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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추구하는 의미주의자

by June H


브런치스토리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사람은 경험주의자의미주의자로 나누어볼 수 있다고.


그 글에서 글쓴이는 경험주의자에 대하여 순간순간의 좋은 경험을 수집하는 것을 선호하며, 폭넓은 분야를 다양하게 경험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의미주의자에 대해서는 이미 일어난 일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경계하여, 이를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해 보자면, 성향에 따라서 사람은 경험주의자에 가까울 수 있고, 혹은 의미주의자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나는 의미주의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의미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긴 한데, 그렇다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의식적인 에너지를 쏟지는 않는, 한 마디로 수동적인 의미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경험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그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겪게 되는 단편적인 사건들에 대하여 가끔씩 그리고 저절로 떠오르는 의미들을 곱씹어 보는 정도였다.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 나의 본모습을 아는 친한 친구들이 나에게 너는 좀 생각 없이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내 모습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들여다보니 그들의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지근한 의미주의자의 모습은 그렇게 비추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





의미는 곧 무언가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의미는 곧 무언가에 대한 나의 풀이이다.

의미는 곧 무언가에 대한 나의 가설이다.



의미를 찾지 않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뚜렷한 주관이 없는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의미주의자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의미를 찾기 위해 의식적인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주의자의 모습은 아마 이럴 것이다.


열심히 의미들을 찾아서

하나 둘 쌓으며 주관을 만들고,

그 주관을 더욱 견고히 함으로써,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을 선명하게 느끼면서

삶의 흐름을 하나의 서사로 엮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런 생각에 도달하기까지도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사춘기에 떠올랐던 수많은 의문들에 대해서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에서라도 이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경험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된 것 같다. 왜냐하면, 의미주의자로서 반복적인 일상을 의식적으로 세심하게 살펴봄으로써 의미를 찾는 것도 필요하고 또 중요하지만, 하나의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을 통해 여러 가지의 의미들을 연달아 찾아낼 수 있으므로 시간 대비 매우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경험을 추구하는 의미주의자이다. 내가 느낀 바로 경험은 즉각적이고 의미는 한참 뒤에야 도착한다. 비유하자면 경험은 번개와 같고, 의미는 천둥과 같다. 경험을 추구하는 의미주의자란 경험으로부터 뒤늦게 도착하는 의미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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