, 함께 있는 것도 그 친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야기도 가슴에 닿지 않고 그저 귓가를 맴돌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도돌이표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 대화에 지친 저는 벗에게 이 “크레이지 군단”의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강권하듯 빌려주었습니다. 미처 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채, 글을 읽기도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몇번이고 읽어보라고, 읽어봤냐고 닥달하던 기억에 부끄럽고 미안해지네요. 지금에야 다시 그때를 떠올리며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해봅니다.   

  

 가장 먼저 저는 친구가 그저 아무생각 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너저분한 화장실 개그를 보며 어이없는 너털웃음이라도 터트리길 바랐습니다. 웃음 뒤에 씁쓸함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나더라도,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조차, 삶의 가장 바닥에서조차 웃을 수 있다고, 너도 그렇다고, 아무도 너의 웃을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삶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 꼭 어떤 가치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좀 더 엉망진창 제멋대로여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걸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크레이지 군단의 엉망진창 제멋대로인 구성원들이 애처럽고 결함투성이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것처럼, 완벽하지 않고 지금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너도 사랑스럽다는 닭살돋는 멘트와 함께 말이죠.     


 그래서 결국 우리는, 어디에도 쓸모없이 그저 방황하고 있을 뿐인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는, 자신만의 길로 흔들리면서도 똑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몹시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스구오가 동생 이쿠오를 두고 감행한 여행에서 이렇게 담담히 읊조리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낯선 길을 방황하며 똑바로 나아갔다.     


그럼 이야기의 마무리는 다시 마지막 에피소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4.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스구오와 이쿠오는 이토킹과 함께 1년 만에 가출했던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곳에는     


"나랑 형이... 이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제일 무서워하는 인간이... 한 사람이 있어..."     


라고 동생 이쿠오가 이야기하는, 새아버지가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돌아간 걸가요? 어떻게 그 두려운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히말라야 등반기를 볼때면 항상 베이스켐프가 등장합니다. 정상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든든한 베이스 켐프가 필수입니다. 그 곳에서 대원들은 식량을 준비하고 고도적응 훈련을 하고, 악천후를 견디며 끈질기게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물러나기를 반복합니다. 크레이지 군단의 청춘들에게도 가출한 1년은 든든한 베이스켐프를 짓는 시기였습니다. 단둘이서 떠밀리듯 가출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이토킹이라는 친구를 보듬어주고 아야코네 가족과 새로운 관계를 쌓아갑니다. 스구오는 꿈인 야구선수를 목표로 매일매일 스윙연습을 멈추지 않죠.     


 그렇게 그들은 불가능해보이는 자신들의 과제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도망쳐나온 곳으로 돌아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지요. 소리치는 것 밖에 아직 할 수 없지만 두려움을 당당히 마주할 힘이 그들에게 생겼습니다. 실패를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이제 돌아갈 베이스 켐프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베이스켐프에서 다시 등반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네요. 그럼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참고도서      

1. 후루야 미노루, 크레이지 군단(김창헌 역), 서울문화사, 2006

2. 가라타니 고진, 윤리21(송태욱 역), 사회평론, 2002


        



이전 10화 뒤늦게 찾아온, 단 두 문장의 의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