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날카로움
지난 9월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으면서만 100페이지가 넘어 산페르민 축제 대목을 읽기까지 이전에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팜플로나에서 축제를 즐기는 장면을 접하면서 옛 기억이 가물가물 되살아 났고 독서 기록을 확인한 결과 2년 전에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작가에 대한 미안함과 내 기억의 한계에 실망했다.
어제저녁 스마트폰에 뜬 뉴스를 통해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가운 마음에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책장에서 꺼내보니 최근에 읽었을 거라는 확신과는 달리 2016년에 이 책들을 읽었다.
한 작가의 작품은 오래전에 읽었을 것이라 여겼지만 2년 전이었고 다른 작가의 작품은 최근에 읽었을 것이라 여겨졌지만 8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을 생각하면 삶의 무게가 느껴져 고통스럽다.
이런 고통이 찾아오는 이유는 그의 작품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을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리면 꽉 막히고 얽힌 삶의 먹먹함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의 작품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악령> 등이 뇌리에 깊이 남아 있기 때문 일 것이다.
한강의 이미지는 날카로운 칼에 상처를 받을 것 같아 무섭다.
그의 작품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의 영향 때문인 일 것이다.
좋은 작품을 읽고도 줄거리나 주인공의 이름조차 잊는 기억력의 한계에 실망하지만, 이 기억력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작가들의 작품이 나의 의식 속에 남아 내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그의 책 두 권을 찾아 왜 내가 이 작가를 그토록 무섭게 여기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그리고 2024년 10월 10일, 오늘을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