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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책상

by 레이

IT 회사를 그만 두던 날의 책상이다.

정신이 혼미해졌던 아침이었고 대표는 생각나는 대로 일을 시키고 만만찮은 업무량으로 과부하가 걸린 아침.

업무메신저가 떴는데 타임라인으로 주간업무보고를 올리라고 한다. 타임라인 만들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허겁지겁 업무 하나를 마치면 새로 주어지는 일은 타 부서의 일까지 떠 맡기고 어느 소속인지도 모른채

맡겨진 일을 하나같이 급하다고 던져준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책상에 일은 쌓이는데 손에 잡히는건 없고,

결국 나는 이카운트 사직서를 작성하고 있다. 나의 머리는 한계가 온 것이다. 이런 것도 척척

아무렇지 않게 척척 느긋하게 과장이 그러든지 말든지 대표가 그러든지 말든지

최대한 느긋하게 멘탈이 강해야 했는데 아쉽다.

그 날 아침의 책상을 보니 재미가 있다. 출판부서의 미얏이 가져다 둔 귤 두개가 있다.

점심을 먹고 바로 올라와서 국민체조를 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이카운트를 작성했다.




우리의 밤 낮은 일에서 끊임 없이 넘쳐난다.

오후 6시가 되기를 학수고대 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빈 박스에 담겨지는 6개월의 흔적들. 단단히 마음을 먹었던 입사 첫 날의 설레임.

나이 들어서 가져보는 첫 직장.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사람들이 바뀌는데 나는 6개월을 채운것이다.

기업이 기업이기 위해 직원들을 혹사시키고, 누구도 군말없게 입을 다물게 하고 실적과 성과만을 위해

한 몸을 바쳐야 하는 중소기업의 실체이다. 젋은 남자과장이 죽었다. 몇날 며칠을 대표실에 불려가던 과장.

회의실에서 대 놓고 박살을 내던 대표의 얼굴이 퇴근길 가드레인을 들이받고

그대로 쳐박혀 죽은 과장의 얼굴이 교차된다. 쉬쉬하며 몇달만에야 본인상으로 판명이 되었다.

출근을 하지 않아 모친상으로 부고가 떴던 기억이 난다. 나중의 소식을 전해듣고 소름이 끼쳤다.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고 뛰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젊은 청년들의 실업률이 세계최대의 위기다.

석박사 과정을 밟아도 취업은 하늘에 별 따기. 캄보디아의 취업유혹에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지금은 세계의 공황이다. 누구랄것 없이 세상은 살기좋아지는데

좀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서는 돈이라는 수단이 반드시 필요한데,

기업은 기업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너 나 할 것 없이 물질에 눈이 멀어진다.

그럴수록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소비패턴이 바뀌어야 한다.

소박할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소박할수록 순수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본의 소비문화를 존중한다. 그들의 소박한 생활패턴은 급성장한 한국인들이 배워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제가 한국인의 일본여행으로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도톤보리를 걷는데 모두 한국인이다.

나또한 각성했던 시간이었다.




아무튼 나의 사직은 훌륭했다.

그 이후 인도네시아를 다녀오고 <공간>을 오픈하고 두번째 시집 원고를 마무리 하고

진짜의 나로 살았다. 돈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맑은 정신일 것이다.

돌아보니 6개월의 6년같은 IT 회사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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