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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그리고 나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브라이언 키팅

by June H


#1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9인의 공통점


노벨상에 거의 근접했던 저자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9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를 읽고 호기심이라는 그 한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그토록 말도 안 되는 어려운 주제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것을 가까스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호기심일 것이다. 길고 긴 과정 속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겠지만 그 과정의 처음과 또 다른 시작까지 호기심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2


호기심은 무엇일까?


호기심이란 사전적으로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뜻한다. 즉 무언가에 대하여 전과는 다르게 봄으로써 생기 있고 산뜻한 기분을 느끼고자 하는 것, 믿을 수 없이 색다르고 놀라운 대상 그 자체를 즐기고 싶어 하는 것,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 대상에 대하여 의식이나 감각을 통해 깨닫고자 하는 것을 뜻한다.


나에게 호기심이란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하여 '왜'라는 질문으로 표현되는 의구심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의구심에 대하여 스스로 답을 내리는 과정을 거쳐 그것이 해결되면서 호기심으로 발전되는 식이다. 비유하자면, 의구심은 마음속에 떠오른 씨앗, 그것을 마음속에 품고 해결하는 과정은 씨앗을 키우는 물과 햇빛, 호기심은 그 결과로써 자라난 싹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항상 의구심이 발전된 형태로 호기심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 경우 그 빈도 수가 매우 적다.


그리고 그렇게 의구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든, 그 자체로 떠오른 것이든지 간에 어떤 대상에 대하여 한 번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것이 또 다른 호기심으로 형태를 바꾸면서 계속하여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맥락에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한 일들 또한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하게 되는 지속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해야 하는 일들에 의해 우선순위가 밀려날 때도 있고, 어떤 특정 시기에는 여건이 되지 않아 아예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결국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취미라는 카테고리에 담아두고서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어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쓰기도 그러하다. 내가 처음 글쓰기에 대하여 호기심을 느꼈던 순간은 중학교 2학년 국어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날, 국어 선생님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쓴 시를 엮어 시집을 출판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종이 한 장을 나누어주셨다. 그리고 그 종이에 어떤 주제도 좋으니까 솔직한 마음을 담아 자유시 한 편을 지어 제출하라고 하셨다. 다른 무엇보다도 학교 생활과 학업에 대하여 염세적인, 보통의 중학생이었던 나는 학교생활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솔직하고 가감 없이 시에 모조리 담아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글쓰기의 특별함을 발견했고, 그것이 글쓰기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글쓰기는 나에게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작품 속 이름을 부르는 행위와 같았다. 존재함을 느낄 수 있지만 이름을 몰라 부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서툴지만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것이 내가 느낀 글쓰기의 하나의 정의이자 글쓰기의 특별한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조만간 그 주제만 가지고 글을 써볼 생각이다.





#3


호기심을 따르는 삶


애덤이 말한 어린 시절의 호기심은 나를 움직인 것이기도 했다. 야심에만 이끌린다면 끊임없이 외부에 확인과 승인을 바라게 된다. 반면에 호기심은 스스로 강화하는 힘이 있고,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한 사람의 호기심은 독자적인 것으로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속하며 그 사람을 드높은 성취로 이끄는 탁월한 연료다. 호기심을 따른다는 것은 곧 자기 본질을 삶의 중심에 놓겠다고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기심을 따르는 삶이 일자리를 보장해 주지는 않지만, 외부의 칭찬에 끊임없이 의존하는 삶보다는 덜 지치고 더 지속 가능하다. (P.37)


호기심은 독자적인 것으로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속한다. 호기심의 대상을 부르고, 호기심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호기심이 찾아오는 순간을 만끽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리고 호기심을 통해 확장된 나를 알아차리는 것도 나 자신이다. 따라서 호기심을 따르는 삶은 곧 자기 본질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매우 주도적인 삶인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삶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절대 넘볼 수 없는 물리학자들의 직업적 특권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끊임없이 호기심이 이어지는 삶. 그런 삶을 살아보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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