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몽과 와인 페어링

by 산내

스페인에서는 먼 과거부터 돼지를 잡아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대비했다. 돼지 살을 갈아 내장에 속을 채운 후 염장시켜 소시지 형태의 살치촌과 초리조를 만들었고, 돼지 피를 굳혀서 모르실라라는 블러드 소시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스페인 미식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샤퀴테리가 바로 하몽이다. 돼지 뒷다리를 엄장한 후 수개월간 건조해서 만드는데, 숙성한 돼지 지방의 고소함, 짭조름함이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어서 와인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하몽'이라는 단어에 무언가 몽글몽글하고 이국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하몽은 스페인어로 햄 혹은 돼지 뒷다리 고기를 뜻한다.

이론상으로는 돼지 뒷다리, 소금, 시간만 있으면 만들 수 있으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조 공정이 매우 까다롭고 고되다.

우선 돼지 뒷다리를 7~10일 동안 바다 소금으로 덮어서 보관한다.

이후 염장실에서 염장을 하는데 0-3 C 온도와 85~95%의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염장이 완료되면 뒷다리를 소금에서 빼내고 미지근한 물로 표면을 깔끔하게 세척한 뒤 숙성실로 옮긴다.

숙성실의 환경 또한 마찬가지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며, 3~6°C의 온도와 80-90%의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1~2개월간 숙성을 통해 염장에 사용되었던 소금이 고기 내부의 조직으로 침투하게 되면 수분이 날아가 중량이 줄어들면서 하몽을 오랜 시간 보관할 수 있게 된다.

숙성 이후 하몽은 세카데로라고 부르는 건조실에서 자연 건조를 거친다.

이 기간 동안 하몽은 조금씩 수분을 잃고 중량이 줄어든다.

가장 대중적인 하몽 세라는 6~12개월의 건조 기간을 거친다.
그리고 최상급인 하몽인 이베리코는 2년 이상의 건조 기간이 필수로 요구된다. 일부 최고급 하몽의 경우 4~5년의 숙성을 거치기도 한다.

하몽 이베리코는 높은 등급 순으로 블랙, 레드, 그린, 화이트 레이블로 나뉜다.
최고 등급인 하몽 이베리코 베요타는 블랙 레이블과 레드 레이블로 나뉜다. 여기서 베요타는 도토리를 뜻한다.

블랙과 레드의 재료가 되는 흑돼지는 반드시 17개월 이상 키워야 하는데, 포인트는 마지막 3~4개월을 데헤사라고 부르는 참나무 목초지에서 방목시켜서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흑돼지들은 자유를 만끽하며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먹고 자라 아름다운 마블링과 고소한 육질을 얻게 된다.

마치 와인 등급처럼 세분화된 하몽 등급을 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수겠지만, 맛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미식가들은 세계 3대 진미인 캐비어, 트러플, 푸아그라에 하몽 이베리코 베요타를 더해 세계 4대 진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듯 하몽은 돼지를 사육하는 방식, 사료의 종류, 혈통, 숙성과 건조 기간에 따라 그 맛이 모두 다르다.

와인과는 환상의 짝꿍인데, 개인적으로 하몽은 거의 모든 레드 와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스페인의 대표 적포도 품종인 템프라니요로 만든 레드 와인은 최고의 선택이다.
만약 화이트 와인에 매칭하고 싶다면, 달콤한 멜론에 하몽을 감아서 '하몽 멜론'을 만들어 먹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에 비오니에 품종의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다면 와인의 복숭아, 살구 등의 풍미와 입안을 둥글게 감싸는 두툼한 질감이 달콤 짭조름한 하몽 멜론과 잘 어울린다.

산내로고.png


이전 21화상상력을 자극하는 미스터리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